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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민당, 다카이치 총재 선출은 “당 붕괴를 재촉할 뿐”

시사한매니져 2025. 10. 6. 12:28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 교수 비관적 전망

아베 정권 ‘적통’ 다카이치 정권, 서로 다른 점
여대야소 아베 정권, 여소야대 다카이치 정권

야당과의 연립 또는 협조체제의 관건인 ‘감세’
이스라엘 네타냐후 극우정권과 닮은 구조?

대외정책에서도 닮은 구조, 한일관계 시험대에

 

일본 집권 자민당(LDP)의 신임 대표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가 10월 4일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 후 당 대표실을 나서고 있다.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는 이날 자민당 총재로서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것이라며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2025.10.4. 로이터 연합
 

저명한 일본정치 전문연구자 제럴드 커티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일본 집권 자민당이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를 새 총재로 선출한 것을 두고 “그런 일은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며,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이코노미스트> 10월 4일)

 

‘그런 일’이란 글로벌 민주주의적 추세가 “양극화되고 민족주의적이며 문화전사적인culture-warrior) 정치” 쪽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극우세력이 대두하고 있는 유럽의 우경화와 최근 도널드 트럼프 재집권 이후 도드라지고 있는 미국의 극우 민족주의, 보호주의 현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힌다. 지난 7월의 일본 참의원선거에서 극우 참정당과 우익으로 기운 국민민주당이 크게 의석수를 늘리며 약진했을 때, 다수의 평론가들은 일본에서도 극우정당이 집권한 이탈리아나 극우정당 AfD(독일의 대안)이 제2당으로 도약한 독일과 같은 ‘유럽적 우경화’가 일본에서도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일본의 우경화는 동서냉전이 무너지고 일본 거품경제가 꺼지기 시작한 1990년대 초에 이미 시작됐으며, 2006년의 극우 정치인 아베 신조의 1기 정권, 특히 2012년 말의 재집권(아베 2기 정권) 이후 일본에서는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카이치의 총재선출 “자민당 붕괴를 재촉할 뿐”

 

커티스는 그러나 자민당이 다카이치를 총재로 선택한 것은 이미 위기에 직면해 있는 “자민당의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고 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 자민당 붕괴 재촉 요인은 먼저 다카이치가 당을 급격히 (더욱) 우경화시킴으로써 자민당의 보수(우익)세력과 중도세력 간의 균열을 확대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카이치의 등장은 좀 더 진보적인 야당세력이 자민당 내의 중도적 유권자들을 떼어내 갈 기회를 열어 줄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다카이치 총재는 지난 25년간 자민당의 온건한 연정 파트너였던 공명당과의 동맹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공명당은 이미 다카이치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는 극우적 발언을 문제삼고 있고, 극우 참정당 등과의 연정이나 정책협력 가능성에 거부감을 보이며 연정 이탈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4일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당선된 뒤 박수로 축하하는 동료 의원들에게 일어나서 화답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이코노미스트 10월 4일

 

논란이 된 다카이치의 배외주의적 차별 발언

 

다카이치의 최근 발언 중에서 정치적 논란거리가 된 것 중의 하나는 나라 공원에 야생상태로 방생돼 있는 사슴들을 “발로 걷어차는 어이없는 사람이 있다. 때려서 겁주는 사람이 있다”는 발언이었다. 외국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다카이치는 선거 과정에서 여러차례 이 말을 거론했는데, 요컨대 일본의 훌륭한 미풍양속을 해치는 그런 저급하고 위험한 ‘외국인’들을 규제하고 단속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가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관광객들에 대해 그런 배외주의적이고 차별적인 발언을 거듭한 것은 그것이 일본 유권자 대중들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명시적으로 지목하진 않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주로 지금 일본의 외국인 이주 노동자나 관광객 중 다수를 점하고 있는 중국인을 가리킨다. 예전에 재일 조선들이 일본 거주 외국인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을 때 자민당 우익 정치인들이 입에 올리던 차별적이고 모멸적인 ‘삼국인’이란 말이 재일 조선인들을 가리킨 것과 유사하다.

 

다카이치가 그런 말을 거듭한 것이 참의원선거 결과 국회 1석밖에 되지 않았던 참정당이 15석으로 약진하고 국민민주당 역시 의석수를 대폭 늘린 것을 염두에 둔것이란 분석이 많다. 다카이치는 이시바 정권 때 치른 중참 양원 선거와 도쿄도 의회선거에서 자민당이 잇따라 참패해 창당 70년 역사에서 자민당이 양원에서 동시에 과반 미달 의석의 여소야대가 된 것은, 원래 자민당 지지세력이 확고한 보수우익의 ‘아베 노선’을 버리면서 골수 보수우익 지지자들이 자민당을 떠나 참정당 등 극우 신당 쪽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때로 정치적 논란까지 불렀던 그런 배외주의적이고 차별적인 발언을 거듭한 것은 자민당에서 떨어져 나간 그런 골수 지지자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양날의 칼인 배외주의 극우 발언

 

하지만 다카이치의 이런 배외주의적 발언은 자민당 이탈 지지세력을 다시 불러모으는 플러스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자민당 내 보수우익세력과 중도 내지 개혁 세력 간의 균열을 확대하는 마이너스 효과도 있을 수 있다. 다카이치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그는 마이너스 효과보다는 플러스 효과 쪽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아베 신조 1기 정권 때의 아베 신조 총리와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부특명담당대사. 당시 다카이치는 각료(대신=장관)로서 유일하게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아사히신문 10월 5일

 

아베 정권 ‘적통’인 다카이치 정권이 다른 점

 

