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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에 ICJ 재판관 필레이…"진실 말하는 데 용기가 왜 필요?"
시사한매니져
2026. 10. 10. 13:03
'가자 집단학살' 보고…"박해받는 사람들의 수호자"
ICC 재판관, 유엔 인권최고대표 지낸 인권 법률가
뉘른베르크 법정서 "국제범죄 모든 생존자에 바쳐"
이스라엘은 '반발' vs 팔레스타인은 '환영'
미국, ICC 고강도 제재에 동맹국 동참 압박
트럼프 노벨평화상 연속 좌절에 불만 드러내
영·불·독·일 8개국 "ICC 수호" 긴급 성명
"미국의 제재 발표에 유감…강력히 반대"
"주된 반응 중 하나는 나의 용기에 대한 찬사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데 왜 용기가 필요한가요? 법률을 해석하고, 모든 팩트를 살펴보고 불편부당하게 결정하면 됩니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나비 필레이(85) 국제사법재판소(ICJ) 임시 재판관은 9일(현지시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나치 전범들을 단죄했던 독일 뉘른베르크 600호 법정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저질렀다고 지난해 유엔에 보고한 게 "마지막으로 했던 일"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필레이 재판관은 2021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설립한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점령지와 이스라엘에 관한 유엔 독립 국제조사위원회'(유엔 이스라엘 조사위)의 위원장을 맡아 가자 전쟁이 발발한 2023년 10월 7일부터 2025년 7월 31일까지 기간의 △ 이스라엘 당국과 보안군의 군사작전 △ 의료·교육의 체계적 파괴 △ 팔 주민에 대한 체계적 성·젠더 기반 폭력 △ 아동에 대한 직접적 타게팅 △ 굶기기와 생존 수단 접근 제한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그리곤 이스라엘 당국과 보안군이 1948년의 '유엔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처벌 협약'이 규정한 5가지 제노사이드 행위 중 4가지를 저질렀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사위가 제시한 4가지 행위는 △ 살해 △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가해 행위 △ 팔레스타인인 파괴를 겨냥한 의도적 생활 조건 강요 △ 고의적 출산 저지 조치 등이다.
필레이, 뉘른베르크 법정서 소식 접해
"진실 말하는 데 용기가 왜 필요한가?"
때마침 뉘른베르크포럼 참석차 독일을 방문 중이었던 필레이는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이 역사적 법정에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면서 "이 상을 국제범죄의 모든 생존자에게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국제법과 인권이 심각한 정치적 공격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시도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대한 공격에서 특히 두드러진다"면서 "정치 지도자들에겐 인권 보호와 전쟁 자제의 법적 의무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ICC를 "통제 불능의 불량 기관"이라면서 모든 회원국에 탈퇴를 촉구했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유엔 산하 ICC는 2024년 11월 21일 가자에서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 범죄를 자행한 혐의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범행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요아브 갈란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5. 11. 17)

앞서 노벨위원회는 이날 필레이를 202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고 "우리 시대 국제법 원칙을 수호해온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이라며 "전쟁 범죄와 반인도 범죄, 집단학살 범죄가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해왔다"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위원회는 "필레이는 국가와 국가 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었으며 폭력과 분쟁의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며 "오늘날 판사들이 제재받고 사법기관들이 공격받는 상황에서 용기와 비전, 결단력을 갖춘 인물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필레이 선정을 두고 AFP는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향한 '강력한 질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4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의 인도계 타밀족 가정에서 태어난 필레이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옛 남아공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에 저항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등 정치범들의 변호에 힘썼으며, 이후 △ 남아공 고등법원에 판사 △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ICTR) 판사 △ ICC 판사 △ 유엔 인권최고대표 등을 지냈다.
