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바그다드의 한 거리에서 숨진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과 아랍어로 ‘하나님의 순교자’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걸려 있다. AP 연합
이란 정부가 미국이 제시한 종전 제안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했다고 이란 국영 프레스티브이(TV)가 2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란 고위 당국자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제안의 세부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이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 종결 시점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에 핵 개발 포기, 호르무즈해협 개방 등을 대가로 대 이란 제재를 전면 해제하는 내용이 담긴 협상안을 이란 쪽에 제시하며 한달간 정전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란 쪽의 부정적인 입장이 국영 매체를 통해 전해진 셈이다.
이 당국자는 이어 “이란은 스스로 결정한 시점에, 우리가 내건 조건들이 충족될 때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이 외교 채널을 통해 협상을 제안하고 있지만, “(그 제안은) 과도하며 전장에서 미국 쪽의 실패라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비판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이에 따라 이란은 우호적인 중재국을 통해 전달된 미국의 제안을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책략’으로 판단하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미국이 협상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파키스탄 정부를 통해 거절의 의사를 미국 쪽에 전달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매체는 이 당국자가 종전을 위한 5가지 조건을 밝혔다고도 전했다. 이란 쪽이 제시한 5가지 조건은 △침략·암살 행위 완전 중단 △전쟁 재발을 방지하는 견고한 메커니즘 수립 △전쟁 피해에 대한 명확한 배상 △중동 전역에 걸친 모든 전선에 대한 전쟁 완전 종결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이란의 합법적인 주권 행사와 이에 대한 보장 등이다. < 노현웅 기자 >
백악관, 이란 종전안 거부에 “패배 인정 않으면 더 큰 타격” 압박
“트럼프, 지옥 불러올 준비 돼 있다” 종전협상 하자면서도 위협 수위 높여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일일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
미국 백악관은 이란과의 종전 협상이 진행 중이라면서도, 이란이 군사적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강력한 타격을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25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협상은 계속되고 있으며 생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협상 내용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레빗 대변인은 특히 “이란이 현재 상황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군사적으로 패배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지금까지 겪은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타격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허풍을 떠는 사람이 아니며 ‘지옥을 불러올 준비’가 돼 있다”며 이란에 오판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작전이 예상보다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레빗 대변인은 “작전 개시 25일째인 현재 핵심 목표 달성에 매우 근접했다”며 “당초 4~6주로 예상했던 작전 일정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드론 공격 능력은 초기 대비 약 90% 감소했으며, 140척 이상의 함정을 파괴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단기간에 이란 해군 전력을 궤멸 수준으로 약화했다”고 강조했다.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백악관은 이란이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레빗 대변인은 “이란 정권은 자신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그래서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최근 파키스탄 등 중재국을 통해 이란에 전달했다고 보도된 ‘15개 항 제안’과 관련해 레빗 대변인은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공식 확인을 피했다. 협상이 교착 상태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 대화는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면 회담 여부에 대해서는 “공식 발표 전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백악관은 이번 군사작전이 사실상 이란 정권 구조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도 부각했다. 레빗 대변인은 “이란의 기존 지도부가 제거되면서 정권 지도부 변화가 있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더 우호적이고 협력 의지가 있으며 더 이상 ‘미국에 죽음을’이라고 외치지 않을 지도자가 나오길 원한다”고 말했다. 다만 새로운 이란 지도부에 대해선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밝혔다.
레빗 대변인은 제이디 밴스 부통령이 이란과의 협상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게 됐다는 보도와 관련해, “달라진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부통령은 항상 대통령의 핵심 국가안보팀의 일원이었으며, 모든 논의에 참여해 왔다”고 밝혔다. 시엔엔(CNN)은 이날 미국 정부 관리 2명을 인용해, 밴스 부통령이 참여하는 형태로 이번 주말 파키스탄에서 종전 출구 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가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관리들은 일정과 장소, 참석자 등이 모두 유동적이라고 밝혔다. < 김원철 기자 >
이스라엘 “트럼프, 조기 휴전 가능성”…단기 군사성과 내기 총력
25일(현지시각) 가자지구 중부 데이를 알 발라흐에서 전쟁으로 피란한 주민들이 머무는 텐트촌 인근에 이스라엘 공습으로 화염이 치솟자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다. 가자/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최종 합의 없이도 조기에 휴전을 선언할 가능성을 우려한 이스라엘이 단기간 내 군사 성과 극대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이 “전쟁 목표 달성에 매우 근접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협상과 무관하게 ‘조기 종료’가 이뤄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움직임이다.
