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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은 문명국의 수치이자, 내란의 숙주다 "

시사한매니져 2025. 12. 11. 04:34

'제2, 제3의 윤석열' 만들어낼 수 있는 악법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지 77년. 미군정의 그늘 속에서 태어난 제헌국회는 헌법을 제정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아, 1948년 여순사건을 처리한다는 명분 아래 이 법을 졸속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여순사건이 무엇인가. “진압”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양민을 법적 근거도 없이 학살한 국가폭력이었고, 법은 그 학살을 정당화하는 면허증이었다.

 

그 시절 국가가 경찰과 군인에게 부여한 권력은 무소불위, 의심만 있으면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것이었다. 아이든 노인이든 ‘빨갱이’라는 붉은 딱지 하나로 생명을 빼앗겼다. 당시 국가는 법이 아니라 권력자의 의지로 운용되었다.

 

여수·순천만이 아니었다. 전쟁 중에도, 그 후에도 국가보안법은 기소권력의 만능열쇠였다. 증거가 부족하면 가정을 보태고, 정황이 없으면 상상을 채워 ‘간첩’을 만들어냈다. 법이 아니라 의심을 기초로 한 문학작품이 판결문을 대신해 왔다.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 연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 발의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5.12.1 연합
 

무엇보다 우리는 이 법이 단순한 통치 수단을 넘어, '내란의 불씨'가 되어왔음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분단체제를 악용하여 끊임없이 내부의 적을 만들고, 전쟁 위기를 부추기는 기제로 작동해 왔다. 특히 조선일보와 같은 수구 언론은 이 법을 무기 삼아 평화를 이야기하는 세력을 매도하고, 사회적 증오를 부추기며 기득권을 수호해 왔다.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세력이 애국자로 둔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피해는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30년, 40년 뒤 무죄가 쏟아져도 국보법으로 밥을 먹고 사는 공안기관 종사자와 기득권 세력은 건재하다. 2025년 오늘날에도 공안경찰은 SNS를 뒤지며 표현의 검열을 일상화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옹호자들은 여전히 "간첩"을 운운한다. 그러나 인공위성과 AI가 지배하는 21세기에 낡은 이념의 잣대로 국민을 통제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이 법은 국민을 생각은 있으되 말할 수 없는 '사상 유아(幼兒)'로 길들이며, 사회 전체를 가스라이팅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진정한 내란 청산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주동자 몇몇을 처벌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내란을 가능케 했던 구조, 즉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온 국가보안법이라는 구조적 악을 타파해야 한다. 이 법을 그대로 두고서는 권력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공안 통치'의 유혹에 빠질 것이며, 결국 제2, 제3의 윤석열은 필연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죽고 사는, 생사의 문제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압박과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길은 깨어있는 집단지성뿐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라는 색안경을 끼고서는 세계의 흐름을 올바로 판단할 수도, 주체적으로 헤쳐 나갈 수도 없다. 낡은 색안경을 벗어던져야만, 우리는 비로소 외세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우리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

 

77년 동안 국가보안법은 단 한 번도 국민의 편이었던 적이 없다. 그것은 권력자의 방패이자, 국민을 향한 칼날이었으며, 이제는 국가의 미래를 좀먹는 암적인 존재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단순한 인권 회복을 넘어,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를 위한 가장 시급한 안보 전략이다. 문명국이라면 이미 폐기했을 이 수치를, 우리는 언제까지 껴안고 갈 것인가.                                                                                 < 김정희 재불동포,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