지난 8월 26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를 ‘피스 메이커(peace maker)’, 자신은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라고 하며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했다. 미국 대통령 앞에 기죽지 않고 ‘선수’를 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며 회담 성공을 자축할 만했다. 그런 식으로 한미관계의 궁합이 잘 맞아들어 갈 듯했다. 그런데 그 뒤 10일도 채 지나지 않은 9월 4일, 현대차그룹과 엘지(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 현장에서 미국 당국이 느닷없이 한국인 350여 명을 포함, 약 470명의 ‘불법체류’ 노동자를 체포했다. ‘뒤통수’를 맞은 셈!
필요한 비자 발급수 제한하면서 비자 없다고 체포
미국 주류·담배·총포 담당국(ATF) 애틀랜타 지부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 공식 계정에 올린 글에서 “국토안보수사국(HSI), 이민세관단속국(ICE), 마약단속국(ICE), 조지아주 순찰대와 함께 조지아주 서배너에 위치한 현대차그룹-엘지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건설 현장에서 대규모 이민 단속 작전을 벌였다”며 “불법 체류·노동자 475명을 체포했으며 이는 우리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려는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미 당국 관계자는 영상물에서 “우리는 국토안보부다. 우리는 현장 전체에 대한 수색영장을 가지고 있다. 모든 공사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들이 ‘불법’ 노동자인 이유는 원래 단기 사업용인 B1비자나 전자여행허가(ESTA)를 통해 입국한 관광객 신분으로 임금노동을 했기 때문이다. 만일 국내 기업이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위해 전문가를 현지에 파견하려면 전문직 비자인 ‘H-1b’ 비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비자는 연간 8만 5000명 수준으로 제한된다.
이미 한국은 지난 7월 3500억~6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등을 조건으로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합의를 체결한 바 있다. 그에 따라 미국이 요구하는 대대적 투자를 위해 한국 기업이 움직이려면 ‘H-1b’ 비자가 발급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 ‘불법’ 내지 ‘편법’ 노동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과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2025.9.6. 연합뉴스 (ICE 홈페이지 영상 캡처)
이번에 체포된 이들은 단기 체류 목적 무비자협정에 따른 전자여행허가(ESTA)를 통해 여행객처럼 미국에 들어와 단순한 관광이나 방문 목적이 아닌 임금 노동을 했기에 ‘불법’이 됐다. 한 관계자는 “해당 공장은 내년 초 가동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체포된 상당수가 공장 건설을 위해 고용된 협력·하청 업체 관계자들이고 한국인이다”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미국 당국이 전자여행허가(ESTA)를 받고 입국해 단순노무 등 노동을 하는 것을 엄격하게 단속하긴 했는데, 이번처럼 전면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공장에까지 진입해 체포 작전을 벌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기울어진 협상 테이블에서 벌어진 폭력과 약탈
그런데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2020년 9월엔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에스케이배터리아메리카(SKBA)의 미국 조지아주 커머스시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13명이 전자여행허가를 받고 일하다 체포된 뒤 자진 출국한 바 있다. 한국 기업들이 불법적인 관행을 계속해온 셈이다. (2021 바이든 정부와 2025 2기 트럼프 정부 이래 ‘인플레이션방지법(IRA)’이라는 강제 아래 한국 기업은 눈물을 머금고 미국에 공장을 세우고 있는데, 지금까지 22곳, 총투자액 138조 원 규모다. 미국 요구대로라면 지금보다 3배 이상 더 투자해야 한다. 약탈적 수준!) 물론 이는 한국 기업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대대적인 단속과 체포 사태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합법을 빙자한 폭력, 그리고 기울어진 협상 테이블과 사실상의 약탈, 이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이번 사태는 미국에나 한국에서 상당한 충격파를 던진다. 이른바 ‘불법 노동자’를 단속한다면서 군헬기, 무장 병력, 장갑차, 총기류 등을 동원한 500여 군단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 사태와 관련,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을 정리해 본다.
