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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권정부'라며?… 주권자의 요구는 어디에 있나
시사한매니져
2025. 12. 30. 01:49
내란 옹호한 정치인은 통합의 대상일 수 없다
실용 통합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에 균열 키워
국정 판단의 기준 민주주의 지킨 국민의 광장
실용 통합은 책임 회피나 기억 삭제가 아니다
바로 수정 안 하면 국민은 다시 광장으로 간다

이재명 정부는 스스로를 '국민주권정부'라 부른다. 국민이 주권자이며, 국정의 최종 판단 기준은 시민의 삶이라는 선언이다. 그러나 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광장에서 윤석열 탄핵을 외쳤던 수많은 국민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국민들의 요청이 지금 이 정부의 국정 운영에서 과연 얼마나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그 요구들이 '이미 지난 일' '이제는 접어야 할 이야기' '국정 안정에 부담이 되는 목소리' 정도로 취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윤석열 탄핵은 단순한 정권 교체의 계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또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 앞에서, 국민이 거리로 나와 헌정 질서를 직접 방어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 광장은 분노의 집합이 아니라 주권의 실천이었고, 이재명 정부의 정통성은 바로 그 국민의 광장 위에 세워져 있다. 그렇다면 국민주권정부란 무엇보다도 그 광장의 요구를 국정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약속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재명 정부에서 읽히는 것은 긴장과 책임감보다는 지나친 자신감이다. 선거 승리와 정권 교체는 언제나 권력에게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감당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을 부여한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나 이 확신이 비판을 밀어내기 시작할 때였다. 지금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통합'은 국민의 요구를 국정의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권력 운영의 부담을 관리하기 위한 언어처럼 작동하고 있다.
통합은 갈등을 삭제하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갈등을 끝까지 드러내고, 왜 그런 갈등이 발생했는지를 묻는 과정이다. 윤석열 탄핵을 요구했던 국민들의 외침은 단지 한 인물의 퇴진을 넘어, 권력 남용, 검찰 권력의 비대화, 헌정 질서의 후퇴에 대한 구조적 문제 제기였다. 그러나 지금의 실용·통합 기조 속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이제는 경제다' '국정 안정이 우선이다'라는 말 속에서, 국민의 정치적 요구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이러한 태도는 인사 문제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고, 헌정 질서의 회복이 아니라 윤석열 석방을 공개적으로 외쳤던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을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자로 내정한 결정은, 국민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헌법 질서를 위협한 권력을 정치적으로 비호했던 인물이 '통합'과 '능력'의 이름으로 국정의 핵심 자리에 오르는 현실을, 국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이번 인사가 드러내는 명백한 이중잣대다. 군인들에게는 내란 사태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엄정한 징계와 책임을 요구하면서,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고 내란적 상황을 사실상 옹호했던 정치인은 통합의 대상이 된다면, 이 정부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책임을 말할 수 있는가. 위로 갈수록 가벼워지고, 아래로 갈수록 무거워지는 책임의 구조를 국민이 정의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인사 논란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주권정부를 자임하는 정부가 과연 주권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다. 정치적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권력의 중심부에서는 희석되고, 명령 체계의 말단에서만 강화된다면, 국민의 분노는 너무나 당연하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이 광장에서 가장 크게 외쳤던 '책임 정치'의 정면 부정이다.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실용·통합이 이런 선택까지 정당화하는 언어라면, 그것은 실용이 아니라 책임회피이며 통합이 아니라 기억의 삭제다. 더 심각한 일은 이러한 선택들이 '우리가 하면 다르다' '우리는 관리할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그런 자신감 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같은 행위에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순간, 정부의 말은 설득력을 잃고 국민의 신뢰는 급속히 무너진다.
국민주권정부를 자임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탄생시킨 국민과의 긴장 관계 유지다. 비판을 부담으로 여기지 않고, 광장의 목소리를 '과거의 소음'으로 취급하지 않는 태도 말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시민사회의 비판을 '과도한 요구'로, 문제 제기를 '개혁 피로감'으로 환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정부는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정부가 아니라, 자신의 지지자들을 조용히 실망시키는 정부다.
실용이라는 말 역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위한 실용인가. 누구에게 실용적인가. 노동, 불평등, 권력 감시와 같은 문제는 본질적으로 불편하고 갈등적이다. 이를 실용의 이름으로 정리하려 할 때, 대개 피해는 국민에게,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간다. 실용이 국민의 요구를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민주적 언어가 아니다.

국민주권정부란, 국민 앞에서 늘 불안해하는 정부여야 한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할수록 더 많이 묻고, 더 자주 돌아봐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재명 정부에서 느껴지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감이며, 성찰보다는 속도다. 지나친 자신감은 언제나 화를 불러왔다. 그것은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구조적 유혹이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방향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이 정부는 자신을 탄생시킨 국민들로부터 가장 먼저 질문받는 정부가 될 수 있다. 국민은 다시 침묵하지 않고, 민주주의는 다시 광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자신감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 앞에서의 두려움 위에서만 유지된다. 이 단순한 진실을 잊는 순간, 어떤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
< 박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