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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헌법행위자열전' 12년만에 출간…역사의 법정이 소환한 312명

시사한매니져 2026. 3. 27. 03:14

31일 용산 효창공원에서 기자회견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12권으로 엮어 …4월 1~4권 출간

1권 다섯 대통령 반헌법 행위 수두룩
2권 법원, 3·4권 법무부와 검찰 간부

10년간 540회 회의, 시민 모금 충당
청산되지 않은 역사 어떻게 반복되나


 

3월31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꽤나 묵직한 기자회견이 열린다. 주인공은 『반헌법행위자열전』(모두 12권), 10여 년간 수백 명의 연구자와 시민들이 피와 땀으로 빚은 역사의 공소장이다.

 

상임공동대표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과 책임편집인 한홍구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이끄는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이하 편찬위)가 2015년 출범한 이래 햇수로 꼬박 12년 만에 첫 결실을 내놓는 것이다.

 

출간 장소를 백범기념관으로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의 법통이 임시정부를 잇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일생을 조국 독립에 바친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이 해방 후 암살당한 사건 자체가, 친일 청산의 좌절과 민간인 학살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편찬위는 바로 그 상징적인 공간에서, 그 비극을 초래한 책임이 있는 312명의 이름을 역사 앞에 불러낸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기자회견 포스터

 

"정부수립 후 45년, 대통령 5명이 모두 1권에 들어갔습니다"

 

1차 출간분인 1~4권에는 전직 대통령, 정치판사, 정치검사 등 81명이 수록된다. 이 중 36명이 2026년 3월 현재 생존해 있다.

 

1권 〈대통령 편〉에 이름을 올린 다섯 명을 보자.

 

이승만(1875~1965). 초대~3대 대통령. 민간인 학살, 내란, 고문조작, 부정선거, 언론탄압, 다섯 분야 전부 해당. 말하자면 반헌법행위의 '완전체'다.

 

박정희(1917~1979). 5대~9대 대통령. 민간인 학살만 빼고 네 개 분야. 그래도 충분히 넘치고도 남는다.

 

최규하(1919~2006). 10대 대통령. 신군부 쿠데타를 방조·방기함으로써 5·18 광주 학살에 책임을 지는 네 분야. '최 주사'라는 별명처럼 실권도, 의지도, 역사적 결단도 없었다는 평가는 이제 역사가 공식 기록한 셈이다.

 

전두환(1931~2021). 11·12대 대통령. 내란, 민간인 학살, 고문조작, 언론탄압 네 분야. 부정선거만 없는데, 애초에 직접선거를 안 했으니 부정선거를 저지를 기회조차 없었던 덕분이다. 

 

노태우(1932~2021). 13대 대통령. 전두환과 똑같이 네 분야.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선서하고 대통령이 된 다섯 명이 모조리 1권에 실렸다. 대한민국 헌정사의 비극을 이보다 더 압축해 보여주는 통계가 있을까. 마치 어느 부도덕 기업의 임원 명단처럼, 정부 수립 후 45년치 대통령 명단이 통째로 '반헌법행위자' 항목에 올라간 것이다.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실린 반헌법행위자들

 

사법의 보루는 어디 있었나, 판검사들의 이름을 부른다

 

2권 〈법원 편〉에는 대법원장 세 명이 포함된 정치판사 27명이, 3·4권 〈법무·검찰 편〉에는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을 지낸 인물들을 포함한 정치검사 49명이 수록된다.

2권의 대표 선수들을 보자.

 

민복기(1913~2007). 5·6대 대법원장으로 역대 최장수 10년 2개월 재임. 1975년 인혁당재건위 사건에서 상고를 기각, 8명의 사형을 확정했다. 판결 이튿날 새벽, 형이 집행됐다.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사법부의 역할은 그날 아침 사라졌다.

 

유태흥(1919~2005). 8대 대법원장. 1985년 소신 있는 판사를 좌천시켜 2차 사법파동을 일으킨 장본인. 2005년 마포대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마지막 걸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양승태(1948~ ). 15대 대법원장. '사법농단'으로 재판 거래, 판사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혐의로 2019년 구속기소됐다. 아직 살아 있으니, 스스로 해명할 기회는 남아 있다.