첫째, 이번 단속의 직접적 계기는 트럼프와 동일한 정당인 공화당 소속 극우 성향 정치인 토리 브래넘(Tori Branum)이 이민세관국(ICE)에 조지아 주 내 한국 기업들이 ‘불법체류 노동자’를 대거 고용하고 있다고 제보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는 토리 브래넘이 페이스북에서 스스로 밝힌 바다. 브래넘은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미 해병대 출신의 여성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논리는 “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불법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는 취지다. 얼핏 반자본의 논리 내지 불법 근절의 논리를 보여주지만 평소 그녀의 성향으로 볼 때 본심은 다르다는 해석이 많다. 그것은 그녀가 조지아주 제12지역구 연방 하원의원 예비후보로 출마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 시민은 SNS에서 “선거 캠페인에 더 많은 관심과 돈을 끌어들이려는 어리석은 시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워싱턴D.C. 성경 박물관에서 열린 백악관종교자유위원회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 09. 08 [AP=연합]
쇼비니즘적 보호주의 정책 펴는 ‘피스 브레이커(peace breaker)’
둘째,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토리 브래넘과 같은 특정 개인의 이익과 관련해서만 볼 순 없다. 트럼프의 국가 경영 방식 자체가 문제다. 그것은 트럼프 정부의 쇼비니즘적 보호주의 정책이 한편으로 불법 이주나 불법 노동을 규제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미국 내 제조업의 부활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나 기후위기 같은 글로벌 이슈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이기에 이번 단속 대상 기업이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은 ‘꼴도 보기 싫은’ 짓일지 모른다. 나아가 정치가라기보다 비즈니스맨에 가까운 트럼프는 이번 단속을 계기로 돈이나 기술 전수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전문가를 불러들여 미국 노동자를 훈련해 직접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바로 그것이다. 자본 약탈과 고용 약탈에 이어 기술 약탈을 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여기서 트럼프는 ‘피스 메이커’라기보다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 내지 ‘피스 브레이커(peace breaker)’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의 ‘국경차르’로 통하는 톰 호먼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조지아 현대차 공장에서 한 것처럼 사업체에 대한 대규모 이민 단속을 많이 할 건가”라는 질문에 “간단히 말씀드리면, 그렇다”고 단호히 말했다. “우리는 직장 단속 작전을 더 많이 할 것”이라는 것! 이런 맥락에서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급히 미국으로 건너가 협상을 한 끝에 “자진 출국 형식으로 귀국하기로 합의”했다며 “이번 주 안에(9월 10일) 전세기를 띄운다는 계획”을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눈에 보이지 않은 거래를 암시한다. (과연 체포, 구금된 노동자들의 ‘전세기 귀국’으로 사태가 완결된 것인가?)
셋째, 이런 현실의 기저에 깔린 자본의 논리를 꿰뚫어 볼 필요가 있다. 세계를 무대로 가치증식 운동을 하는 자본은 경향적으로 일국 국경을 넘어 세계로 향한다. 자본은 늘 이윤을 추구하기에 이윤율이 높으면 지옥까지 달려갈 판국이다. 따라서 자본이 이윤을 버는 원천인 노동력의 가치가 낮을수록 자본에게는 유리하다. 자본은 경향적으로 노동력의 가격이 싼 쪽으로, 동시에 이윤율이 더 높은 쪽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그 이윤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간 노동은 어떤가? 인간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은 그 노동력의 가치를 더 많이 인정받고 싶어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노동력의 가격을 더 많이 인정받는 쪽으로 이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본운동의 방향과 노동이동의 방향이 서로 같거나 조화롭다면 별 문제 없지만, 방향이 다르거나 조화가 깨진다면?
