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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부에서도 살아 꿈틀거리는 국가보안법

시사한매니져 2026. 10. 3. 10:01
 

윤석열의 ‘반국가세력’ 색깔공격 근원인 국보법
윤석열 내란 시도 가능했던 것도 국보법 덕분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공안 혐의 압색에 동원돼

 

처벌 위험보다 공포 내면화로 더 타격받는 국민
극단과 혐오 부추기는 배타주의 사회로 전락해
반드시 폐지해야할 지배엘리트의 정신통제법

 

민주정부 하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일부 사람들은 “민주정부로 교체되었는데, 굳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상당수의 민주당 정치인들조차 국가보안법은 민주정부 하에서는 사문화된 법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그것을 폐지하기 위해 굳이 논란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민주정부는 국가보안법으로 국민들을 탄압하거나 그것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국가보안법과 윤석열 일당의 내란

 

그러나 윤석열 일당의 내란은 노무현 정부 시기에 추진했던 국가보안법 폐지가 좌절된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잘 보여준다. 윤석열 일당은 입만 열면 반국가세력을 운운하며, 내란을 일으키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반국가세력’이 국가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색깔 공격에 몰두했다. 그런 사전 작업에 기초해 윤석열은 전격적으로 군대를 동원한 내란을 기도했지만, 다행히도 국민적 항쟁으로 실패했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극우세력은 정권 위기가 도래할 때마다 ‘빨갱이’, ‘좌경용공세력’, ‘종북세력’, ‘반국가세력’ 등이 국가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색깔 공격을 퍼붓고는, 그것을 명분 삼아 쿠데타나 내란을 일으킴으로써 정권 위기를 모면해왔다.

 

이때 극우세력이 사용하는 ‘빨갱이’나 ‘반국가세력’이라는 표현은 형법에 기초해 범죄자 혹은 범죄집단을 규정하는 개념이 아니다. 형법 등의 법은 범죄 행동이나 범죄 모의처럼 반사회적·반국가적 행위만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국가보안법은 특정한 행위가 없더라도 머릿속 생각을 처벌할 수 있다. 윤석열 일당이 사용한 반국가세력이라는 용어는 그들이 보기에 머릿속에 불순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집단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국가보안법에 기초하는 개념이다. 이것은 윤석열 일당이 감히 내란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 국가보안법 덕분이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윤석열의 내란 기도는 민주정부 하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할 경우, 훗날 극우세력이 그것을 이용하여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민주정부에서도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재명 정부 들어와 발생한 국가보안법 사건들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최근 경찰은 통일시대연구원의 한 독서토론 모임에서 2년 전에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의 공개자료 등을 읽고 토론했다는 이유로 토론회 참가자들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는 지난 17일 이정훈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위원 등 8명을 대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이 가운데 5명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이 사건은 이재명 정부 하에서도 극우내란세력과 공안기관이 여전히 국민들을 국가보안법으로 탄압하면서 국민들의 정신과 마음을 검열하고 통제하려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중민주당 압수수색을 마친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민중민주당에서 압수한 물품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2024.8.30 연합

 

내면화된 국가보안법

 

사실 오늘날의 한국인들 중에는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이들은 국가보안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일까? 누군가가 SNS로 친구를 사귀었다고 가정해보자. 상대에게 호감이 생긴 그가 “너는 어디에 살고 있냐?”라고 묻자 상대가 평양에 산다고 대답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는 상대와 더 친해지려고 할까? 아니면 깜짝 놀라 친구 관계를 끊어버릴까?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존재 유무를 알지 못하는 한국인들도 북쪽 사람과 친구가 되면 위험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보안법의 존재를 인지하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국가보안법이 한국인들의 마음과 행동을 의연히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처음에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면 중형에 처한다는 법이 제정되면 사람들은 처벌이 두려워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그 법이 시행된 지 수십 년이 지나면 사람들은 그런 법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이럴 때 심리학에서는 그 법이 내면화·내재화 - 사회적 차원에서는 관습화라고도 할 수 있다 - 되었다고 말한다.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면 중형에 처하는 법이 있다는 것을 의식해서 그것을 피하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하지 않는 것이 외적 처벌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그런 법이 있다는 것을 모르면서도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것은 내적 감시나 처벌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제정되고 나서 한동안 그것은 외적 공포로서 국민들에게 작용했지만, 최근에는 국가보안법이 국민들에게 완전히 내면화되었다.

 

외적 공포보다 내면화된 공포가 정신건강에 더 해롭다. 외적 공포는 적어도 공포의 대상을 인식할 수 있기에 그것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내적 공포는 공포의 대상을 인식할 수 없기에 저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내면화된 상태가 장기화되면 한국인들은 국가보안법의 해악에 둔감해지는 동시에 그것으로 인한 정신건강 악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한국 사회의 배타성

 

정상인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과도 공존해야 한다고 믿는다. 즉 내가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도 존엄한 사람이며 한국 국민이므로 그를 존중하고 그와 공존하겠다고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과는 공존하지 않겠다고 믿는다면 어떨까? 나아가 그가 평소에 수첩에 그런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해놓았다가 나중에 죽이려고 한다면 어떨까? 아마 사람들은 그를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정상인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들과 공존하려 한다. 반면에 정신이 병든 사람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배타성을 가지고 있다. 공존은 정상인의 심리이고, 배타주의는 병든 사람의 심리이다.

 

국가보안법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 자신이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과 공존하라고 권유하는 법이 아니라 그들을 적대하고 배타시하라고 강요하는 법이다. 한국 사회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도 타협하고 공존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를 적대시하면서 제거하려고 하는 배타성이 강하다. 한국인들은 70여 년 넘게 극우세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낙인찍어 죽이고 처벌하는 역사 속에서 살아왔다. 이로부터 한국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까지도 포용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사회가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적대하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려는 배타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사회로 전락했다. 공존을 거부하는 배타주의는 극단주의나 혐오주의의 본질이다. 국가보안법은 한국 사회를 공존이 아닌 배타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로 전락시킴으로써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첨예화·극단화시키고 있다.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 연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 발의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12.1

 

국가보안법과 국민 개돼지론

 

국가보안법의 문제점과 해악에 대해서는 숱한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지면 관계상 여기에서는 한 가지만 언급하기로 한다. 국가보안법은 국민들의 정신세계를 극소수의 지배 엘리트들이 검열·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법이다. 한국 정부, 특히 공안기관과 재판부는 국가보안법을 통해 국민들에게 이런 책은 읽으면 안 된다거나 저런 사상은 공부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국민들의 정신을 검열하고 통제할 수 있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사회가 아동·청소년들에게, 혹은 부모가 어린 자녀들에게 성인물이나 인종주의 같은 극단적인 내용이 담긴 자료들을 금지하는 것은, 아동·청소년들이 미성숙하여 그런 것들을 접했을 때 정상적인 발달이나 성장이 위협당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국가나 사회가 성인에 대해서 마치 아동·청소년을 대하는 식의 검열과 통제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한국의 지배엘리트들이 한국 사회가 그런 검열과 통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그들이 암묵적으로 국민들을 미성숙한 인간들 심지어 개돼지로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민들을 자신들과 똑같은 성인 혹은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이것은 허용하고 저것은 금지하는 식의 통제를 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절대다수 국민들에게 극소수 지배엘리트가 허용하는 세상만을 보게 만들고, 그들이 그려주는 세상만이 참이라고 믿게 만드는 극악한 정신통제법이자 무지몽매법이다.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제2의 내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한국 사회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정신적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공존적이고 화목한 사회를 위해서,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  

                                                                            <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