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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청산 지지부진 후세대에 좌절 안긴다…내란특위 시민들 힘으로
시사한매니져
2026. 9. 4. 00:02
'계엄 옹호' 자유대학 고발했다 무고죄 조사받아
경찰, 윤석열 옹호 통상적 집회라며 고발도 각하
내란 청산 정부·국회에만 못맡겨…내란특위 필요
청년이 내란 청산 주역으로 앞장서는 조직돼야
'반민특위 실패했지만, 내란특위단은 성공해야'
시민이 내란죄, 옹호죄, 선전선동죄 심판나서길

9월 1일 오전, 비가 내렸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앞에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와 강전호 이사, 서울의소리 회원들이 모였다. 국민의힘해체행동 대표인 필자도 그 자리에 섰다. 거센 비를 맞으며 우산을 쓰고 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해야 했던 이유는 다소 황당했다.
지난 1월 백은종 대표와 필자는 12·3 계엄을 옹호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유포해 온 자유대학을 고발했다. '윤석열은 옳았다', '계엄은 합법이었다'는 주장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유대학 관계자들은 특검의 황교안 전 총리 자택 압수수색을 막아서기도 했다. 공무집행방해다. 지금도 그 생생한 영상이 온라인 상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내란에 동조하며 공무집행을 방해한 범행 내용도 고발장에 담았다.
특히 걱정스러웠던 것은 청소년과 청년이었다. 10대와 20대가 이런 콘텐츠를 반복해서 접하면 "12·3 계엄이 정말 합법이었던 것 아닌가", "윤석열이 그렇게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생각하면 안 되지 않겠는가.
역사적 평가는 시간이 흐른다고 절로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 누군가 끊임없이 사실을 왜곡하고 역사를 다시 쓰려 한다면, 그 왜곡에 맞서 기록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런 역사를 겪었다.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과 5·18 관련 내란 등의 책임으로 법정에 서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정치권에서는 전두환을 찬양하는 발언들이 나오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모욕하는 일이 반복된다. 배재고 스타벅스 사태가 우리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던가.
그래서 내란을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내란에 동조하는 자들도 처벌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자유대학을 고발한 이유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우리의 고발은 각하됐다.
경찰은 윤어게인을 외치며 윤석열을 옹호하는 것은 통상적인 집회이고 윤석열이 받은 처우가 부당하다고 알리는 것은 개인적인 의견 피력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각하 사유를 댔다.
대신 우리가 자유대학 측으로부터 명예훼손 및 무고 혐의로 고소당했다. 내란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움직임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도리어 우리가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상황인가'
비를 맞으며 영등포경찰서 앞에 서 있으니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12·3 내란 이후 수많은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응원봉을 들고 국회 앞으로 달려갔고, 내란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특검은 끝났고 언론의 관심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재판은 그렇게도 신속하게 하더니, 내란 재판은 하염없이 질질 끌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윤어게인’과 ‘합법 계엄’을 주장하는 콘텐츠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내란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건이 희미해지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아지고, 역사를 왜곡하는 주장이 조금씩 용인될 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힘은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우리는 친일청산에 실패한 경험도, 군부독재를 끝낸 뒤 독재세력을 철저히 청산하지 못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언제나 다음 세대가 치렀다.
그날 경찰서 앞에서 다시 한번 절감했다. 내란 청산을 정부와 국회, 사법부에만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제도권 정치가 국민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같은 날 오후 1시 20분, 서울의소리와 애국시민들, 필자가 다시 모였다. 이번에는 경찰서 앞이 아니라 국회였다. '내란청산국민특별위원단', 내란특위를 공식 출범시키기 위해서였다.
내란특위 수석단장을 맡은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는 “내란에는 반드시 단죄가 따른다는 것, 민주주의를 파괴한 자는 반드시 법과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오직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의소리, 청년들, 그리고 필자가 함께 한 달 전부터 내란특위를 기획하고 추진하면서 느낀 문제의식은 바로, 제도권 정치가 국민의 염원, 눈높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시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내란특위 국회 자문위원인 최혁진 국회의원은 말했다.
“대한민국을 세운 것도 국민이고 헌법의 주인도 국민이며, 내란이 일어났을 때 나라를 지켜낸 이들도 국민이다. 내란 척결을 내란 당시 침묵으로 일관했던 사법부의 판결만으로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란의 잔불까지 완전히 끝났다는 최종적인 판단은 결국 우리 국민의 몫이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섰다.”

"청년은 내란 청산의 구경꾼이 아니다"
이날 우리가 가장 강조한 것 중 하나는 청년이었다. 12·3 내란에 대한 마지막 재판이 끝날 때쯤이면 지금 대학에 다니는 청년들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판결 이후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가야 할 사람들도 청년들이다.
민주주의의 규칙이 무너졌을 때 그 충격을 가장 오래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제 막 삶을 시작하는 청년 세대다. 이 사회에서 취업을 해야 하고, 집을 구해야 하고,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공정한 채용도, 평등한 기회도,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도 결국 사회의 기본적인 규칙이 지켜질 때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를 이용해 다른 세대와 성별, 집단을 공격하게 만들고, 그 틈에서 정치적 선동이 확산되고 있다. '계엄은 정당했다', '윤석열은 옳았다'는 콘텐츠 역시 그 흐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청년이 싸워야 할 상대는 다른 청년이 아니다. 청년의 기회를 빼앗는 불공정이며, 민주주의의 규칙을 무너뜨리는 권력이며, 사실을 왜곡해 국민을 갈라놓는 선동이다.
그러므로 청년은 내란 청산의 구경꾼일 수 없다. 당사자이며 주역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내란특위를 청년들이 앞장서는 조직으로 만들려는 이유다.
시민 3만명이 감시자가 된다면
우리가 만들려는 조직은 ‘말뿐인 조직’이 아니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내란의 기획과 실행뿐 아니라 그 과정의 방조와 비호, 옹호에 이르기까지 추적하고 필요하면 고발하고자 한다.
수사와 재판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국민의 눈으로 지켜보고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바꿀 것이다. 온라인에서 내란을 왜곡하고 옹호하는 콘텐츠에 대해서도 시민이 제보하고, 법률 검토를 거쳐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다.
평범한 시민이 나서 내란을 청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300명으로 시작해 3000명이 되고, 3만명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3만명의 시민이 내란 재판을 지켜보고, 내란 옹호와 역사 왜곡을 감시하고, 관련 사실을 기록한다면 내란 청산은 몇몇 정치인이나 법조인의 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일이 된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은 결국 주권자 시민의 감시와 참여이기 때문이다.
"반민특위는 실패했어도 내란특위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해방 이후 우리는 친일세력을 청산하기 위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반민특위를 만들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의 방해와 경찰의 습격 속에 좌초했고, 친일청산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여파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내란특위 출범 기자회견에서 이런 구호를 내걸었다. "반민특위는 실패했어도 내란특위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을 때 그 대가를 다음 세대가 치러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말이다.
9월 1일 아침, 필자는 비를 맞으며 경찰서 앞에 섰고 ‘자유대학’의 명예를 ‘감히’ 훼손한 것 아니냐는 질의로 가득한 경찰 조사까지 2시간 내내 받아야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국회에서 시민들과 함께 내란특위의 출범을 선언했다. 그 하루가 내게는 하나의 답이었다.
민주주의는 누군가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국민이 직접 지켜야 한다. 반민특위는 실패했지만 내란특위는 실패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청년들도 함께 역사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 김혜민 시민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