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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다니 “뉴욕만이 트럼프 이기는 법 보여줄 수 있어…어둠 속 빛이 될 것”
시사한매니져
2025. 11. 6. 01:59
“폭군을 두렵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그가 권력을 쥘 수 있었던 조건들을 해체하는 것”

“트럼프가 태어난 도시 뉴욕만이, 그를 이기는 법을 보여줄 수 있다.”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4일 밤 11시15분. ‘당선 축하 행사’가 열리는 브루클린 패러마운트 공연장에 등장한 조란 맘다니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는 ‘트럼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는 “정치적 어둠의 시기 속에서 뉴욕은 빛이 될 것”이라며 이민자 출신 무슬림이자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자신이 이끄는 뉴욕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싸움 최전선에 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뉴욕은 이민자의 도시다”
맘다니의 당선은 트럼프 시대에 맞선 뉴욕 시민의 선택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극단에 위치한 맘다니의 당선은 반트럼프 세력 결집의 중요 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맘다니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면서 당선 때 뉴욕시에 대한 연방 지원금 중단과 군 투입을 검토하겠다고 위협해왔다.
맘다니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폭군을 두렵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그가 권력을 쥘 수 있었던 조건들을 해체하는 것”이라며 ‘트럼프’로 상징되는 임대인, 억만장자, 고용주에 대한 규제 강화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이민자가 세운 뉴욕은 이민자의 도시일 것이며 오늘 밤부터는 이민자가 이끄는 도시가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우리 중 누구에게라도 다가오고 싶다면 우리 모두를 먼저 상대해야 할 것이다”라며 트럼프의 이민자 정책도 비판했다.
민주당 주류 교체 전운
맘다니의 당선은 민주당 주류 세력에 대한 강력한 경고 의미도 갖고 있다. 버니 샌더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민주당 내 민주적 사회주의 흐름이 당의 본류로 이동하는 이정표라는 평가도 나온다. 맘다니 지지자인 대슐은 이날 한겨레와 만나 “민주당이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는 엄청난 전환점”이라며 “민주당은 민주사회주의 흐름을 지지하지 않으면 계속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주류인 중도·온건 성향 인사들은 맘다니의 당선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상원·하원에서 민주당을 이끄는 뉴욕 출신 두 거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와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는 그의 당선을 크게 반기지 않았다.

뉴욕이 글로벌 자본주의의 심장인 동시에 불평등과 자본권력에 저항하는 진보운동 ‘오큐파이 월스트리트’(월가 점령)의 발원지라는 점에서 맘다니의 당선은 201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월가 점령 운동’의 정신이 뉴욕의 ‘정식 권력’을 획득했다는 상징성도 갖는다. 이날 당선 축하 행사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지지자 셰넌(29)은 “버니 샌더스 같은 사람들이 ‘정부 운영 방식, 예산 사용 방식, 서로를 돌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오랫동안 해온 이야기에 이제야 사람들이 귀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대인의 도시이자 9·11 이후 이슬람 혐오의 그림자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뉴욕에서 무슬림 시장이 탄생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이번 승리는 세대를 초월하는 정치적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7살 뉴욕 이주…‘금수저’ 출신 비판도
이민자 출신으로 뉴욕시장에 당선된 맘다니는 1991년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태어나 일곱살 때 뉴욕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컬럼비아대 교수인 마흐무드 맘다니, 어머니는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두차례 오른 영화감독 미야 나이르다. 이번 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했다가 중도 사퇴한 에릭 애덤스 현 뉴욕시장이 ‘네포 베이비’(금수저)라고 비꼬는 배경이다. 뉴욕시 명문고인 브롱크스 과학고와 리버럴아츠(인문학 및 순수 자연과학) 분야 미국 명문 중 한곳으로 꼽히는 보든대를 졸업했다.
사회생활은 뉴욕 퀸스의 비영리 단체에서 시작했다. 그는 주택 압류 위기에 놓인 이들을 상담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래퍼로도 활동했다. 2018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맘다니는 2년 뒤인 2020년 6월 뉴욕주의회 의원선거에 출마해 뉴욕시 퀸스·애스토리아 등 지역을 대표하는 뉴욕주 의원으로 선출된다. 그는 이후 두차례 재선에 성공하며 현재까지 주의회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사회주의자 뉴욕시장’ 탄생, 급진적 목소리의 주류 정치 편입 분기점
34살 무슬림 맘다니, 쿠오모 10%포인트 가까이 따돌려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이 사회주의자 시장을 택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무슬림인 조란 맘다니(34) 뉴욕주 하원의원은 4일(현지시각) 치러진 시장 선거에서 2위 후보를 10%포인트 가까운 득표율 차로 제치며 111대 뉴욕 시장에 당선됐다. 그의 당선은 인종 갈등, 빈부 격차 등 미국 사회 여러 문제에 급진적 대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주류로 편입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중간선거뿐 아니라 이후 미국 정치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평가된다.
맘다니 후보는 5일 91% 개표율 현재 103만여표(50.4%)를 얻어 85만여표(41.6%)에 그친 무소속 앤드루 쿠오모(67) 전 뉴욕주지사를 여유 있게 눌렀다. 공화당 후보 커티스 슬리와(71) 후보는 14만6000여표(7.1%)에 그쳤다. 미국 언론들이 투표 종료 30여분 만에 앞다퉈 그의 당선을 발표할 정도로 여유 있는 승리였다.
투표 열기는 역대급이었다. 뉴욕시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0만명이 넘는 뉴욕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이는 최근 50년 내 가장 높은 투표율이었다. 사전투표자 수도 73만5317명으로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면 뉴욕시 역사상 가장 높았다. 2021년 뉴욕시장 선거 때 사전투표자 수는 약 17만명이었다.
1년 전만 해도 정치적 존재감이 거의 없던 맘다니 후보는 치솟는 생활비 문제에 집중하면서 지난 6월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를 꺾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주거·생활비 부담 완화’를 중심 의제로 내세운 그는 공공보육, 무상 시내버스, 시립 식료품점 설립 등 서민생활 지원 정책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연소득 100만달러 이상 고소득자에게 2%포인트 세율 인상도 주장해왔다. 전략적인 소셜미디어 활용도 당선 1등 공신으로 꼽힌다.
그의 공약을 두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많다. 공공 서비스 확충을 위한 증세 카드는 뉴욕주 의회와 주지사의 승인이 필요하다. 생활비 경감을 위한 대책이 경제 이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21년부터 임기 2년의 주 하원의원에 세 번 연속 당선된 것이 유일한 공직 경력이다 보니 ‘경험 부족’이라는 꼬리표를 극복하는 것도 과제다.
아프리카 우간다 태생으로 2018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그는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이 없다. 하지만 그의 당선은 민주당 내 민주사회주의자 그룹에 큰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미래는 어디인가’를 중심으로 격렬한 내부 투쟁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그의 당선으로 각종 기록도 세워지게 된다. 그는 최초의 무슬림 시장 및 남아시아계 시장이면서 1974년 취임했던 영국 태생의 에이브 빔 시장 이후 약 50년 만에 이민자 출신 시장이 된다. 1914년 존 퍼로이 미첼 이후 두 번째로 젊은 뉴욕 시장이기도 하다.
< 뉴욕/김원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