 

흔히 "사법부는 인권의 최후 보루"라고 한다. 그런데 이 열전에 이름이 오른 판·검사들은 그 보루를 제 손으로 허물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들이 저지른 고문조작·간첩조작 사건 대부분이 이후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과 재심을 거쳐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그 누구도 단 한 마디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사의 법정이 뒤늦게라도 이름을 불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실린 반헌법행위자들

 

10년, 회의 540차례,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편찬위가 2015년 출범하여 2017년 2월 집중검토 대상 405명을 처음 발표하고, 그 중 312명을 최종 선별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박사급 연구자들이 주도한 조사위원회 회의만 2026년 3월까지 540여 차례에 달한다. 매주 한 번씩 10년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이 방대한 작업이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 없이 오직 시민들의 후원금으로만 이뤄졌다는 점이다. 한 달에 5000원, 만 원씩 묵묵히 보내온 수많은 시민편찬위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이미 그 제작 방식 자체가 '시민이 판단의 주체'라는 편찬위의 철학을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실린 반헌법행위자들

 

역사의 공소시효는 없다,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편찬위 기자회견문은 이렇게 묻는다.

"군대가 동원된 내란을 어떻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진압할 수 있었을까요?"

 

2024년 12월 3일 새벽, 현직 대통령 윤석열(1960~)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의원들이 계엄군의 봉쇄를 몸으로 막으며 의사당 담을 넘었고, 시민들이 장갑차 앞에 섰다. 그리고 계엄은 몇 시간 만에 해제됐다. 윤석열은 현재 내란 혐의로 수감 중이다.

 

편찬위는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한다.

"지난겨울 우리는 과거로부터, 죽은 이들로부터 엄청난 도움을 받았습니다."

 

1948년, 1950년, 1960년, 1980년에 그 숱한 골짜기와 광장에서 쓰러진 이들의 희생이 2024년 겨울의 시민들을 지탱한 힘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반헌법행위자열전』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이 책은 단순히 나쁜 사람들의 명단을 모아놓은 고발장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예방서다. 권력은 늘 법복을 입고, 헌법을 입에 올리며, 국가안보를 외치면서 인권을 짓밟아왔다. 그 패턴을 낱낱이 기록해 두지 않으면,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 그것도 더 교묘하게.

 

열전 수록 312명 중 44명은 친일 경력이 확인된다. 일제 강점기에 권력에 복무하다가 해방 후에도 그대로 대한민국 권력기관에 흘러들어와 다시 국민을 짓밟았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예시다.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실린 반헌법행위자들

 

봉헌과 애도의 공동체

 

기자회견 말미에 편찬위 대표들은 백범 김구 선생 좌상 앞으로 이동해 책을 봉헌한다. 고유문을 낭독하는 이는 시인 이산하(본명 이상백), 1987년 제주 4·3 연작시 「한라산」을 발표했다가 국가폭력의 피해를 당한 바로 그 시인이다.

 

어떤 나라가 건강한 나라인가. 가해자의 이름을 기록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애도하며, 그 위에서 미래를 쌓아 올리는 나라다. 편찬위의 말처럼,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는 너무 늦었지만,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81명 중 36명은 지금도 살아 있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역사의 법정은 그 시간보다 오래 간다.

 

문의: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02-735-5812

블로그: https://blog.naver.com/unconstitutionaldeed

 

편찬위는 1-4권 수록자의 개인별 반헌법행위 내용을 웹사이트(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블로그 https://blog.naver.com/unconstitutionaldeed와 평화박물관 홈페이지  https://peacemuseum.or.kr)에 게시하여 당사자나 가족·유가족들의 사실확인을 거쳐 소명 또는 반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4월 10일까지 의견서를 작성해 소명자료와 함께 이메일 unconstitutionaldeeds@gmail.com로 보내면 원고에 반영할 것입니다. 지난 2017년 집중검토 대상 발표 당시에도 4개월여에 걸쳐 이의신청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 김성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