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초가 되면 이 한 해는 이렇게 살겠노라고 결심하며 맞이하지만 작심삼일이 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심지가 굳은 사람은 다르겠으나 대다수가 신념이 약하여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사람은 신념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말씀은 믿는 자들 속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그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헤쳐 나아갑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는 때문입니다. 바로 성령님이 주시는 은혜로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랬기에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 가운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고백한 그의 신앙만이 아니라. 말씀을 믿는 모든 신앙인들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저의 집에 손녀 딸 셋이 옵니다. 유치원생과 3살 2살입니다. 저들은 장난감이 있는 방에서 재미있게 놀이를 합니다. 그러다 가끔 서로 좋은 장난감을 가지려고 다투기도 합니다. 둘째 3살 아이가 장난감을 손에 잡고 있으면 언니가 힘으로 빼앗으려고 하고 둘째는 안간힘을 씁니다. 거기에 셋째까지 그 장난감을 가지려고 하지만 힘이 모자라 안 됩니다. 뜻대로 안되니 포기하지 않고 울면서 저에게 옵니다. 이와 같을 때에는 결국 누가 그 장난감을 가지게 될까요?

종교를 뜻하는 영어 단어는 ‘religion’입니다. 이 어원은 라틴어인 ‘religio’입니다. 뜻은 ‘재결합’입니다. 무엇을 재결합니까? 그 명쾌한 답을 성경은 죄를 지은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가 이 땅 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하나님과 재결합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이를 가리켜서 새로운 피조물이라 칭합니다. 새 사람입니다. 생각이 바꾸어집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의 가치관으로 살아갑니다. 내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마치 미국을 건국한 청교도들과 같이…, 저들은 오직 신앙만을 지키려고 험한 파도와 싸워 대서양을 건너온 자들입니다. 저들은 이곳에서 신앙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풍요도 누리게 됨을 보게 됩니다. 저들은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좋다’는 돈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라는 글귀를 기록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한 해를 자신의 신념을 뛰어 넘어 믿음으로 바라보며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년, 날 수로는 365일입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입니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길 원하십니까? 교회가 정한 목표대로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 이는 우리 앞에 다가오는 모든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기에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치 전도자가 전해 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는 말씀이 생각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어떤 일 앞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면서 아멘, 아멘 하는 한 해가 될 것을 다짐하면서 매 순간마다 나의 살아온 경험과 신념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왜 이렇게 고백했을까요? 이는 날마다 예수로 사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 어떤 일 앞에서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여, 아멘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한 해가 되기를 다시금 곰새겨 봅니다. 아멘

< 안상호 목사 - 동산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