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누구를 위한 법인가

● 칼럼 2014. 7. 31. 13:05 Posted by SisaHan
15년 전 어린이 19명이 불에 타 숨진 씨랜드 참사 현장에는 여전히 불법 가건물로 가득한 캠핑장이 운영되고 있다. 
태안의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다섯 청소년이 익사한 지 1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캠프는 영업 중이고 여행사 대표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사고가 날 때마다 온 국민이 울고 국화꽃이 쏟아졌건만, 그리고 정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약속했건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참사는 반복되었다.
왜인가?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고 뒤 이뤄진 조사는 원인을 제공한 악덕 기업이나 개별 범죄자에 머물렀지 그 뒤를 봐 주던 정관계의 공모 구조를 밝히지 못했다. 또 현행법상의 위법 여부만 따졌을 뿐 안전과 관련된 법제도 전반을 점검하여 어디가 어떻게 부실한지도 밝히지 않았다.
형식적인 진상조사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빠져나갔고 재발을 막는 제도 장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국가는 사실상 ‘기억’의 소멸을 조장해왔다. 그 결과가 바로 세월호 참사다.
이제는 이런 비극을 끝내야 하지 않을까? 잠시 눈물짓다가 일상으로 돌아와선 나와 가족이 언제 어느 바다에서, 건물에서, 휴양지에서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위험사회에 떨며 살아가는 일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세월호 특별법, 아니 4.16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다.
유족들이 350만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한 4.16 특별법의 목적은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막고 안전사회를 세우는 것’이다. 왜곡되고 오해되는 것처럼 유가족들에게 특혜를 주는 법이 아니다. 특별법의 핵심은 ‘수사권·기소권을 지닌 독립적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이다. 이전의 진상조사가 겪었던 한계를 넘어 사태를 뿌리부터 규명하려는 유족들과 시민사회의 의지인 것이다. 
진상조사가 이뤄져 벌 받아야 할 사람들이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벌을 받을 때, 권력자나 기업은 부패의 단맛보다 법의 엄정함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특별위원회는 재발방지 조처를 연구하여 정부에 권고하고 정부는 그 권고를 이행할 의무를 지게 된다. 이럴 때 대한민국은 반복되는 재난공화국에서 안전한 사회를 시민권으로 보장하는 참된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유족들이 국회에서 단식하며 요구하는 것이다. 
4.16 특별법은 유족들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법, 다음 세대를 위한 법이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복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법이다.
그러나 여야는 유가족의 법안이 아닌 자기들의 법안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야당은 기소권은 쏙 빼고 수사권만 주장하고 있으며 여당은 수사권마저 못 받겠다고 한다. 여당은 조사기구에 수사권을 주는 게 “전례가 없다”고 하는데, 그런 전례가 없었기에 지금껏 사고의 진실 규명이 흐지부지되고 참사가 반복됐던 것이다.
 
이번 사고처럼 총체적인 재난 대응 부실의 원인을 밝히려면 청와대를 추궁해야만 한다.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 검찰이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국정조사에서 봤듯이 ‘VIP’ 보호에 급급한 새누리당이 주도하는 국조특위가 할 수 있을까? 국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이 할 수 있을까? 
특단의 사태에는 특단의 선택이 필요하다. 이제 국민이 일어나서 여야를 압박하고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되기 전날 이렇게 연설했다. “어떤 어려움에도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산꼭대기에 올라 ‘약속된 땅’을 보았습니다.” 
4.16 특별법은 사람이 존중되는 안전한 나라로 가는 길이다. 우리에겐 그 길을 갈 충분한 힘이 있다.
< 오준호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