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소식
[간증 에세이] "나는 요리사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지키고 싶었습니다"
시사한매니져
2025. 12. 19. 12:08

김미자 목사 < 은퇴목사회 전 회장 >
나는 요리사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지키고 싶었습니다
남편은 2022년 8월22일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아 결국 위에 호스를 넣고 영양을 공급받아야 했습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가능성을 이야기 했지만 그때 우리의 눈앞은 막막했습니다. 다시 밥을 씹고 삼킬 수 있을까? 그 질문 하나가 하루를 버티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물과 주스로 음식 넘기는 것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기적처럼 남편은 호스를 빼고 입으로 영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은 변화가 우리에게는 다시 살아 갈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씹을 수 없고 삼키는 것도 어려운 남편에게 무엇을 먹여야 할지 막막 했습니다. 그때 저는 요리사가 아니라 그저 남편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
카레 한 냄비가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병원식처럼 부드러운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카레라면 어떨까?” 남편이 예전부터 좋아했고 한 그릇 안에 여러 가지 재료를 담을 수 있으니까요. 저는 감자, 당근, 양파, 고구마, 마늘, 생강, 표고버섯, 사과, 샐러리… 넣을 수 있는 모든 영양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씹지 않아도 되도록 모두 갈아내어 부드럽게 만들어 한 숟가락씩 떠먹게 했습니다. 그 한 숟가락이 들어 갈 때마다 남편의 얼굴에는 생기가 조금씩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카레는 어느새 우리의 주식이 되었습니다
한 번 만들 때 큰 솥 가득 끓여 일주일 정도 먹을 양을 준비했습니다. 활동이 많은 날에는 식사를 챙기지 못할까 걱정되어 한가한 날을 정해 온 힘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남편의 끼니를 놓치지 않는 것이 그 시기 제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카레는 단순한음식이 아니라 남편의 회복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아내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에 저는 그 냄비 앞에서 마음을 담았습니다.
두 번째 변화, 오트밀과 계피
남편은 85세, 15년째 당뇨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오트밀에 시네몬 반 티스푼을 넣어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의사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당이 7.5에서 6.5로 내려갔네요. 아주 좋습니다.”
기적 같았습니다. 특별한 약을 바꾼 것도 아니었는데 식탁이 남편의 수치를 바꾸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음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남편을 다시 일으켜 세운 치료이자 사랑이었다는 것을.
나는 요리사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제게 말합니다. “그 많은 재료를 넣고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남편이 살아 숨 쉬는 오늘을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그저 한 숟가락 더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다시 걷고 대화하고 웃는 모습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 하나가 저를 냄비 앞으로 데려갔고, 그 국자 한 번이 우리의 생활을 다시 이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