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축제 현장에서 17일 일어난 환풍구 붕괴 사고는 우리 사회의 불균형 발전으로 인한 ‘기본의 지체 현상’이 낳은 참사라고 할 수 있다. 사고가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첨단 지구에서 한류 스타 걸그룹의 공연이 진행되는 와중에 발생한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보기술(IT)·생명공학기술(BT) 업체 등 870여개 기업이 모여 있는 첨단산업의 상징 장소다. 거기에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걸그룹이 화려한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이처럼 더할 나위 없는 선진사회의 행복한 일상이 가장 후진적인 사고로 한꺼번에 무너져내린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세계적인 성취를 이뤄낸 분야가 많지만, 시민의 안전과 자유 등 기본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한계를 아프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특히 안전 분야의 취약성은 세월호 참사로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며 경고를 받았던 것이기에 이번 사망·부상자들의 희생이 더욱 뼈아프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인파가 몰리는 다중이용시설의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고음이 잇따라 울렸다. 공연장 사고는 그 이전부터도 빈발해온 터다. 그럼에도 이번 공연 현장에는 안전요원이 한 명도 없었고, 경찰•소방서는 사전 안전점검 요청도 거절했다. 관객 2, 3천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 행사치고는 안전대책이 전무했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환풍구 위에 올라선 게 부주의한 행동이었다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른바 ‘합리적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는 위험하고도 무책임한 발상이다. 우리 주위에 도사린 모든 위험을 일일이 헤아려 행동하는 합리적 인간이란 이상적인 관념일 뿐이다. 구조 자체를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설치하든가 눈에 확 띄는 경고 문구를 붙여놓는 등 사전에 강구할 안전조처가 얼마든지 있는데, 이를 외면한 채 피해자의 부주의를 탓하는 건 본말 전도다. 선진국에서는 길거리 공사나 미끄러운 바닥 등 우리가 보기에 ‘사소한’ 위험요소에도 과도해 보일 정도의 경고문을 붙이고 차단장치를 설치한다. 유명한 ‘맥도널드 커피 소송’에서 보듯 경고 의무를 소홀히 한 쪽에 막중한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는 세월호가 준 경고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위험보다는 누구도 예견하지 못하는 위험이 정말 큰 위험이다. 무심코 넘겼던 수십 수백 가지 요인이 합쳐져 세월호라는 비극을 낳았다. 세월호 이후 정부는 바로 이런 사각지대를 찾아내 사전 대책을 마련하는 데 매진했어야 한다. 세월호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에는 이런 안전사회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유족을 외면하는 데 급급했던 정부가 과연 국민의 안전 확보라는 임무를 얼마나 진지하게 수행해왔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판교 참사의 수습에 최선을 기울이는 한편, 국민의 안전 등 나라의 기본을 갖출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지혜와 땀을 짜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