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중국의 법가사상가인 한비자(韓非子)는 나라가 망하는 10가지 징조를 열거했다. 그 중에 첫째로 꼽은 것이 법치(法治)의 와해였다. “법을 소홀이 하고 음모와 계략에만 힘쓰며 국내정치는 어지럽게 두면서 나라 밖 외세만을 의지하다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2천2백여년 전에 설파한 이 경고가 마치 오늘의 시대상을 꿰뚫어 보고 일갈한 것만 같은 감이 드니, 한비자의 혜안에 혀를 차게된다.
 
한비자는 중국의 전국시대 인물로, 군왕의 원만한 치세를 위해 법치와 엄벌주의를 강조했다. 법을 엄격히 적용해 잘잘못을 상벌함으로써 나라의 기강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법과 원칙이 바로 서야한다는 명제는 현대 국가에서도 사회정의 구현과 질서 유지, 공동선을 이루어 나가는 기본이요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법과 원칙이 생활화·보편화 되어있는 것은 그걸 말해준다. 그러나 불행히도 후진적 사회에서, 특히 권위주의 체제에서 법치의 주장은 독재자들 구미에 딱 들어맞는 말로 통치의 방편에 활용돼 왔다.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군왕적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스스로는 법과 원칙을 고무줄처럼 여기면서, 백성이 권위에 도전하는 경우에는 매섭게 적용해 처벌한다. 그런 ‘두 얼굴의 법치’에서 ‘유권무죄 무권유죄’니 ‘유전무죄 무전 유죄’라는 조어가 생겨나 비아냥을 산다. 실제로는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닌 권력의 편의적 방편으로 이용하는 데 따른 것이다.
요즘 그 고무줄 같은 권력 위주 법치의 모습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후진성을 ‘과시’하고 있다. 법치를 최전방에서 수호하고 집행해나가야 할 국가기관이 법치의 기본정신을 훼손하고, 권력 편에 서서 법치를 ‘권치’(權治)로 변질시키고, 만인을 위한 법이 아닌 권력자를 위한 방패막이와 때론 ‘몽둥이’로 악용하고 있는 격이다.
 
국가기밀로 분류된데다 외교적 협약이라고도 볼 수 있는 국가 정상간의 대화록을 불법 유출해 정치선전에 활용한 집권여당의 유력자들이 모두 면죄부를 받고 단 한 명만 벌금형으로 기소됐다. 특히 최고의 보안기관 책임자가 기록물을 까발려 정치적 파동을 부른 ‘국기문란’ 행위에도 검찰은 ‘무혐의’란 선물을 안겨줬다. 그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인터넷 댓글공작을 벌여 선거민심을 왜곡한 ‘헌정문란’ 사건에도, 현장에서 적발된 여직원이 방안에서 버티며 증거인멸에 안간힘을 쓴 사이 밖에서 지켰던 야당인사들은 4명 모두가 ‘감금죄‘로 몰려 벌금형에 약식 기소되는 역발상의 법적용으로 사람들을 아연케 했다. 대선 직전이던 그 당시 “댓글공작은 없었다”고 국민을 속였던 경찰책임자는 죄가 입증되지 않는다고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민중의 몽둥이‘라는 경찰이나, 권력 눈치만 보며 성의없이 공판에 임한 검찰이야 어차피 ’견찰‘(犬察)이나 ’권력의 시녀‘라고 전락한지가 오래니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국민이 한가닥 희망을 걸고있는 법원마저 ‘무죄’를 선고한데서는 마지막 보루가 무너져 내리는 절망을 보게된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까지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국회의원들의 선고기일을 자꾸 늦춰 “금배지를 연명시켜 주고 있다”는 비판이다. 기소로부터 1심이 6개월, 그 후 항소심과 상고심은 각 3개월 내 사건을 종결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음에도 최고법원이 법을 어기는 비정상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법원까지 권력의 눈치를 보는 ‘권치’의 확산을 본다. 세월호는 과연 몇번 침몰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한비자 보다 1천여년 전인 BC 13세기 무렵에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인도로 애굽 땅에서의 노예생활을 벗어나 가나안을 향한 광야생활을 맞이한다. 이 때 60여만 명의 백성은 오합지졸이요 온갖 악행에 빠져들지만, 하나님이 명한 규례와 율법을 지킴으로써 비로소 질서있고 품위있는 백성으로 거듭난다. 율법은 지도자 모세도, 백성도 모두가 지킴으로서 ‘법치’를 이루고, 하나님의 언약을 구가하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비단 한 사람 권력자만을 위한 법치가 아닌 백성을 위한, 만인을 위한 공평한 법치는 정의롭고 차별없는 세상, 모두가 행복한 선진사회를 이루는 첩경이다.
 
성경 구약 신명기(4장 6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 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국격’을 자랑하는 품격있는 선진국으로의 열망을 지녔다면, 한국의 권력자와 사정기관들이 새겨듣고 명심할 성구가 아닐 수 없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