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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납치 사건, 단순한 해외 범죄가 아니다

시사한매니져 2025. 10. 15. 00:41
 

보이스피싱 조직의 주체 모두 한국인
디지털 노예 수출하는 나라라는 민낯

산업이 된 범죄가 '사람 거래' 구조화
복지가 시혜 아닌 사회윤리 재건돼야

 

 

'월 1000만 원 알바에 낚여 캄보디아로 간 한국인 청년, 개발회사 명목으로 노예처럼 일했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피해자로 보였지만,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 조직의 운영·모집·관리 주체가 모두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외 범죄가 아니라,  한국 사회 내부의 구조적 타락과 도덕 붕괴가 수출된 사례로 봐야 한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캄보디아 내 한국인 범죄 피해와 관련한 질의를 받고 있다. 2025.10.13. 연합
 

'월 천만 원 알바'의 구조 – 디지털 노예무역의 실체

최근 3년간 캄보디아, 미얀마,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에서는 '고수익 아르바이트' 명목으로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 청년들을 유인해 보이스피싱, 도박 사이트, 불법 코인 거래소 등에 감금·노동시키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외교부 집계에 따르면, 동남아 지역에서 구출된 한국인 불법감금 피해자는 2021년 12명에서 2023년 204명으로 늘어났다. 2년새 17배나 급증했다. 대부분 '개발직, 마케팅, 알바' 등의 구직 사이트를 통해 모집됐으며, 피해자의 70% 이상이 20~30대 청년층이다. 현지 총책, 브로커, 송출책 등은 한국인 네트워크 중심으로 운영되며,  캄보디아 등 현지 조직은 단순 감시·폭행 역할에 그친다. 결국 '중국발 조직'이라는 표현은 겉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범죄 구조의 핵심은 한국 내부의 청년 유인·송출 시스템이며,  국제노동기구(ILO)가 규정한 '현대판 노예노동(Human Trafficking for Labor Exploitation)'에 해당한다.

 

범죄가 아니라 산업 – '사람 거래'의 구조화

 

이 범죄의 위험은 불법성보다 산업화된 구조에 있다.  피해자 한 명당 모집 수수료는 약 300만~500만 원,  송출 후 '몸값 협상'으로 최대 1000만 원까지 거래된다. 즉, 한 사람의 생명이 상품처럼 가격이 매겨진다.  한국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조직 연루 해외 송출 브로커'로 적발된 한국인은  2022년 21명에서 2024년 상반기 64명으로 급증했다. 특히, 이들 중 절반 이상이 IT·디지털 업계 출신 프리랜서였다. 이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돈을 중심으로 한 비공식 인력 시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4일 개장한 경기 파주의 해외 입양인들을 위한 '기억과 치유의 공간' 엄마품동산 내 가장자리에 있는 기억의 벽에서 한 입양인이 입양인들의 이름표를 들여다보고 있다.2025.6.14. 연합
 

복지의 이름으로 생명을 거래하던 과거

 

사람을 상품처럼 다루는 구조는 낯설지 않다. 한국은 1950~1990년대까지 '해외 입양 최대 수출국'이었다.  UN 보고서(UNICEF, 2010)에 따르면 1953년 이후 약 20만 명의 한국 영유아가 해외로 입양됐다.  당시 운영을 주도한 기관은 홀트,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등이며,  정부의 보조금과 외화 수입 덕에  '입양은 복지사업이자 외화벌이'로 정착되었다.

 

즉, 한국 사회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경제 논리로 생명을 거래하는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캄보디아 사건은 그 구조가 단지 '해외 노예노동' 형태로 옮겨졌을 뿐이다.

 

인간의 존엄이 사라진 자리에서

 

이 사건의 본질은 '범죄'가 아니라 '도덕의 부재'다.  정부는 피해자 송환과 가해자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을 돈보다 우선시하는 사회 시스템의 회복이다.  노동부는 '해외취업정보센터'를 운영하며 청년 일자리를 해외로 연결하고 있지만, 실제 등록된 기업 검증은 서류심사에 그치며, 사기형 구인공고에 대한 사전 차단 시스템은 여전히 미비하다.

이런 환경에서 청년들은 '한 달 천만 원'이라는 문구에 인생을 걸게 된다.

 

우리가 바꿔야 할 질문

 

문제는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가'가 아니다. '왜 같은 나라의 청년을 팔아넘기는 구조가 가능했는가'이다.  그 답은 사회 전반의 가치체계 속에 있다. 경제 성장, 효율, 성과 중심의 사회는 결국 인간의 생명과 양심을 '비용 항목'으로 전락시킨다.

 

이제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사회윤리의 재건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사람을 거래 대상으로 보지 않겠다"는 선언에서 시작된다.                         < 장윤영 기자 >

 

참고자료

- 외교부 해외감금 피해자 통계(2023)
-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국 ‘해외 송출형 보이스피싱 보고서’(2024)
- UNICEF. (2010). Intercountry Adoption in Korea: Policy Review and Human Rights Concerns.
- ILO. (2022). Global Estimates of Modern Slavery: Forced Labour and Forced Marriage.

 

외교부 “캄보디아서 실종 신고 550명…80여명 안전 확인 안돼”

구치소 수감 60여명 송환 추진
여행경보 추가 격상 방안도 검토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인근 노점상에서 상인이 과일을 팔고 있다. 연합
 

외교부가 지난해부터 올해 8월까지 캄보디아 내 한국인 실종 신고는 총 550명이며, 이 가운데 80여명의 안전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조만간 캄보디아 여행경보를 추가로 격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1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브리핑에서 캄보디아 내 실종·감금 피해 신고 접수는 지난해 220명, 올해는 330명(8월 기준)으로 집계됐으며, 이중 80여명의 피해 신고는 아직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캄보디아 내 실종신고 건수는 외교부에 접수된 신고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경찰이 파악한 것과 중복될 수 있어 교차 검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부터 캄보디아 실종·감금 신고가 143건이며 52건이 미제라고 밝힌 바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2024년 신고가 접수된 건 중 95%는 종결처리됐고, 올해는 80%가 종결처리됐다”며 “종결처리됐다는 건 현지 경찰 체포, 구조 후 추방, 자력으로 탈출, 신고 이후 귀국, 가족이나 지인과 연락 재개 등 이들의 안전이 확인된 경우를 말한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캄보디아 구치소에 수감된 60여명에 대한 송환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7월과 9월 캄보디아 쪽 단속에 따라 총 90명이 온라인 스캠 현장에서 검거됐다. 이 가운데 일부는 한국으로 귀국하고 있어 (구치소에 있는) 숫자는 60여명으로 줄고 있다”며 “국내로 이분들의 신속한 송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경찰 측과 긴밀히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김진아 2차관을 단장으로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하는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로 파견하기로 했다. 또 조만간 캄보디아에 대한 여행경보를 격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 11일 프놈펜의 여행경보를 기존 2단계(여행자제)에서 2.5단계(특별여행주의보)로 격상한 바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피해자에 대한 영사조력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가담자를 추적해 국내 처벌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면서 해외취업 광고도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또 “영사 인력, 예산을 확충하기 위해 관계부처와도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 서영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