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EA

제주 4·3의 진실과 정의,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시사한매니져 2026. 4. 4. 13:35
 

대통령의 ‘서훈 취소’ ‘시효 폐지’ 재추진은 큰 의미


가해 주체도 ‘국가폭력’도 새기지 못한 ‘백비’
가해·피해 유족들 ‘향쟁론’ 여부로 첨예하게 맞서

4.3을 ‘사건’으로 둘 것인가, ‘정명’ 찾아 줄 것인가
출범 6년인데도 파행 중인 추가 진상조사 보고서

관계자들 반성과 함께 살아있는 자의 책무 다해야

 

이재명 대통령은 오늘 제주4·3 78주년 추념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을 전제로, 미리 제주를 방문하여, 3월 29일 제주4·3 피해 유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했어요. 4·3 진압의 공로로 받았던 서훈을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의 마련과 민·형사 시효의 완전 폐지를 재추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유족들의 오랜 바램이었지만, 대통령이 이런 언급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어요.

 

그동안 제주4·3을 비롯한 과거사 문제의 처리에 있어서는 대체로 ‘진실과 정의’가 아니라 ‘진실과 화해’를 지향해 왔습니다. 진실을 명확히 규명하지만, 가해자를 색출하여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라는 이름으로 회피했던 것이지요. 가해자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에 대한 법적 처벌은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인 것이지요.

 

군경에 쫓기다 눈보라 속에 스러져간 모자를 형상화한 '비설'

 

‘정의’ 대신 ‘화해’ 택한 제주 4·3 특별법

 

이러한 모델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시기를 끝내고 민주주의 시대로 나아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진실과 화해위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위원장이었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그의 저서 『용서 없이 미래 없다』 중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우리 각자가, 아니 우리 모두가 끔찍한 악행을 저지를 만한 능력이 있음을 깨달았다. (…) 그 범죄자들과 똑같은 영향을 받고 똑같은 세뇌를 당하더라도 나는 절대 그들처럼 되지 않았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그들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거나 못 본 체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저 하느님의 자비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 중 한 명이 그렇듯 서글픈 처지에 이르렀음을 한탄하며 함께 울어 주자는 것이다. 우리는 값싼 동정심이 아닌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하느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도 저들과 같은 처지였을 것이다’라고.”

 

2000년에 제정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2조는 제주4·3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합니다. 여기에는 가해의 주체도 없고 국가폭력이라는 의미도 나타나지 않아, 당시의 시대적 조건에서 이루어진 타협의 산물이었던 것이 분명한데요.

 

그 결과 개인별 보상을 포기한 대가로 집단보상의 형태로서 평화공원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나 2020년의 특별법 개정을 통해서 다시 개인별 보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요. 하지만 4·3을 규정하는 법조문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여전히 가해자는 국가유공자로 서훈을 받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며,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은 틈만 나면 제주4·3을 좌익폭동으로 몰아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제주평화공원 홈페이지

 

‘백비’에 새겨질 화해와 상생을 위한 ‘정명’

 

제주 4·3과 인연을 맺고 다양한 활동을 해 오는 가운데,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정명(正名)이었어요. 4·3평화기념관 전시실 입구에 누워 있는 백비(아무 것도 새기지 않은 비석)에 ‘항쟁’이라는 비문을 새겨 세워야 한다는 염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소리만 높았지, 왜 항쟁이라고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인지를 학문적,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어요. 따라서 정명은 결국 미완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제주4·3은 다른 사건에 비해서 기간도 길었고, 시기별로 성격도 다양했어요. 당장 어느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제주 지역공동체 내부에서의 살상행위도 이루어졌어요. 특히 무장대나 우익 단체 구성원들은 같은 제주도 지역 주민을 이념적으로 다르거나, 상대 측에 협조한다는 이유로 살상을 했습니다. 공동체 내부의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더욱 어려웠어요.

 

예를 들어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에 의해 경찰지서와 함께 경찰 가족들이 공격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4·3을 그날로 국한시켜 본다면 그것은 좌익 세력들의 무장봉기였던 것이지요. 따라서 보수 인사들은 여전히 4·3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2003년 진상조사보고서는 그러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그 기원을 1947년 3.1절 행사에서 찾는 우회로를 찾은 것인데요.

 

현재 유족회 내부에는, 무장대에 의해 피해를 입은 경찰 및 민간인 유족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항쟁’을 과연 수용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데요. 만약에 항쟁을 밀어 붙이게 되면 유족회의 분열 갈등이 예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족회는 아마도 가장 나중에 항쟁론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 것이지요. 정명은 화해와 상생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명을 기다리며 기념관 전시실 입구에 누워있는 백비. 필자 촬영

 

4.3의 최종 책임자는 이승만

 

사실 4·3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어떻게 명명하느냐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요. 다른 항쟁의 경우를 보더라도 연구자 및 활동가들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고 다양하게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명칭이 정명이 될 텐데요. 비록 국가에 의한 명명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선언이 구체적으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정이 따라야 할 것인데요. 무엇보다 제주 4·3의 진상이 명확하게 규명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2003년의 진상조사보고서는 처음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작성되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군경 측의 비협조와 사료의 부족 등으로 인해서 미완성으로 남았어요. ‘경찰 등 주요기관의 관련문서 폐기와 군 지휘관의 증언거부, 미국 비밀문서 입수 실패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습니다.

 

보고서는 “집단인명피해 지휘체계를 볼 때,중산간마을 초토화 등의 강경작전을 폈던 9연대장과 2연대장에게 1차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이 두 연대장의 작전기간인 1948년 10월부터 1949년 3월까지 6개월 동안에 전체 희생의 80% 이상을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책임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강경작전을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추가진상조사보고서 작업의 파행과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

 

그런데 2020년의 특별법 개정에 따라 시작된 추가진상조사보고서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어 지역 사회의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2024년 말까지 추가진상조사분과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보고서가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중앙위원회에 보고되고 국회의결을 거쳐 지금쯤에는 이미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어야 마땅했는데요. 중간에 위원들이 교체되면서 6개월을 연장했다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추가진상조사분과위원회의 심의도 거치지 않고 행정안전부에 곧바로 제출해 버리는 파행을 겪었지요. 30억 원이 넘는 국고가 투입되었음에도 그마저 아직 미완성인 상태의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초안’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절차와 결과물에 대한 일부 추가진상조사분과위원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행정안전부 측에서는 제대로 수용하지 않았어요.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났지만, 초안에서 진전된 결과물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제시했던 4·3 진압의 공로로 받았던 서훈을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의 마련과 민·형사 시효의 완전 폐지 재추진이라는 과제는 대단히 엄중한 사실확인과 근거의 제시를 필요로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책임있는 추가진상조사보고서가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민들에게 국가를 대표하여 사과를 했을 때에도, 진상보고서에 근거했던 것이지요.

 

78주년 4.3 추념식. 필자 촬영 

 

오늘 ‘4·3의 역사는 평화를 품고 역사의 기록은 인권을 밝히다’라는 주제로 열린 제주 4·3 78주년 추념식에 참석했습니다. 어느 때보다 대통령이 제시한 국가폭력의 희생자였던 제주의 희생자들과 행방불명자의 기대를 느낄 수 있었어요. 원래대로 한다면 추가진상조사보고서를 완성하여 오늘 추념식에서 제단에 봉헌하는 절차가 진행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대통령이 발언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주진오 역사학자·상명대 명예교수

 

부디 내년에 열리는 추념식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 입각한 보다 진전된 언급이 나오기를 소망해 보는데요. 이를 위해서는 책임을 맡은 관계자들의 처절한 반성과 확실한 마무리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