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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장 · 지청장까지, 적반하장 '집단 항명'… 검찰개혁 흔들기 나섰나
시사한매니져
2025. 11. 11. 14:07
검사장부터 초임검사까지 비판 글 올리며 항명
정치 중립 위반…국힘은 대통령 탄핵까지 주장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실패 떠올리게 하는 검란
민주당 "이전 정부와 달라…검사 쿠데타 분쇄"

검찰 수뇌부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조치에 일선 검사들의 집단 행동이 확산하고 있다. 일부 검사장·지청장들의 집단 성명에 이어 대장동 수사 검사의 검찰 내부망 글, 초임 검사의 비판 글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0년 검찰개혁 추진을 두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갈등했을 당시 벌어진 '검란'(檢亂)을 연상케 한다.
검사장부터 초임검사까지 항명…정치중립 위반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는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 대행(대검 차장검사)의 사법연수원 29기 동기인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 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입장문이 게시됐다. 사실상 집단 항명이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사건의 1심 일부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두고 검찰 내부뿐 아니라 온 나라가 큰 논란에 휩싸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밝힌 입장은 항소 포기의 구체적인 경위와 법리적 이유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아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노 대행의 설명을 요구했다.
8개 대형 지청의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내고 노 대행에게 항소 포기 경위와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성명을 낸 지청지장들은 차장검사가 지휘하는 대형 지청(차치지청) 소속으로, 부장검사가 업무를 보는 지청(부치지청)의 지청장들보다 고참급 검사들이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용성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등은 내부망에 올린 입장문에서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경위에 대해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의 납득할 만한 설명과 지위에 걸맞은 자세를 촉구한다"고 했다.
대검 연구관들도 전날인 9일 회의를 열고 노 대행에게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결정과 관련한 정확한 사실관계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전달하기로 했다. 입장문에는 거취 표명을 포함한 책임을 다해달라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사퇴 요구로 읽힌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을 담당한 검사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항소 포기로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 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와 민간업자 김만배 등에 대해 특경가법상 배임죄는 '무죄'로 판단하고 형법의 업무상 배임죄만 '유죄'로 인정한 바 있다.
다만 재판부는 현행법 체계상 형법의 업무상 배임을 인정하면서도, 형량이 센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에 준해 양형을 결정했다. 유동규 등 성남도시개발공사에 관여하며 민간업자의 개발 편익을 봐준 이들은 이례적으로 검찰 구형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대검 수뇌부는 법무부 등의 의견을 종합해 이미 특가법상 배임 혐의 등에 준해 선고가 나온 만큼 항소에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수사팀 검사들은 2심에서 더 다퉈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장동 사건을 담당했던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전날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항소 포기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죄의 중요 쟁점(재산상 이익 취득 시기 등)에 대한 상급심의 판단을 받을 기회조차 잃었다"고 했다.
대장동 사건 '조작 수사' 의혹을 받고 있는 강백신 검사(대구고검)도 내부망에 글을 올리고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
이 밖에 초임검사인 울산지검 천영환 검사는 "국민에 대한 배임적 행위를 한 법무부 장관과 대검 수뇌부의 사퇴를 요구한다"며 "법률과 적법 절차에 의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무부와 대검이 특정인들을 법률과 재판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했다.

국민의힘은 '검란'을 부추기며, 대통령 탄핵까지 언급했다. 장동혁 대표는 이날 충북 청주 충북도당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항소 포기와 관련해 "단군 이래 최악의 수사 외압이자 재판 외압"이라며 "명백한 집권 남용이자 탄핵 사유"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실패 떠올리게 하는 검란
검사들의 이같은 집단 행동은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 조국 사태부터 추미애-윤석열 갈등까지 이어진 검찰들의 대대적인 반란을 떠오르게 한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당시 청와대와 여당은 검찰개혁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뒤를 이은 추미애 장관은 2020년 1월 취임 직후부터 검찰개혁 완수 의지를 밝히며 검찰을 압박했다. 취임 닷새 만에 검찰 수뇌부를 물갈이 하는 등 본격적인 조직 정비에 나섰다. 그러나 추 장관이 광폭 행보를 하면서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과의 갈등이 점점 수면 위로 올랐다.
특히 한동훈 검사장과 이동재 채널A 기자 등이 연루된 '검언유착 사건'을 계기로 법무부·검찰 갈등은 증폭됐다. 당시 이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채널A 기자가 수사 형평성 등을 문제 삼아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대검에 요청했고 윤석열이 이를 수용했지만, 추 장관이 수사 중인 사안에 개입하지 말라고 막으면서 양쪽의 골이 깊어졌다. 윤석열 쪽 대검은 수사심의위원회를 열면서 장관에게 맞섰다.
이후에도 추 장관이 라임 사건과 김건희·최은순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며, 윤석열을 배제하는 등 대립은 계속됐다. 추 장관과 윤석열 갈등은 결국 윤석열이 법무부의 감찰에 대해 부당하다고 거부하면서 폭발했다. 추 장관은 윤석열을 직무 배제한 뒤 ▲감찰 방해 ▲정치중립 위반 등을 이유로 징계청구를 했고, 윤석열은 이에 소를 제기하며 맞서는 등 극단으로 치달았다.
당시 '추-윤 갈등'으로 불린 법무부·검찰 갈등은 여러 사건에 걸쳐 벌어졌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검찰개혁'이었다. 대다수 검사들은 당시 개혁에 반대하는 윤석열 편에 섰다. 전국 10여 곳에서 평검사 회의를 소집하는 등 검란을 일으키며 추 장관에게 반기를 들었다. 결국 2021년 1월 추 장관은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 뒤, 박범계 장관 체제로 전환됐지만 법무부·검찰 갈등 재연을 우려하면서 개혁은 흔들렸다. 박 장관 시기 추진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윤석열 정권 교체 뒤, 형해화됐다.

