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때마다 흔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한다. 영어를 쓰는 나라 사람들은 “Have a Happy New Year”라고 하는데 이 또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같은 말이다. 그렇게 똑 같은 말을 하게 되는 이유는 인간은 누구나 추구하는 것이 행복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했다. 그가 뜻하는 행복이란 희랍어로 ‘유데모니아’(eudemonia) 인데 유(eu)라는 것은 ‘같이’라는 뜻이고 데모니아(demonia)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하나님과 같이 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빼놓고는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하나님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못 가진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말 멋진 말이다. 또 다른 책에서 그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이며, 하나님을 모르지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행복하진 않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며,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찾지도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했다.


원래 행복이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나님을 붙잡으면 행복한 것이고, 하나님을 못 붙잡으면 불행한 것이다. 그럼 하나님을 붙잡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죽음이다. 만일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다면 그것이 바로 영생이다. 성경에 보면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신앙적으로 사는 사람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는 사람인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세상을 초월해서 살아야 한다. 인생을 초월하고 사는 것이 바로 신앙이다.
사람의 죽음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다. ‘죽음은 흙이 되는 것이며 그저 끝나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혹자는 인생은 낳았다 죽는 것이 아니라 ‘나왔다 가는 것이다’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생사를 초월하고 산다는 말은 곧 시간, 공간, 인간을 초월하고 세상을 초연하게 사는 것이다. 시간을 초월한다면 어제, 오늘, 내일도 언제나 새로운 날이 된다. 영원히 새해가 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일일호일(日日好日)’이라는 말이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그대로 기쁨이고 즐거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영원한 삶을 산다면 전체가 새해, 새날이며 새롭지 않은 것이 없다.


로마서 12장 1,2절에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이 세상을 초월해서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새 사람이 되어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의 말씀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새로운 것은 정신이 새로운 것이어야 하지 물질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물질적인 제사는 그만두고 정신적인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다.
과연 나는 오늘의 삶을 진정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잠시 분주하게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명상에 잠겨 보았으면 한다. ‘유데모니아(eudemonia)!’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지금 하나님과 함께 같이 살아가고 있으며, 기쁘고 즐겁고 일일호일(日日好日)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뜻 깊은 연말연시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 정태환 목사 - 한인은퇴목사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