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1000만유로 규모의 긴급 구호식량을 북한에 지원한다고 엊그제 발표했다. 1차분이 다음달 북한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북 식량지원 재개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지원 식량의 군사 전용 여부를 둘러싼 갈등으로 중단된 지 3년 만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올해 들어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온 국제사회가 본격적인 대북 식량지원에 나서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본격화할 경우, 대북 교역·교류 전면 중단을 선언한 5.24 조처는 사실상 효력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이 현지 조사를 토대로 610만명의 북한 주민이 기아상태라며 43만t의 긴급 식량지원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게 지난 3월이다. 5월에 러시아가 5만t의 곡물을 북한에 지원하겠다고 했고, 6월 초에는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한국 정부가 반대하더라도 필요하다면 대북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뒤이어 6월6~17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인도지원사무국의 식량평가단이 북한에 갔다. 평가단에 따르면, 북한의 배급 곡물은 4월 초까지 1인당 하루 400g씩 나오다가 6월엔 150g으로 줄었다고 한다. 밥 1공기쯤의 그 열량은 하루 평균 필요 열량의 5분의 1인 400㎉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연합은 이번 지원이 5살 이하 어린이, 임신부와 수유중인 산모, 노약자 등 “식량부족으로 죽어가는, 최소한 65만명의 북한 주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매월 400곳 이상의 배급 현장을 무작위로 방문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킹 특사도 이런 전용 방지 조처들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따라서 식량부족을 가장한 위장전술, 구호식량의 군사 전용을 우려해온 정부의 지원 거부 논리는 더욱 설득력을 잃게 됐다. 정부는 지난 3월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 재개를 허용했지만 곡물 지원은 여전히 막았고 물자 반출, 방북 신청도 줄줄이 불허했다. 유럽연합 발표 뒤에도 5.24 조처가 여전히 유효하다며 북의 태도 변화 없이 지원은 없다고 거듭 밝혔다. 이런 완강한 태도가 국제사회의 대북 접근도 막아왔다. 이제 그 벽이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정부도 국제사회의 이런 흐름을 언제까지나 나몰라라 할 수는 없다. 이제라도 스스로 시대착오적인 5.24 조처의 굴레를 풀어버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