이스라엘은 '반발' vs 팔레스타인은 '환영'
EU집행위원장 "박해받는 사람들의 수호자"
이스라엘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나치 독일의 선전·선동에 앞장섰던 요제프 괴벨스에 비유해 "노벨위원회가 21세기 최대의 거짓말에 상을 수여했다"며 "괴벨스가 지옥에서 환호하고 있겠다"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 총리실도 별도 성명을 통해 "유일한 유대인 국가를 상대로 피의 중상모략을 조작하고 유포하는 것으로 경력을 쌓아온 편협한 인물에게 최고의 영예를 줬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은 당연히 환영하고 나섰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외무부는 필레이 재판관은 "이스라엘이 자행한 집단학살, 성폭력, 아동을 표적으로 한 공격 등 기타 범죄혐의를 폭로하고 기록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면서 "지극히 마땅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세계 주요 지도자들의 축하 인사도 이어졌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원로 법률가의 용기와 청렴성, 정의를 향한 평생의 헌신에 대한 깊은 찬사다...평화와 정의, 인류의 진보에 남아공인들이 미친 광범위한 영향력을 부각했다"고 말했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필레이는 수십 년 동안 국제법과 인권의 강력한 옹호자였으며, 우리 시대의 역사적인 국제법적 사건들에서 정의를 위해 흔들림 없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온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암울한 장면 중 일부와 싸워왔다...그는 박해받는 사람들, 소외된 이들의 수호자"라고 말했고,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도 "인권과 법치, 정의, 책임 규명이 평화와 안보, 번영 등 모든 것의 근간이라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재판관과 검사 12명과 함께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일본의 아카네 도모코 ICC 소장도 국제법 질서와 법치주의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시기에 이러한 인정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미국, ICC 고강도 제재에 동맹국 동참 압박
트럼프 노벨평화상 연속 좌절에 불만 드러내
트럼프 행정부도 '광기 어린' 반응을 나타냈다. 미 국무부는 기다렸다는 듯 ICC에 대한 고강도 제재를 발표하고 동맹국의 동참을 압박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다수가 ICC의 일원이고 미군 병력에 방어를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동맹이 이 불량 재판소를 제지하는데 나서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ICC는 2002년 '로마 규정'에 따라 전쟁 범죄와 대량 학살 등 반인도주의 범죄를 저지른 인사를 단죄할 목적으로 설립된 상설 국제재판소로 한국도 로마 규정 당사국이다. 미국은 ICC가 미군을 전쟁 범죄로 처벌하려 한다며 가입하지 않았다. 그동안 노벨평화상 수상 욕망을 대놓고 드러내 왔던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 소셜에 필레이 수상 결정을 비난하는 다른 사람의 게시물을 공유해 불만을 표시했다. 트럼프는 지난 7일 본인이 8개의 전쟁을 해결하고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며 자신의 외교적 성과를 과시하고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그러나 상황은 트럼프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모양새다.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의 ICC 제재 결정에 "오늘의 결정은 국제형사사법의 핵심 축인 ICC를 향한 우리의 공동 노력이 직면한 심각한 타격"이라고 말했고,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가장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날마다 혼신을 다하는 ICC와 그 종사자들을 향해 보복성 조치가 잇따르고 있으며, 이번 제재 역시 그 일환으로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영·불·독·일 8개국 "ICC 수호" 긴급 성명
"미국의 제재 발표에 유감…강력히 반대"
미국의 우방이자 ICC 회원국인 서방 진영 국가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캐나다, 일본 외교부 장관들은 이날 긴급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 ICC 로마 규정의 서명국들은 ICC의 독립성, 공정성, 그리고 완전성에 대한 변함없고 단호한 지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면서 "ICC의 헌신적인 지지자로서, 우리는 미국이 재판소에 부과하기로 한 제재 발표에 유감을 표하며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제재가 실제로 시행된다면 재판소의 활동과 헌신적인 직원들,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우리는 ICC를 향한 지지에 뜻을 함께하며, 비회원국들과도 건설적이고 포용적인 대화를 이어가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ICC 본부가 소재한 네덜란드의 톰 베렌드선 외교장관은 미국의 결정에 "매우 유감스럽다"면서"우리는 재판소를 수호하기 위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다"라고 했다. 막심 프레보 벨기에 외교장관도 오는 12일 EU 외교이사회와 향후 열릴 유럽이사회에서 ICC 지원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레보 장관은 "우리는 실질적 보호 조치를 촉구할 것이다. 재판소의 독립성은 조사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좌우될 수 없다. 유럽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 벨기에는 재판소를 보호하기 위해 'EU 차단 규정'(Blocking Statute)의 발동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2025년도 수상자인 베네수엘라의 극우 성향 야권 지도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에 이어 2년 연속 여성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됐다. 노벨상 수상자는 상금 12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6억 1000만 원)와 메달, 증서를 받게 된다. < 이유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