이번 항명 역시 5년 전과 비교하면,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검사들은 표면적으로 항소 포기를 지휘한 대검 수뇌부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지만, 78년 만에 해체를 앞둔 검찰청 내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엔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40명 전원이 복귀를 요구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반발은 국민들이 요구하는 개혁에 대한 검찰 내부의 입장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윤석열의 구속취소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 포기나 김건희의 각종 비리 의혹 무혐의 처분 등에 대해 침묵하던 검사들이 이재명 대통령과 관련 있는 대장동 사건에만 유독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집단 항명의 정치적 목적을 가늠케 한다.
전 정부와 다르다…"정치 검사 쿠데타 분쇄"
여당인 더불민주당은 '정치검사들의 쿠데타적 항명'으로 규정하며 "철저하게 분쇄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검찰의 '조작 기소'에 대해 법무부 감찰과 국정조사, 상설특검 등을 통해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애초 '정적 죽이기' 목적에서 시작된 대장동 수사의 조작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검찰 일각에서 벌어지는 집단 항명을 조기에 진압하겠다는 의도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친윤 정치검사들의 쿠데타적 항명이 참으로 가관"이라며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들이 법 위에 서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조작에 가까운 정치 기소를 해 놓고 허술한 논리와 증거가 법정에서 철저하게 무너졌는데도 부끄러운지도 모른다"며 "검찰이 기계적 항소권의 남용을 자제한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들의 항명은 강백신 검사를 주축으로 하는 한 줌도 안 되는 정치 검사들이 국민과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며 "그들이 하는 행태가 공무원의 정치 중립 위반"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거나 강압적인 정부에는 한 소리도 못하는 자들이 마치 뭐라도 된 듯 나대고 있다. 그러한 행태가 바로 정치 검찰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이 사안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재명 정부의 민주당은 당신들이 이전에 생각했던 과거의 민주당과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보여드리겠다"며 "국정조사, 청문회, 특검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당신들이 어떤 행위를 했는지 밝혀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장동과 대북 송금, 검찰 수사의 보고와 의사결정 지시까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모두 확인하고 따져보자"면서 "정치 검찰의 저항, 이번에는 철저하게 분쇄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청래 대표는 김 원내대표의 발언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한 뒤, "그냥 유야무야 넘어갈 수 없다. 민주주의와 헌법, 내란 청산에 대한 국민의 명령에 대한 항명"이라며 "절대 묵과할 수 없고 당에서는 단호한 조처를 하겠다"고 언급했다. 정 대표는 이날 사전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대장동 사건뿐 아니라 대북송금 사건 등을 '조작 기소'라고 지칭하면서 사건 처리 과정을 규명할 국정조사와 상설특검, 청문회 등을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전현희 수석최고위원은 "윤석열 정권 시절 사냥개 노릇을 자처하며 침묵하던 검찰이 이재명 정부에서 검찰 개혁 방안에 검찰 수뇌부까지 나서서 집단적으로 항명하는 이들에게는 정치 검사라는 오명은 자업자득"이라며 "법무부는 무관용 원칙으로 공무원 신분을 망각한 정치 검사들에 대해서 즉각 감찰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전 수석최고위원은 "검찰 개혁의 마지막 과제는 정치검사 청산이다. 민주당은 조작과 회유, 협박으로 점철된 대장동 대북 송금 사건 불법 수사와 관련해서 청문회,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며 "범죄 정황이 드러난다면 상설 특검도 불가피함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경고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국정조사·상설특검·청문회 추진에 대해 "대장동,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얼마나 허위 조작 기소를 일삼았는지 이 기회에 밝혀내겠다는 것"이라며 "남욱 등의 법정 증언 폭로와 함께 '(검찰이) 배를 가르겠다'는 식으로 별건 수사 협박을 (한 점을) 국민이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항소를 포기해서) 대장동 민간 사업자가 챙긴 개발이익을 환수 못 한다는 국민의힘의 프레임은 혹세무민에 불과하다"며 "현재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민간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하고 있다. 배임죄 유죄가 선고되면 구체적인 손해금액은 민사소송에서 확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