‘세계 전쟁’까지 준비할지 모르는 자본의 ‘대리인들’
이 경우에 국가라는 이름의 공권력(폭력)이 동원된다. 이 공권력은 노동 쪽보다는 자본 쪽을 더 경청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원리가 가진 일차적 문제는 노동자 즉, 사람이 능멸을 당한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에서도 체포 당시 수백 명의 노동자들은 마치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나 도망 노예처럼 손발이 쇠사슬로 묶여 어거정어거정 걸어야 했다. 수치심이나 모욕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이차적 문제도 있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자본과 국가의 대응은 중장기적으로 자기 자신에게도 해롭다는 점! 미국 당국이 말하듯, 불법 체류나 불법 고용은 범죄로 규정된다. 그러나 모든 불법 고용을 일거에 근절한다면 미국 경제나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 게다가 이렇게 보호주의 내지 자국이기적 정책들을 편다면 국가 간, 민족 간, 인종 간 분열과 갈등이 증폭될 위험이 크다. 그간 ‘세계화’란 이름으로 ‘세계 평화’를 부르짖던 위선마저 (그것이 더 이상 미국 자본주의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자)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는 이 고약한 행태가 향후 (자본의 이윤 위기가 더욱 고조될 때) ‘세계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이미 구미 각국에서는 나치 히틀러를 부활시키려는 극우들의 준동이 심각한 수준이지 않은가? 설사 비자 문제 등이 ‘합리적’으로 해소된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들은 여전히 남는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진정 ‘피스 메이커(peace maker)’가 되려면 세계를 압도하는 헤게모니(패권) 위에서 사람과 자연의 생명력을 무한정 뽑으려는 패러다임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 정부에서 그런 기대는 불가하다. 설사 트럼프가 (일각의 기대나 예측처럼) 10월의 경주 APEC 회담에 오기 전에 북한을 방문, ‘평화협정’을 맺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정한 세계 평화를 위한 조치가 될 리 만무하다. 차라리 그런 평화협정은 미국 자본의 새로운 이윤 공간을 위한 수단(예: 원산갈마-마식령 관광지구 개발 등)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공화당의 트럼프도, 민주당의 바이든도 궁극적으로는 자본의 ‘대리인’에 불과하다. 그리고 작금의 행태는 ‘파쇼적 약탈’ 모양을 띤다.
‘탈(脫)자본, 진(進)생명’ 기치 내건 아래로부터의 국제 연대
바로 이런 눈으로 이번 사태를 읽어 낸다면, 이재명 정부의 과제도 달라진다. (우리들 다수가 꼭 성공하길 바라는) 이재명 정부가 단순히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서의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가 아닌, ‘패러다임 메이커(paradigm maker)’가 되려면 정치경제적 지도급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형식적 만남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을 넘어서는) ‘세계생명평화동맹’ 같은 새로운 연대관계를 ‘아래로부터’ 하나씩 구축해 나가야 한다. 더 이상 자본주의 성장과 착취, 약탈과 파괴가 아닌, ‘탈(脫)자본, 진(進)생명’의 길이 인류가 공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이런 철학을 먼저 전 세계에 공표하고 그 방향에 공감하는 나라들을 광범위하게 모아 나가야 옳다. 그리하여 그간 세계자본이 초래한 세계적 불평등과 기후위기, 사회경제적 위기 등을 범지구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극복하려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내란당’ 별칭을 가진 야당 대표와도 회담을 갖고 여야 공동으로 ‘민생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함으로써 ‘하모니 메이커(harmony maker)’가 됐다. 동일한 맥락에서 세계를 무대로,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 진영을 막론하고 ‘글로벌 민생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 그 철학적 기초가 곧 ‘탈(脫)자본, 진(進)생명’이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세상이 ‘생산, 소비, 성장’에 대한 맹목적 질주를 계속할 때 총체적 파국이 필연적으로 오기 때문이다.
‘정직한 절망’의 힘으로 죽임의 패러다임 넘어서야
지구와 인류가 ‘정상적으로’ 공존할 마지노선인 1.5도(산업화 이전에 비해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 상승)를 이미 작년에 넘어섰다는 보도가 있다. 실제로 세계기상기구(WMO)도 “2024년은 산업화 이전 대비 전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이 1.5도를 초과한 첫해로 기록됐다”고 연초에 밝힌 바 있다. 이제 2도를 넘는 건 시간문제이고, 그 이후는 마치 높은 산에서 바위가 굴러 떨어지듯 지구 위 인류 문명이 급속히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올해 봄 곳곳의 산불사태, 그리고 여름의 홍수와 산사태를 겪으면서도 ‘강 건너 불 구경’만 하다간 바로 우리 자신이 참사의 희생자로 전락할 것이다. 지혜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여, 범지구적 파국에 빠지기 전에 (자본주의 황금기의 부활만 생각하는) ‘국익’ ‘성장’ 경쟁‘ ’이윤‘ 등 죽임의 패러다임을 넘어 진정 ‘함께 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슬기롭지 않은가? 과연 이런 경고에 누가 얼마나 귀 기울일까? 차라리 우리는 참된 ‘패러다임 메이커’가 되기 위해서라도 먼저 ‘정직한 절망’부터 해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