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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눈에 중남미는 '주권국' 보다 '관리 대상'
시사한매니져
2026. 1. 5. 15:16
미 이권에 도전한 베네수엘라 '실패 국가'로 낙인
강대국 판단이 정의가 되면, 약소국은 불안과 체념뿐

미국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개입 논의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제국의 기억, 자원의 유혹, 그리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권력의 문법이 켜켜이 쌓여 형성된 결과다. 이 글은 찬반의 감정적 대결을 넘어서, 그 내면을 구성하는 구조와 논리를 차분히 해부하고자 한다. 무엇이 미국을 베네수엘라로 향하게 만드는가. 그 과정에서 어떤 언어가 동원되고, 무엇이 가려지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사태를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1. 제국은 왜 남쪽을 내려다보는가: 미국 외교의 구조적 습관
미국의 대(對)중남미 정책에는 일관된 습관이 있다. 그것은 이 지역을 ‘주권적 타자’라기보다 ‘관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먼로 독트린에서 시작된 이 인식은 냉전 시기를 거치며 반공의 이름으로 강화되었고, 탈냉전 이후에는 ‘민주주의 수출’과 ‘안보 안정화’라는 언어로 재포장되었다. 표현은 바뀌었지만 구조는 유지되었다.
베네수엘라는 이 구조적 시선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자국의 정치적 선택이 미국의 이해와 어긋날 때, 그것은 곧 ‘불안정’, ‘위협’, ‘실패국가’라는 낙인으로 번역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실제 현실의 복잡성이 아니라, 워싱턴의 정책 프레임에 얼마나 부합하는가이다. 제국은 타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보다, 자신이 다루기 쉬운 이야기로 단순화한다.

군사적 개입 논의 역시 이러한 단순화의 산물이다. 외교적 실패, 제재의 부작용, 국제 질서의 균열은 스스로의 책임으로 성찰되기보다, ‘개입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으로 미끄러진다. 그 결과, 무력은 언제나 마지막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선택지가 된다. 이것이 제국 외교의 구조적 습관이다.
2. 석유, 제재, 그리고 권력의 경제학: 이해관계의 맨얼굴
베네수엘라를 둘러싼 문제를 도덕의 언어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그 밑바닥에는 냉정한 경제학이 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수준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나라다. 에너지 전환이 진행 중이라 해도, 석유는 여전히 국제정치의 핵심 변수다. 특히 에너지 안보가 다시 전략적 이슈로 부상한 국면에서, 베네수엘라는 결코 주변부가 아니다.
여기에 제재라는 도구가 결합된다. 제재는 명목상 정권을 겨냥하지만, 실제로는 민중의 삶을 직접 타격한다. 경제가 붕괴되고 생활이 피폐해질수록, 그 책임은 외부의 압박보다 내부의 무능으로 전가된다. 이때 제재는 단순한 압박 수단이 아니라, 체제 변화의 촉매로 기대된다. 문제는 이 기대가 현실에서 얼마나 잔혹한 결과를 낳는가이다.
군사적 개입 논의는 종종 제재의 ‘다음 단계’로 등장한다. 제재로 충분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때, 힘의 직접적 사용이 검토된다. 이는 도덕적 분노의 결과가 아니라, 계산된 선택의 연장선이다. 석유, 금융, 지정학적 영향력—이 모든 것이 얽힌 권력의 경제학 앞에서, ‘인권’은 진정성 있는 목표이기보다 설득을 위한 언어로 소환되기 쉽다.
3. ‘자유’와 ‘인권’이라는 이름의 수사학: 누가 말하고 누가 침묵하는가
미국의 군사적 개입 담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자유와 인권이다. 이 단어들은 강력하다. 반대하기 어렵고, 질문하기조차 부담스럽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단어들이 사용되는 방식이다. 자유는 보편적 가치이지만, 그것을 정의하고 집행하는 권한이 특정 국가에 독점될 때, 자유는 무기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