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 유럽, 스위프트 제재 발표.. 유럽도 피해 커 전면 차단에 부정적

기업·개인 결제거래 등 모두 막혀 ‘금융 핵무기’ 불릴만큼 고강도지만

전부 아닌 ‘선별한 일부 은행’ 언급 ‘특정한 타깃’ 지목할 가능성 높아

 

러-중 ‘별도 결제망’ 강화 나설 땐 달러 패권 약화·물가 상승 가능성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뒤 반전 시위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사는 우크라이나인 마리나 셰프추크(32)와 그의 딸 탈리야(4)는 26일(현지시각) 시위에서 전쟁을 멈추라고 외쳤다. 탈리야의 손에 담긴 구호는 “러시아를 (국제금융결제망)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몰아내라”는 뜻이다. 바르셀로나/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이란과 북한에 적용한 매우 강력한 경제 제재 수단을 꺼내들면서 압박 수위를 한층 끌어올린 것이다. 다만 이번 ‘스위프트 제재’가 국내외 경제에 미칠 파장은 ‘제한 범위’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미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영국·캐나다 정상들은 26일(현지시각) 공동성명을 통해 러시아 은행들을 스위프트망에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스위프트는 전 세계 200개국의 1만1천개 금융기관(중앙은행 포함)이 국제 거래 결제 때 쓰는 전산망이다. 여기서 배제된다는 것은 러시아 기업 및 개인의 수출입 대금 결제, 해외 대출·투자가 모두 막힌다는 뜻이다. 최악의 경우 러시아와 거래를 하려면 현금을 직접 싸 들고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국제사회에서는 그동안 스위프트 제재를 ‘금융 핵무기’라고 부르며 이란과 북한에만 적용해왔다.

 

다만 러시아에 대한 이번 스위프트 제재는 향후 ‘제한 범위’가 어떻게 구체화될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동성명서가 스위프트 제재 범위에 대해 ‘러시아 은행 전부’가 아니라 ‘선별한 일부 러시아 은행’(selected Russian banks)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스위프트 제재가 결정됐지만, 아직 범위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스위프트 제재가 전면 시행된다면 러시아 금융기관 300여 곳이 결제망에서 쫓겨난다. 이 경우 러시아 경제가 입는 충격이 상당할 수 있으며, 러시아와 거래선이 있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국가도 피해가 불가피하다.

 

특히 유럽의 피해가 가장 클 수 있다. 유럽은 전체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서 조달하고 있는데, 스위프트 제재로 원자재 거래 결제가 막히면 각국 경제 활동에 차질이 생기고 물가가 급등할 수 있다.

 

이에 유럽은 스위프트 제재에 동의하면서도 전면 차단에는 부정적인 모습이다. 27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과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장관은 공동 성명에서 “러시아를 스위프트에서 배제할 경우 부수적인 피해를 피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며 “우리에게는 특정 타깃을 목표로 하는 제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발언을 보면 스위프트 제재가 전면적 시행보다는 특정 러시아 은행들을 지목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이 범위를 협상한 후 추후 구체적인 사항을 다시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스위프트는 벨기에에 본부가 존재하면서 유럽 관할 아래에 있다. 지난 2012년 이란을 스위프트에서 배제할 때도 유럽연합(EU)의 별도 공식 선언이 나온 후 제재가 시작됐다.

 

 

우리 정부도 일단 러시아에 대한 스위프트 제재의 ‘범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경제가 받는 영향도 달라져서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이 스위프트 제재를 발표했으나 전면적인지, 은행 몇 곳을 지정해서 배제한다는 것인지 등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며 “제재 방식에 따라 국내 경제에 주는 파급 효과가 달라지므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프트 제재가 실행되면 국내 경제는 직접적으로 러시아와 거래선이 있는 기업과 금융기관이 피해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간접적으로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와 원자재 중심의 물가 상승 및 달러 패권 전쟁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러시아유라시아팀 부연구위원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국제 금융 거래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며 “국내 기업마다 부정적 영향이 다를 수 있는데,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 취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스위프트에서 배제된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별도의 국제 결제망을 강화하려고 나설 수 있는데, 이는 중장기적으로 달러 패권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또한 스위프트 제재로 원자재 교역에 애로 사항이 발생하면 전 세계 물가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전슬기 김영배 이지혜 기자

 

정부, 대러시아 수출통제 참여…3월 초 미국과 협의 착수

우리 기업 결제 애로 시 대체계좌 개설 등 지원

 

 27일(현지시각) 포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 키예프주 바실키프 군사기지 주변의 저유소가 불타고 있다. 바실키프/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라 미국과 동맹국들이 경제 제재에 나서면서 우리 정부는 수출통제 참여와 관련한 세부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오는 3월 초부터 신속한 대미 협의에 착수하기로 했다. 정부는 “사태의 불확실성이 크고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실물경제·금융시장 등 분야별로 일일점검체계를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27일 오후 정부 서울청사에서 제7차 우크라이나 사태 비상대응 티에프(TF) 회의를 열고 러시아 제재에 따른 부문별 대응 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조치 계획을 논의했다. 지난 24일 미국 정부가 발표한 대러시아 수출통제 강화 조처로 우리 기업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되면서, 우리 정부는 3월 초부터 신속하게 대미 협의에 착수하고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정부의 대러시아 금융제재에 대한 대응방안도 논의됐다. 정부는 “금융제재 대상이 되는 러시아 은행·기관과 거래 중인 국내 금융회사·기업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며 “대러시아 결제 애로가 발생할 경우 우리 기업의 대체계좌 개설 등을 통해 무역대금 결제에 지장이 없도록 관계 외교당국과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금융감독원 내에 ‘비상금융애로상담센터’를 설치에 기업, 현지 주재원 및 유학생 등의 금융 애로 사항을 접수받아 지원에 나섰다.

 

정부는 주력산업 공정에 활용되는 네온·크립톤·크세논 등 핵심품목의 단기적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주력산업 핵심품목은 업계에서 자발적으로 재고 보유량을 미리 확대조치 해둔 상황이라 단기 수급에는 문제가 없지만 사태 장기화 등으로 수입이 장기적으로 중단될 경우 수급 우려 가능성이 상존한다”며 “기업과 핫라인을 즉시 구축해 수급현황을 세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제3국 수입, 재고 확대, 대체재 확보 등을 통한 수급 안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우크라이나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전원 대피했고 러시아 현장에 남은 108명 역시 안전에 이상 없이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금융제재 및 향후 추가제재 여하에 따른 기존 사업 중단 및 신규사업 수주가 곤란해질 가능성 등 불확실성이 상존한다”며 “오는 3월2일 긴급상황반 회의를 통해 제재 세부내용 판단, 기업영향 등을 검토하고 기업애로 상황을 청취해 대응계획을 구체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향후 사태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정부는 범부처 비상대응 티에프(TF)뿐만 아니라 실물경제·금융시장 등 분야별로 일일점검체계를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러시아의 무력침공 상황과 서방의 추가제재 가능성 등 향후 사태 전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경로, 범위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향후 경제·산업·금융의 각 분야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는 한편, 필요한 조처는 선제적으로 실시하고 사태가 장기화되어 서방과 러시아의 대결 국면이 고착화되는 경우까지 가정해 대응 조처를 보강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