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보호자 동행 없이 혼자서 기차를 탔을 만큼,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본격적으로 방학 때마다 혼자 기차를 타고 외가댁을 찾아갔을 만큼, 어릴 때부터 기차 여행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조금 남다릅니다. 철길에서 올라오는 독특한 냄새를 좋아했고 열차 맨 뒷칸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좋아한 것이 기차 여행을 좋아하게 만든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각기우동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기차의 등급이 완행, 특급, 우등, 새마을호, 이렇게 4단계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특급 기차를 타면 대전역에서 보통 3분 정도 정차했습니다. 이 3분을 기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지루하고 따분하지만, 기차에서 내려 각기우동을 사먹게 되면 그만한 스릴감도 없었지요.
어른이면 몰라도 턱 밑에 솜털이 갓 나기 시작한 13살 소년에게는 3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뜨거운 각기우동 한그릇을 비운다는 것은 여간 만만치 않았습니다. 십중팔구는 반도 못먹었는데 3분이 지나서 기차가 움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천장이 데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신없이 각기우동을 먹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기차가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급하게 우동가락을 연신 입으로 호호 불어가면서 먹었던 스릴감과 중독성 강한 그 맛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은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천천히 흘러가는데, 왜 인생의 강물, 세월의 강물은 인생의 종착지에 가까워질수록 더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그래서 한해가 지나가는 속도가 갈수록 가속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추억을 반추하며 살아간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반추할 추억이 많아지다보니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추억거리가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가요? 인생의 추억들, 그리고 신앙 여정에서의 추억들,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힘들고 지칠 때 잠깐이나마 얼굴에 미소를 머금을 수 있도록 해주는 삶의 청량제가 되기 때문이겠지요.


매년 이 맘때가 되면 지나간 시간의 추억에 깊이 잠기게 됩니다. 저물어가는 한해를 되돌아보며, 올 한해 어떤 추억거리가 있었는지 되새김질 해보았으면 합니다. 무슨 일들이 있었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 무엇을 남겼는지 반추해 보면서, 한해를 정리해 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래서 “주님, 저문 해를 바라보며 당신 앞에 여전히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시처럼, 감사의 고백이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오기를 바랍니다.

< 송만빈 목사 - 노스욕 한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