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아
시간당 20회, 영장류 공통…사회적 소통과 ‘자아 확인’ 수단
코로나19와 마스크 쓰기로 얼굴 만지기에 어느 때보다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이 행동이 사람과 침팬지 등 영장류의 뿌리깊은 소통 방식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람은 얼굴, 그 중에서도 코 부위를 자주 만진다. 강의를 듣거나 회의를 하며, 또는 악수 직후나 홀로 있으면서도 시간당 평균 20번은 얼굴을 만진다.
오퍼 펄 등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 연구소 신경생물학과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비’ 20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사람의 얼굴 만지기가 자신의 냄새를 맡기 위한 행동”이라며 “사람의 얼굴 만지기는 냄새 소통의 하나”라는 가설을 내놨다.
연구자들은 기존 연구를 인용해 개, 고양이, 쥐 등 포유류에서 자신의 몸과 분비물을 킁킁거리며 냄새 맡는 행동은 널리 퍼져 있다고 밝혔다. 유인원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20분 동안 얼굴을 만진 횟수는 고릴라 20회, 침팬지 24회, 오랑우탄 12회 등으로 나타났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다른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사람은 대체로 시간당 20회 얼굴에 손이 갔다. 그런 행동이 비위생적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대생들도 강의 중 한 시간에 23번이나 얼굴을 만졌고 그 가운데 7번은 손이 코를 향했다.
얼굴 만질 때 공기흡입량 2배
이처럼 영장류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행동이 진화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호흡기 질환의 25% 가까이가 얼굴을 만지는 행동에서 비롯한다면, 단순히 생각해도 얼굴 만지기는 무언가 그보다 큰 이득이 생겨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얼굴 만지기가 단지 만지는 것인지 아니면 손가락의 냄새를 맡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33명을 대상으로 손으로 얼굴을 만질 때 공기흡입량이 변하는지 실험했다. 사람들은 향기를 맡을 때 공기흡입량이 늘고 악취가 나면 흡입량이 준다.
실험 결과 손으로 코를 만질 때 공기흡입량은 평소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단지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 결국 우리는 우리 손의 냄새를 킁킁 맡고 있었던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사람들이 냄새 맡는 행동을 알아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19개국 404명에 대한 설문 조사했다. 연구자들은 “사회적 냄새 맡기는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질문을 했을 때 응답자들은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하고 있음을 꽤 잘 알고 있었다”라고 밝혔다.
남성 74% 여성 56% 사타구니 만진 손 냄새 맡아
응답자의 94%는 자신과 애인, 자녀 등 가까운 이들의 냄새를 맡는다고 했지만 61%는 낯선 이의 냄새도 맡는다고 답했다. 남성과 여성은 비슷한 비율로 애인의 냄새를 맡고 있었지만, 여성은 특히 자녀의 냄새를 맡는 비율이 높았다.
겨드랑이를 만진 손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는 비율도 56%나 됐다. 사타구니를 만진 손을 냄새 맡는다는 응답자는 남성의 74%, 여성의 56%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대놓고 하지만, 어른들은 지저분하다고 비난받을까 봐 몰래 하는 행동이다.
손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냄새를 맡는 수단이기도 하다. 악수는 대표적인 예이다. 연구자들은 “악수를 할 때 손으로 미량의 휘발성 유기화합물도 함께 전달된다”며 “악수를 한 뒤 손으로 코 부위를 만지는 횟수가 현저히 늘어난다”고 밝혔다.
손의 냄새를 맡음으로써 우리는 무슨 정보를 얻을까. 연구자들은 “단짝인 친구는 유전적으로도 의미 있게 비슷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다른 사람의 체취를 통해 자기에게 맞는 사람을 고르는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왜 사람은 홀로 있을 때도 자신의 냄새를 맡을까. 연구자들은 “자신의 냄새를 통해 자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괜찮아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거울을 본다. 거울을 보면 스트레스와 불안이 줄어들고 자아감을 회복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은 얼굴을 더 자주 만진다. 몹시 부끄러울 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한다. 모두 자신의 냄새를 맡는 행동이다. 연구자들은 “거울을 보고 자아를 확인하듯이 자기 냄새를 맡으면서 스트레스를 낮추고 자아를 회복하려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우리는 공포와 행복의 냄새를 맡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몸에서 공포의 냄새를 맡고 비로소 무서워할까. 아니면, 공포를 느끼는 것과 냄새 맡는 것이 동시에 일어날까. 이런 것이 앞으로 밝혀야 할 과제”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 조홍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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