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한마당] 어느 판사의 친일 쿠데타’
SisaHan
2021. 4. 25. 02:58
편집인 칼럼 [한마당]
따지고 보면 100년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반도를 집어삼킨 뒤 36년 동안 조선 사람들을 왜식으로 마음껏 요리하며 부려 먹었다. 그런데 해방된 나라에서도 그들에게 비위 맞추고 앞잡이가 되었던 모리배들이 변신하고 득세하여 70여년 간을 백성들 위에 군림하면서 ‘왜풍'으로 호의호식하고 있다.
오로지 권좌에 눈이 멀어 약삭빠른 배신자들을 끌어안아 숨통을 열어준 게 이승만이다. 역사적 단죄의 기회였던 ‘반민특위’를 일제의 부역자들 손으로 박살낸 것은 치명적인 민족범죄에 다름아니다. 단 한마디 회개나 사죄도 없는 교활한 자들에게 칼과 총을 쥐어주어 날뛰게 만들었고, 오히려 고난을 견딘 선량한 백성들에게 이념과 사상의 용수를 씌워 멸문지화를 불렀으니, 역사를 되돌리고 천심(天心)을 짓밟은 죄과를 어찌 지우겠는가.
이승만이 일제 잔재의 불씨를 되살린 바탕 위에서 4.19 혁명의 분노도 잠시, 아예 일제 빼닮은 정치로 친일의 뿌리를 넓고 깊게 만들어준 인물이 박정희다. 그는 일본 천황에게 피로 충성을 맹세한 황군의 혈맥과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식민시절 득세했던 자들과 기업, 그 후예를 중용하여 ‘만년 기득권층’의 신분세탁과 권세영화를 궤도에 올려주었다.
일제 잔재의 생명력을 길러주는 데 혁혁하게 기여하고 있는 친일 족벌 언론들 또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저들의 교묘하고 음습한 왜색 논조가 친일 후예들에게 든든한 우군이 되고, 독버섯을 번지게 하는 밑거름이 되어 ‘카르텔’까지 이루게 된 것은 부인할 수가 없는 현실이다.
독립투사들은 멸시당하고 설자리가 없어 북으로 피신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들을 악랄하게 색출하고 고문했던 고등계 형사, 독립군을 토벌했던 일제군관들이 떵떵거리며 살다가 지금도 국립묘지에 버젓이 누워 현충의 선열들로 참배를 받고 있다. 그들의 묏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자는 친일부역자 파묘법 제정에 기를 쓰고 반대하는 인물과 카르텔이야말로 본색이 친일이요 왜색종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 있겠는가.
그런 카르텔의 영향력을 믿는 자들과 친일의 피를 속이지 못하는 이들, 또한 일본우익의 ‘장학금’으로 학문적 ‘계급장’을 단 자들은 철면피한 반민족적 언동을 멈추지 않는다. 일본극우들이 외쳐대는 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독하고, 일본정부의 억지 변명을 대변하고 옹호하는데 기를 쓴다.
그들의 소리가 마침내 사법의 영역에서도 대놓고 터져 나왔다. 역사적인 강제징용 배상요구 소송을 각하 판결하면서 하는 소리 왈, “일본 포함 어느 나라도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한 나라가 없다”느니, “일본의 청구권자금이 한강의 기적을 일궜다”고 일갈했고, “(배상을 위해 강제집행 했다가) 일본과의 관계나 미합중국과의 관계가 훼손될 수 있고 문명국 위신이 추락할 것”이라고 오지랖 넓게 걱정하는 우국충정을 설파했다.
마치 일본정부나 일본법원이 했을 법한 말을 대한민국의 서울 중앙지법 부장판사가 대법원 판례까지 어겨가며 판결문이라고 외쳐댄 희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일말의 양심이나 염려는 있었는지, ‘법정의 평온과 안정’을 이유로 선고일을 기습 변경해 소송당사자들도 참석하지 못했다니, ‘극우 판사의 친일쿠데타’라고나 할까.
친일세력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활개치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재판장을 일본으로 보내라”는 분노가 들끓고, “탄핵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폭발하는 것을 보면 결코 저들이 한국사회의 미래는 아닐 것이요, 시대와 세대가 흐르면 한민족의 정체성에 짓눌려 쇠락하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대다수 국민이 독도에 애착하고, 일제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응원하면서 강제징용 배상을 외면하는 일본정부와 기업에 분노하는 민심을 보면 그렇다. 더구나 사죄는 커녕 적반하장의 치졸함에 정치 후진인 일본에 비해, 민주정치 선진에 부쩍 커진 한국의 국력과 활력의 자부심으로 믿음은 더 커지게 된다.
우리 이제 저들을 가여워하자. 오염과 중독을 벗어나려면 몇 배의 노력과 희석이 필요하니까. 허물은 쌓기 쉬워도 회개하고 용서받아 떳떳해지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세상은 약삭빠르며 사악한 자들이 설치게 되어있지 않나. 그렇지만 교활한 자들은 강자 앞에선 맥을 못추는 법이니.
일제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교육과 노예근성을 떨치고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은 걸릴 것이다…” 그래, 식민 노예근성의 마지막 발악들 해보라고 하자. 이제 70여년 흘렀으니 20여년 만 참고 견디면 친일 독버섯들은 햇볕아래 곰팡이처럼 자연 소멸되고야 말 것이다. 이 독한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제 종말을 향해 가고있지 않는가.
< 김종천 시사 한겨레 편집인/ 21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