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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합의 부족" 언론의 비판이 놓치는 것...검찰권력의 전횡 잊었나
시사한매니져
2026. 8. 12. 03:58
"실패가 예상되는 개혁"이라는 비관 타당한가
정권 교체 시 검찰 복원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검찰 수술 왜 필요했는가 잊지 않는 것부터 필요

일단락 된 검찰 개혁에 대해 우려가 많다. 특히 범죄 피해자가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을지, 피의자 또한 억울함을 제대로 호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주장, 그래서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가 필요한데도 형사소송법 개정은 이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높다. 10월 출범 예정인 공소청과 중수청이 제대로 작동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의구심을 제기한다. 한마디로 '실패가 예상되는 무리한 개혁'이라는 데 다수의 언론들이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디지털 타임스의 지난 9일자 <‘검수완박’에 침묵한 검사들… ‘집단반발’ 안 한 이유 있었다> 기사는 이번 검찰개혁에 대한 검찰 내부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과거 형사사법 체계 개편이나 조직 내부의 작은 인사 갈등만 불거져도 전국 검찰청은 평검사 회의가 소집되고 간부들의 항명성 성명이 이어지는 등 집단 반발한 것에 반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검수완박' 형사소송법 개정안 통과 국면에선 극히 이례적으로 검찰은 침묵했다면서 평검사 회의도, 집단 성명도 없었고 내부 게시판에 비판 글이 올라오기는 했으나 강력한 집단 반발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저항의 주축 검사들이 이미 검찰을 떠났으며, 정치적·법률적 리스크, '고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 기사대로 검찰 내부는 조용할지 몰라도, 그 공백은 언론들이 대신 메우며 검찰을 위한 변론을 활발히 펴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국면에서 보수와 진보 언론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목소리를 내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조선일보는 10일자 <미술관 옆 은행나무의 비극>이라는 칼럼에서 “검찰 해체와 육사 폐교, 나라 곳곳에서 ‘숨 가쁜 도끼질’이 이어지고 있다. 꿈이 어쩌구 정의가 저쩌구 화려한 말잔치 끝에 멀쩡한 재목을 쓰러뜨린다”며 멀쩡한 나무를 찍어내는 도끼질에 비유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이 같은 비판은 친 검찰 논리를 지속적으로 펴온 신문이라는 점에서 새삼스러울 게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같은 날자 한겨레의 선임기자 칼럼 <정치 막전막후: 이재명 정부가 택한 ‘손쉬운’ 개혁, 나쁜 개혁으로 끝나지 않으려면>도 조선일보와 크게 다를 게 없는 논지를 펴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이 칼럼은 검찰 수사권 기소권 분리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하면서 2004년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을 때의 4대 개혁 입법이 야당인 한나라당의 강한 반대와 열린우리당 당내 갈등 때문에 거의 실패했던 일을 환기시킨다. 그때의 실패는 개혁이란 요란하게 구호를 앞세우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는데, 그 같은 교훈을 제대로 새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 경험에 비해 정치 경험은 별로 없는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고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손쉬운 길’을 선택했다면서 사법부와 국민의힘이 반대했지만 민주당은 당론으로 보완수사권 폐지를 밀어붙였는데 이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른 것이며 이 대통령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칼럼은 ‘손쉬운 길’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면서 사법 개혁과 검찰 개혁은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나아가 “만약 2028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고 국민의힘이 승리한다면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뒤집을 것”이라고까지 해 검찰 복원 가능성까지 예상하기도 한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개혁은 총선에서 1당이 바뀌면,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면,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 칼럼은 자사 논설위원의 지난 7일 ‘검수완박, 슬로건의 감옥’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인용하며 ‘검수완박’도 따져 보면 대중에게 복잡한 사법개혁 담론의 요체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목표 지점을 선명하게 제시하기 위한 인지 프레임에 불과했지만 어느 순간 ‘완박’이란 기표가 일체의 절충과 타협을 단죄하는 현실의 교리 지침으로 작동하기 시작해 ‘슬로건의 감옥’에 갇혀버렸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자에 실린 자사 지면의 <쇼츠 정치로 변질된 개혁의 카리스마>라는 제목의 칼럼, 경향신문의 <정의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중앙일보의 <정치가 경제 해결 못 할 때, 극단세력이 틈새 파고든다>는 칼럼들까지 인용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진정한 개혁은 굳어진 ‘명분’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쇄신하는 ‘순례자적 태도’, 신념의 순수성에만 갇히지 않고 현실적 결과에 책임을 지는 ‘책임 윤리’의 회귀가 필요하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 진실을 담담하게 말하는 용기,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절제다.”