이스라엘 채널12는 25일(현지시각) 고위 당국자들을 인용해 “미국이 제시한 15개 합의안에 대해 이란과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원칙적 합의’ 수준에서 전투 중단을 선언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도 이날 이스라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이란의 ‘의미 있는’ 제안을 대가로 전투를 일시 중단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 쪽에서는 전쟁 종료를 시사하는 신호가 잇따르고 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당초 예상했던 4~6주보다 빠른 속도로 작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목표 달성에 매우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의 브래드 쿠퍼 사령관도 이란 내 1만여 개 표적을 타격했으며, 이란 해군 대형 함정의 92%를 격파하고 미사일·드론 공격 빈도를 90% 감소시켰다고 밝혔다. 또 이란 군사 생산시설 3분의 2 이상을 파괴하거나 손상시켰다며 “이란의 군사 생산 체계를 완전히 제거하는 경로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발언들은 협상 결과와 별개로 미국이 ‘승리 선언→휴전’ 수순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25일 밤 군 지휘부 회의에서 향후 48시간 내에 이란 방산업체를 최대한 파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했다. 이 긴박한 지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 휴전을 선언할 수 있다는 이스라엘 정부 내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이스라엘은 미·이란 간 협상에서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다만 느슨한 형태의 ‘기본 틀 합의’는 충분히 성사될 수 있다고 판단하며, 이 경우 미국이 이를 명분으로 전투 중단을 선언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은 중재자들을 통해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전투 중단을 휴전의 필수 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명확한 조건 확정 이전에 전쟁이 종료될 경우 이스라엘만 실질적인 양보를 강요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김원철 기자 >
WSJ “미국, ‘협상 파트너’ 이란 의회의장·외교장관 암살 표적서 일시 제외”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이 지난 16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열린 주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화연합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전쟁 종식을 위한 고위급 협상을 추진하면서 이란 지도부 고위 인사 2명을 암살 표적에서 일시 제외했다고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당국자들은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과 아바스 아라그치 외교장관이 최대 4∼5일간 공격 대상 명단에서 빠졌다고 WSJ에 전했다.
갈리바프 의장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유력한 협상 파트너로 본다고 거론된 인물이다. 아라그치 장관은 2015년 이란핵합의(JCPOA) 당시 이란 대표단 수석을 맡은 인물로, 미국과의 핵협상 전문가로 꼽힌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해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이란 고위 지도자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시작된 이후 공습을 통해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보안 수장 알리 라리자니를 비롯한 많은 정권 인사를 제거했다. 또 이란 수뇌부를 계속 추적하겠다고 공언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이 2024년 10월 12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레바논 국회의장을 만난 후 사진을 찍고 있다. AFP연합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기자들에게 “우리는 그들(이란)의 지도부를 모두 죽였고, 이제 (이란에서) 새로운 집단을 갖게 됐다”며 “(이란의) 한 집단의 사람들과 상대하고 있으며 그들은 곧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이란의 미온적 반응에도 종전 협상을 강하게 추진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이란과 종전 협상 중이라며 이란이 핵무기 포기 등 주요 쟁점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이란전 종식을 위해 이란과 계속 협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란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 더 강력하게 타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이란 정권과 군부는 미국과 협상 중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또 이란 측은 미국의 종전 조건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고 이란 국영 매체는 전했다.
미국과 이란 사이 중재를 시도하는 튀르키예, 파키스탄, 이집트의 중재자들은 양측이 이른 시일 내에 만나 휴전을 논의하도록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의 요구 사항 사이에 격차가 커 당국자들은 회담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본다고 WSJ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