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가 표기된 지구본: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을 찾은 한 초등학생이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가 아닌 ‘동해’(East Sea)로 표기한 지구본을 관람하고 있다.

한-중, 일 역사 부정에 공세 강화
안중근 기념관 등 공동대응도
일, 평화헌법 개정 등 우경화 지속


한-중 대 일본의 구도로 전개되고 있는 ‘동북아 역사 전쟁’은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본격화했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한-일의 독도 갈등과 중-일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으로 불길이 일던 지역 정세에 기름을 끼얹었다. 한국은 “식민 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한 행위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고, 중국 역시 “역사 정의와 인류 양식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라고 강한 유감을 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평화헌법을 흔들고 고노 담화를 부정하려는 일본의 거듭된 우경화 행보에 대해 “과오와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고립을 자초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3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일본이 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인정한 1993년 고노담화를 부정하는 것은 전세계 모든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을 짓밟는 것”이라고 연설했다.
 
중국도 아베 정권에 대한 역사 공세를 강화해 왔다. 중국 외교부는 공식 브리핑에서 일본을 ‘악마’로 지칭하기도 했다. 중국은 1~2월에 외신 기자들을 선양의 만주사변 역사박물관과 난징 대학살 기념관 등에 초청하는 등 국제 사회에 일본 군국주의 만행을 알리는 여론전도 벌였다. 급기야 지난달 28일엔 독일을 순방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군이 난징에서 30여만명의 중국인을 학살하는 등 군국주의 일본의 침략전쟁 탓에 중국인 3500만명이 죽거나 다쳤다”며 국제무대에서 이례적으로 일본을 비판했다.
일본 군국주의의 공동 피해자인 한-중의 공조도 강화됐다. 중국은 1월19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역에 안중근 기념관을 정식 개관했다. 한국은 중국에 환영의 뜻을 밝힌 반면, 일본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나서 “안중근은 범죄자이며 기념관은 테러리스트 기념관”이라고 반발했다. 중국 정부는 “안중근 의사는 중국서도 존경받는 저명한 항일의사”라고 대응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달에도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강제 동원됐다’는 내용을 담은 일본군 사료들을 한국 언론에 공개했다. 2일에는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중국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자리에 한국인 징용 피해자 가족과 변호사들이 참석해 ‘양국 공조’에 나서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내내 역사적 책임을 부인하면서 한-중 양국을 자극했다. 아베 총리의 측근인 모미이 가쓰토 <엔에이치케이>(NHK) 회장은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증거가 없고 난징대학살도 없었다”고 발언했다. 한-중-일 역사 전쟁의 근본원인은 박탈감에 시달리는 일본의 무리수가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경제가 침체되고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위기감과 박탈감을 아베와 우익세력이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일본의 태도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운 중국 시진핑 주석의 강한 외교와 정면충돌하며, 갈등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베이징의 한 외교 전문가는 “역사 갈등이 독도나 센카쿠 열도 문제 등 각국이 타협할 수 없는 영토 문제와 맞물리면서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