“정당이 극단에 치우친 강경파의 요구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반면 자사의 오피니언면에 실린, 검찰개혁에 대해 긍정 평가하는 칼럼들은 인용되지 않는다. 7월 30일자 <검찰개혁 너머>라는 대기자 칼럼은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은 검찰권 오남용의 흑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일체의 검사 수사권을 폐지한다는 역사적·논리적 귀결을 담은 것으로 그동안의 대논쟁은 보완수사권을 주느냐 마느냐는 하나의 '앙상한 결론'으로만 치달은 것도 아니며, 검찰개혁이라는 틀에만 머물지도 않았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비대하고 견제받지 않는 검찰권력이 70년간 이어져온 전근대성을 탈피하는 것은 물론, 형사사법체계 전체의 합리화·현대화를 향한 풍부한 논의로 확장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7월 15일자 <수사권 없는 공소청이 ‘경찰 통제’ 더 잘한다>는 논설위원 칼럼은 경찰의 부실수사와 사건 암장을 이유로 한 검찰에의 보완수사권 부여 주장에 대해 사실은 그 반대라는 실증적인 반론을 편다. 검찰은 수사기관의 수사를 법적으로 심사하고 통제하는 기소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으므로 더 유능한 게이트키퍼가 될 수 있다는 것, 공소청의 엘리트 검사들이 수사에 한눈 팔지 않고 수사기관의 수사를 들여다보며 협조하고 견제한다면 국가 차원의 수사의 질은 월등하게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얘기한다. 보완수사권이 없어야 가능한 미래이며 수사·기소 분리를 통한 선진형 형사사법시스템 도입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내란과 관계없이 검찰개혁 세력이 지향해온 일관된 방향이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이 칼럼은 “검찰개혁 논의만 시작되면 우리 사회는 습관적으로 마치 집단 건망증에 걸린 것처럼 과거를 잊는다”고 개탄했는데 그같은 망각이 정작 이 신문에서 보인다. 장윤기 관련 증거인멸 및 축소 수사는 이른바 ‘제 식구 봐주기’라는 권력기관 범죄의 전형인데, 검찰이 이 분야의 ‘끝판왕’이라는 사실, ‘김학의 사건’이나 ‘김건희 봐주기’로 대표되는 부실수사와 사건 암장도 규모와 강도에서 검찰이 경찰을 압도한다는 것에 대한 망각이 같은 신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검찰개혁은 다수 국민의 호응 속에서, 다수 국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에는 그른 점이 없다. 그러나 이번 개혁이 특정 진영의 열광 속에서 단기간에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며, 그 때문에 실패가 예정된 것이라는 경고는 이번 개혁에 대한 과도한 비관, ‘저주’에 가까운 예언으로까지 들린다. 소통과 설득의 과정이 정치에서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지적 자체는 틀릴 게 없고 협의와 합의의 강조는 언론으로서 충분히 제기할 만한 주장이다. 그러나 합의를 주문하는 이들 언론이 놓치는 중요한 것이 있다. 협의 자체를 일체 거부하는 국민의힘과의 합의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더욱 중요한 ‘합의’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짧게는 지난 1년간 길게는 6년간 혹은 수십 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 온 검찰을 정상화하는 것에 대한 범국민적 합의, 검찰 권력의 분산과 통제라는 사회적 합의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개혁이 완벽한 것일 수는 없다. 72년 켜켜이 쌓인 적폐가 단시간에 정리되기는 어렵다. 정답이 아닌 현실적 해법을 찾는 과정일 뿐이다. 개혁에 비판적인 이들이 “진정한 평가는 앞으로 시작될 법 집행 과정과 그 과정에서 국민이 실제로 겪게 될 불편과 혼란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얘기하는 그 말대로 진정한 개혁은 한 번의 법 개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현실'에 맞게 추가 입법과 보완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언론에 우선 필요한 것은 검찰 개혁이 결코 단기간에, 갑작스러우며, 일방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 그 점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 과도한 비관과 경고보다는, 검찰에 보완수사권 부여라는 논쟁에 갇히기보다는, 검찰개혁이라는 사회적 대합의에 따른 작업이 더욱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현실'을 만들어가는 것에 언론 자신도 한 몫,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 < 이명재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