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솔로몬과 여로보암

● 칼럼 2014. 11. 18. 17:52 Posted by SisaHan
어쩜 한 편의 설교를 쓸지도 모르겠다. 제목의 두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고 서로가 연관이 있는 사람이다.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고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지혜의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그의 재위 말년에 그는 이방 나라와 통혼하고 많은 처첩을 두었으니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을 범죄케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솔로몬으로서는 자신의 재위시나 사후에 나라를 안정시키는 비결이 주변 국가와 좋은 관계를 이루고 사는 것이며 그것은 양국간에 사돈 관계를 맺으면 더욱 안전할 것이라 보았을 것이다. 그 결과 이방 여인들이 가지고 온 우상으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섬기는 나라가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국가가 되었다.
 
내치에 있어서는 자신의 신하 가운데 여로보암이 문제였다. 그는 솔로몬에게 충직한 신하였고 백성들의 신임을 받으며 개인적으로 하나님에게서 장차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까지 받았다. 이후 왕위의 두려움을 느낀 솔로몬이 그를 죽이려 했으니 이것을 피해 여로보암은 애급으로 달아난다. 솔로몬의 사후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애급에서 돌아와 백성들과 함께 르호보암에게 와서 솔로몬 당시에 가졌던 부역과 세금을 감면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거절 당하자 백성들과 함께 나라를 세웠으니 그것이 북왕국 이스라엘이다. 
북왕국의 시조가 된 여로보암 역시 나라를 세우고 보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통치하에 있는 백성들이 비록 나라는 갈라졌으나 민족의 절기인 유월절 같은 때 제사를 위해 성전이 있는 남왕국의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면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그에게 생겼다. 그래서 대안과 같은 꼼수를 부렸으니, 절기도 바꾸고 자기가 만든 금신상을 단과 벧엘에 두고 꼭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드릴 필요 없이 여기에서 제사를 드려도 같은 제사가 된다고 역설한다. 또 그 제사를 집례해야 할 제사장도 레위 지파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세웠으니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여기서 문제는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솔로몬의 경우 하나님을 그렇게 신뢰하고 지혜로웠던 왕인데, 어찌 그의 지혜가 세상적인 방식으로 나가 이방 여인들과 통혼함으로 우상을 섬기는 나라를 만들었으며, 자신의 신하를 믿지 못해 박해하다 죽이려 한 결과 그의 나라가 갈라지고 말지 않았는가. 
여로보암의 경우도 그렇다. 하나님이 그를 세우셨고 그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조건 그대로 여호와만을 섬기는 왕이 되었더라면 나라는 그냥 정상적으로 잘 돌아갈 수 있었을 터인데, 인간적인 방식을 도입하여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을 때 그에게 주어진 것은 후손들이 모두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악한 오명을 남기게 된 것이다. 
솔로몬과 여로보암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쓰다 실패한 왕들이고 오명을 남긴 자들이 되었다. 한국영화 ‘명량’이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서 느낀 것도 바로 그것이다. 지도자는 신하를 믿어야 하고, 지도자는 어떤 꼼수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 말고 진실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그것은 신앙인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이 과거 시대와 많이 다르다고 해도 성경적인 삶에서 달라져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자신의 위치나 주변의 여건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일들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세상적인 방식, 인간적인 어떤 방식이나 이벤트를 통해 성도들의 마음을 모으고 교회를 이끈다면 거기에는 또 다른 폐해가 생기는 것이다.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