오는 15일의 임시국회에서 총리로 선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이 예전 아베 신조 정권의 ‘적통’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아베 정권이 중참 양원 모두 압도적 과반수의 여대야소 정권이었던 것과는 반대로 다카이치 정권은 양원 모두 자민당 의원이 과만수 미달인 여소야대 정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카이치가 15일 총리로 선출되고 이후 내각을 구성해 정권을 운영해 가기 위해서는 야당들과 연립정권을 구성하거나 정책들마다 야당과 협의해서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자민당 내 온건보수나 개혁세력 및 공명당 등의 반발 때문에 다카이치가 새 총리로 선출된 뒤 곧바로 ‘일본 제일주의’를 부르짖는 참정당이나 일본보수당과 같은 극우정당들과 손을 잡고 연정을 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라이벌격인 입헌민주당은 일단 제쳐놓고 국민민주당이나 일본유신회와 같은 기존 야당들과의 연립이나 협력체제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

 

야당과의 연립 또는 협조체제의 관건은 ‘감세’

 

그럴 경우 대내적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가 있는 것이 감세 및 재정조달 문제다. 지난 중참 양원선거 때 야당들은 거의 예외없이 감세를 한결같이 주장했다. 감세는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팽창한 일본 정부부채를 더 부풀리게 될 것이다.

 

일본의 누적 재정적자(정부 부채)는 2020년에 GDP(국내총생산)의 258.40%, 2022년엔 261%로 세계최대, 최고 수준이었으며, 해마다 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로 대표되는 아베 정권 시절의 무제한 금융완화정책(아베노믹스)은 무제한의 돈 풀기(양적 완화)였고, 그것은 주로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국채(국가발행 채권=정부 부채)발행을 통해 이뤄졌다.

 

일본은 연간 국채 이자 부담액만 2023년 결산 기준 7조 엔(약 70조 원)대에서 2024년에는 10.9조 엔(약 109조 원)으로 늘었으며, 2025년에는 13조 엔(약 130조 원)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예산안 규모는 약 115조 5415억 엔(약 1150조 원)이다. 13조 엔이면 그것의 약 12%로, 해마다 일본 국가예산의 12%가 정부부채 이자로 나간다는 얘기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그만큼 국채를 더 발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일본은행의 금리인상 기조로 정부부채와 그 이자 부담은 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한 해에 100만 명 이상씩 인구가 줄어가는 저출산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 과도한 정부부채 양산은 노령복지예산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상황에서 지속 불가능한 정책이다. 그래서 자민당은 감세가 유권자들 표를 얻게 해 줄 방책이라는 것을 알지만, 집권당으로서 차마 감세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울 수 없었다. 하지만 야당들은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감세를 주장했다.

 

다카이치가 총리에 선출되고 내각을 구성해 정권을 운영하겠다면 그런 야당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극우정권과 닮은 구조?

 

이스라엘 우익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이 국제여론, 때로는 트럼프 정권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 및 주변지역들에 대한 제노사이드(대량학살) 공격을 계속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단독 집권이 불가능한 네타냐후의 리쿠드당이 극우 정당들과 연립정권을 구성해야 집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리직에서 물러날 경우 부패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있는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네타냐후로서는 처벌을 피하기 어려운 처지여서 극우 정당들과의 연립을 통한 정권 유지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을 완전히 배제히고 유대인만의 통합국가를 세우겠다는 배타적 국수주의세력인 극우정당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다카이치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연립 또는 협력 야당들의 감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애초에 강한 일본 부활을 외치는 다카이치는 아베노믹스류의 강력한 성장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지만, 감세를 주장하는 야당들과의 연립이나 협조체제는 돈 풀기식 재정적자 팽창을 제어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갈지도 모를 위험성이 있다.

 

‘잃어버린 30년’의 장기불황에 지친 일본 조야가 지금 모두 다카이치의 성장지향 경제구상을 지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장래를 낙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혁 주일 한국대사(왼쪽)와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2일 일본 도쿄 뉴오타니호텔에서 주일본 한국대사관 주최로 열린 국경일(개천절) 및 국군의 날 기념 리셉션에서 함께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나카타니 방위상은 굳건한 한일관계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장수를 기원하는 한자성어 '남산지수'(南山之壽)를 쓴 패널을 준비해왔다. 2025.10.2. 연합
 

대외정책에서도 닮은 구조, 한일관계 시험대에

 

대외적으로도 비슷한 구도가 펼쳐지지 않을까. 초지일관 야스쿠니 신사 참배론자인 다카이치는 지난해 총재선거에 출마했을 때도 총리가 되더라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겠다고 언명했다. 3번째로 도전한 이번 총재선거에서 총재가 된 뒤에는 기자회견에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히 판단하겠다”며 분명한 언급을 피했지만, 그런 자세로는 한국 중국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가 평탄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지난 참의원선거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듯이 참정당 등의 극우정당들은 아베 정권 시절의 수정주의 역사관 쪽으로의 회귀를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심지어 군국일본의 전쟁시기 침략주의 언동들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며 그것을 정당화했다.

 

다카이치 정권이 그런 극우정당들과 직접적인 연립을 구성하긴 어려울지라도, 전반적으로 극우경향을 보이는 우익 야당들의 역사관이나 대외정책들을 일정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될 공산이 크다. 이번 총재선거 결과를 보건대 자민당 자체도 우파 민족주의 성향의 발언들이 내부에서 더 힘을 얻고 있다.

 

집권 이후 일본의 대외정책은 적어도 이시바 정권이 추구했던 대외정책 방향과는 결을 달리하는 쪽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시바 정권과는 서로 해결 가능한 것들부터 접근해서 단계적으로 처리해 감으로써 마찰을 줄이겠다는 ‘구동존이’식 실용주의적 자세를 견지해 온 이재명 정부의 기존 대일정책이 유지될 수 있을까. 주도면밀한 대응자세가 요구된다.                                                                  <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