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비선’ 김건희, 최순실보다 위험할 수 있다
시사한매니져
2022. 1. 22. 03:56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가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손원제 | 논설위원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후보는 지난해 7월26일 <문화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제 아내는 (저한테) 정치할 거면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도장 찍고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이후에도 몇번 “아내가 정치 참여에 아주 질색했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바로 그 2주 전인 7월12일 김건희씨는 ‘서울의소리’ 이아무개 기자와 통화하면서 “나는 기자님이 언젠가 제 편 되리라 믿고, 나 진짜 우리 캠프로 데려왔으면 좋겠다. 진짜 우리가 좋은 성과 이루면서 (…) 사회정의 구현하는데 같이 노력해도 좋을 것 같아”라고 했다.
‘우리 캠프’로 영입하고 싶다, 이게 정치 참여에 질색했다고 한 사람이 한 말이 맞나? 물론 남편의 대선 출마가 결정된 뒤 ‘이왕 하기로 한 거 열심히 돕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윤 후보는 그 5개월여 뒤인 12월22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부인은 언제 등판할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등판)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다. 제 처는 정치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고 답했다. ‘주요 의사결정이나 정치적 결정에 대해 부인과 상의하나’라는 질문에는 “잘 안 한다. 나하고 그런 얘길 안 하기 때문에 (아내가) 섭섭하게 생각할 때도 있다”고 했다. 여전히 김씨는 정치를 싫어하고 상의도 잘 안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김씨는 이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한테 그런 거(선거운동) 좀 컨셉트, 문자로 보내줘. 내가 이걸 좀 정리해서 우리 캠프에 적용을 좀 하게”, “우리 남편한테도 다른 일정 같은 거 하지 말고, 캠프가 엉망이니까 조금 자문 같은 거 받자, 이렇게 할 거예요. 담주부터 그렇게 할 거야”(7월21일). 정치 현안과 관련해선 ‘김종인이 (총괄선대위원장) 수락했네’라는 물음에 “원래 그 양반이 오고 싶어 했어 계속. 거 봐 누나 말이 다 맞지”(12월3일)라고 정보력을 과시했다. “홍준표 까는 게 슈퍼챗(유튜브 후원금)은 더 많이 나올 거야”(9월15일)라며 경선 경쟁자를 흠집내달라고 사주했다.
이쯤 되면 헷갈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윤 후보는 정말로 부인의 정치적 행보를 몰라서 저런 말을 했나, 아니면 알면서도 거짓말을 한 건가.
몰라서라면 경우의 수는 다시 두가지다. 첫째, 김씨가 이 기자에게 털어놓은 대로 사실상 배후에서 ‘우리 캠프’를 움직이는데도 윤 후보는 몰랐다. 둘째, 김씨가 이 기자에게 자신의 위상을 뻥튀기한 것이다. 남편이 ‘바보’거나 부인이 ‘허언증’이거나다. 그럴 리야 있겠나. 개인적으로는 알면서 거짓말을 한 것일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게 되는 이유다.
윤 후보가 부인 역할에 대해 ‘동문서답’으로 넘긴 건 또 있다. 지난해 10월 ‘개 사과’ 논란 때, 김씨가 에스엔에스(SNS)팀의 막후 지휘자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윤 후보는 “선거는 ‘패밀리 비즈니스’”라면서도 “제 처는 다른 후보 가족들처럼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아서 오해할 필요 없다”고 피해나갔다.
문제는 윤 후보가 ‘제 아내는 역할이 없다’고 방어막을 친 뒤에서 김씨가 실제로는 영향력을 행사할 때 벌어진다. 이런 인물을 부르는 말이 ‘비선실세’인데, 김씨는 비선실세의 대명사 최순실씨와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최씨야 애초 대통령 옆에 있을 자격이 없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비서관을 부리며 청와대를 무단 출입한 게 발각됐고, 국정농단이 들통났다. 최씨의 존재 자체가 국정농단의 증거였던 셈이다. 그러나 김씨는, 만약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늘 청와대에 함께 머물 자격을 부여받을 존재다. 그때도 윤 후보는 계속 지금처럼 ‘아내는 정치를 질색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국민들은 김씨가 실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가늠조차 못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배우자의 대외 활동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을 폐지한다고 ‘비선정치’의 가능성을 봉쇄하지는 못한다. 공개된 ‘비선’ 배우자가 그냥 비선실세보다 더 위험한 이유다.
하물며 김씨는 이 기자에게 특정 언론을 콕 집어 이런 말도 했다.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긴, 하하하, 무사하지 못해.” “얘네들 내가 청와대 가면 전부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다.” 웃으며 한 얘기라 더 오싹하다. 지금이 또 다시 어른거리는 민주공화국의 위기를 차단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김씨와 윤 후보의 말 사이 간극을 곱씹고, 행간의 진실은 뭔지 묻고 또 캐물어야 한다.
[사설] 추가 공개된 ‘김건희 발언’, 분명한 해명 필요하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배우자 김건희 씨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이른바 ‘7시간 통화 녹취파일’과 관련해 <열린공감티브이(TV)>를 상대로 낸 방영금지 가처분신청에서, 서울중앙지법이 19일 “사생활 부분을 제외하고 방송해도 된다”고 결정했다. 대선 후보 배우자의 신분과 발언의 공적 성격을 분명히 적시하면서, 서울서부지법이 14일 공개를 금지했던 내용 대부분을 추가 공개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법원이 인용한 김씨의 발언을 보면 하나같이 헌법적·민주적 가치를 부정하는 내용이다. 김건희씨뿐 아니라 윤석열 후보도 이런 발언들에 대한 분명한 해명을 하는 게 마땅하다.
재판부는 “대통령 배우자는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며 “김씨의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관한 견해, 여성관, 정치관, 권력관 등은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논문 및 각종 학력·경력·수상실적 표절·왜곡·과장 의혹 등도 유권자의 공적 관심 내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봤다. 결혼 전 사생활 의혹도 “기업, 검찰 간부 등과의 커넥션, 뇌물수수 의혹 등과 얽혀 국민의 관심사가 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새로 공개된 김건희씨의 발언을 보면, 앞서 <문화방송>(MBC)이 공개했던 내용보다 더욱 충격적이다. 김씨는 일부 언론사를 지칭하며 “내가 청와대 가면 전부 감옥에 넣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보복의 방안으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놀랍다. “한동훈 (검사장)하고 연락을 자주 하니 제보할 것이 있으면 대신 전달해주겠다”고 한 대목은 검찰 고위직에게 단순한 친분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해왔음을 암시한다. 한 검사장은 윤 후보가 검찰총장이던 시절 최측근이었다. 윤 후보는 부인의 이런 행동을 모를 수가 있었던 건지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
김씨가 무속에 심취해 있음을 보여주는 발언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윤 후보 주변에 무속인들이 계속 등장하는 것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국정에 무속이 개입했던 폐단을 이미 박근혜 정부 때 똑똑히 봤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한겨레>는 윤 후보 장모 문제를 제기한 정대택씨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이 철회되는 과정에 김건희씨가 개입한 정황을 녹취록을 근거로 취재해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이것 또한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다. 철저한 진상 규명이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