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EA
간첩 조작하고 유공자 혜택...이재명 정부,11명 서훈 박탈
시사한매니져
2026. 3. 20. 12:06
구로농지·미법도·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관련
박정희·전두환 시절 공권력이 국가폭력 행사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 수십 년 뒤 무죄 증명
고문하고 가혹행위 저지른 이는 유공자 예우
보훈부 "제주 4·3 학살 도화선 박진경 재검토"
이재명 정부가 과거 간첩 조작 사건에 가해자로 등장했던 이들이 받은 보국훈장을 무더기로 박탈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노컷뉴스가 19일 보도했다. 보국훈장은 국가 안전 보장에 기여한 군인이나 경찰, 공무원 등 국가유공자에게 주어지는 명예훈장이다.
오래 전부터 시민사회 단체들은 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과거사위원회 조사, 재심 등 지난한 과정을 통해 어렵사리 무죄를 밝히고 있는데, 가해 공무원들은 국가 유공자 혜택을 누린다는 지적을 꾸준히 해왔다.
관보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국무회의에서 11명에 대해 '국가안전보장 유공' 정부포상을 취소했다. 보국훈장 서훈자는 국가유공자로 분류된다. 국가보훈대상자로 선정될 경우 보훈예우수당이나 보훈병원 치료비 감면, 학습 보조비 지급, 자녀의 대입 특별전형 자격, 채용시험 가산점, 아파트 특별공급, 저금리 대출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이번 취소 대상자 11명 모두 옛 중앙정보부나 국가안전기획부 소속 또는 파견 공무원으로 훈장이나 포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모두 상훈법 8조 1항 1호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에 해당해 포상이 취소됐다.
이번 서훈 취소는 2020년 이후 6년 만에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서훈 취소 대상자 11명 중 2명으로부터 실제 훈장 등을 돌려받았다. 9명은 이미 사망했거나 연락이 두절되는 등의 이유로 포상을 회수하지 못했다.

우선 김해영(사망) 전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이 1970년 11월 받은 홍조 근정훈장이 취소됐다. 김 전 실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 '구로농지 사건' 수사와 소송에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훈장을 받았다.
이 사건은 1961년 박정희 정권이 구로공단 조성을 명목으로 1950년 농민들에게 분배된 서울 구로동 땅 30만평을 국유지로 편입하면서 벌어졌다. 해당 토지 소유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는데 정부는 오히려 이들을 불법으로 연행해 구타하고 고문하는 등 인권을 짓밟았다.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해당 사건을 국가 공권력 남용 사건으로 보고 재심 대상으로 규정해 다시 소송전이 벌어졌고 2016년 대법원에서 피해자 유족들의 승소가 확정됐다. 합법적으로 분배 받은 농지를 빼앗긴 이는 900명이 넘었다.
60년 전 일인 데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자세히 살펴본다. 당시 농민들은 "1950년 4월 농지개혁법에 따라 서울시로부터 적법하게 분배받은 땅"이라며 반발했지만, 정부는 이 땅이 서류상 군용지였다는 점을 내세워 농민들을 내쫓았다.
농지를 뺏긴 A씨 등은 땅을 되찾기 위해 1964년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소송을 내 1,2심에서 승소했으나 이후 파기환송을 거듭하며 세 차례 대법원 판단을 받은 끝에 1973년 패소가 확정됐다.
A씨 외 농민 다수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대부분 승소했다. 그러자 구로공단 조성의 차질을 우려한 박정희 정권이 검찰을 동원, 1968년부터 농민과 관련 공무원에게 소송 사기 혐의를 적용해 수사토록 했다.
수사 결과 농지분배 서류가 조작됐다는 이유로 농민 뿐 아니라 "농지분배 사실을 알고 있다"는 취지로 증언한 농림부 등의 담당 공무원들까지 사법처리됐다.
그런데 대법원 승소 10년이 흐른 뒤에야 가해자 김 전 실장의 서훈이 취소된 것이다.

나머지 10명은 간첩 조작 사건 유공자들이다. 한철흠(사망) 전 안기부 대공수사단장 등 3명은 1982년 4월 '미법도 간첩 사건' 수사 유공으로 받은 포상이 취소됐다. 한 전 단장은 보국훈장 삼일장, 다른 직원 둘은 각각 보국훈장 광복장과 보국포장을 받았다.
인천 강화도 근처 미법도에 거주하던 정모씨는 1965년 10월 황해도 은점벌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중 납북돼 한 달 만에 귀환했다. 안기부는 1982년 정씨를 불법 연행해 간첩 혐의로 수사했다가 무혐의로 풀어줬다. 1년 후 다시 안기부에 불법 연행된 정씨는 간첩 활동 자백을 강요받고 허위자백을 해 1984년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정씨는 1998년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할 때까지 15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조개를 캐다 북에 끌려간 주민은 모두 112명이었다. 그래서 '미법도 집단 납북 사건'으로 불렸다. 이들 중 104명은 다시 송환됐다.
당시 조개잡이를 하던 박남선(2005년 사망)씨도 납북될 뻔 했다가 급히 달아나 납북을 면했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1978년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중심으로 한 경찰들이 납북됐다가 송환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았다.
납북되지 않았던 박씨도 간첩 조작에 내몰렸다. 이근안은 북한에 있는 삼촌을 통해 공작원을 소개받고 이적행위를 했다며 박씨를 불법 체포한 뒤 고문해 강제자백을 받았다.
박씨는 1심부터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1심에서 징역 15년을, 2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북에 있는 삼촌이 왔다갔다는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남훈씨와 박남선씨의 아내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7년을 채우고 만기 출소한 박남선씨는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2005년 사망했다. 박남훈씨도 세상을 등져 당사자들이 모두 사망한 가운데 유족들은 2019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재판이 시작됐고, 43년 만인 2021년에 서울고법이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누명을 벗었다.
박남선씨의 아들 박영래씨는 "아버지는 고문 후유증으로 늘 아프셨고 분노를 참지 못해 밥상을 엎는 등 억울해 하셨다"며 "그런데 이근안씨가 자서전에서 아버지가 체포되는 과정에 총을 쏘고 저항했다며 소설 쓰듯 재미로 써 분노가 일었다"고 토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