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지도자 철학

● 칼럼 2015. 1. 16. 19:36 Posted by SisaHan

사회부 기자 초년병 시절이었다. 당시 사회부는 행정관서와 법조·사법기관들을 담당하며 주로 사회면 기사를 만들어 냈다. A부장은 항상 행정적인 정책기사에 관심이 많아 부하기자들이 쓴 기사들 가운데 대형 개발계획이나 행정조치들, 시민들의 민원대응 등이 톱기사가 되고 크게 다뤄졌다. 그 뒤의 후임 L부장은 사건에 비중을 두어 공무원 비위나 독직사건, 경찰의 강력사건 수사, 법원의 판결 등이 톱으로 오를 때가 많았다. 취재방식도 서로 달랐다. 술 잘하고 능글맞은 A부장은 공무원들을 자주만나며 서류를 열심히 뒤지면 큰 기사가 나온다고 강조했고, 대쪽같던 L부장은 현장을 많이 뛰라, 경찰서와 병원 같은 일선에 기사가 널려있다며 밤낮 발로 뛰라고 지시했다. 전임과 후임의 기호와 성품, 판단기준에 따라 신문의 사회면 색깔이 확 달라졌다.


앞서 대학 1학년 때 산악반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산을 좋아하는 학생들 50여명이 모인 동아리인지라 어떤 학생들은 워킹, 즉 순수한 등산을 선호하고, 어떤 학생들은 바위를 기어오르는 암벽등반을 더 좋아했다. 공교롭게도 1년에 회장이 2번 바뀌면서 한동안은 주말마다 일사불란한 대열을 지어 산릉을 누벼야 했다. 그러더니 그 다음 한동안은 인수봉과 백운대, 만경대의 아찔한 암벽에 붙어살아야 했다. 주장이 산능선을 타면 수없이 걸어야 했고, 암벽을 즐기는 사람이면 대원들도 어쩔 수 없이 맨손이든 주렁주렁 인공등반 장비를 매달고든 바위를 기어올라야 했다. 당연히 암벽을 즐기는 대원들은 능선과 계곡을 걸으며 투덜거리고, 암벽의 공포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바위에서 추락의 위기를 감내하며 오그라드는 손발로 선배 뒤를 따르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주장이 암벽으로 끌고다닐 때 동아리 회원이 크게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작은 그룹들만 지도자의 취향과 방향설정에 따라 모임의 성격과 목표와 결과가 달라지는가. 아니다. 시민-사회단체나 대기업 혹은 자치단체도, 더 나아가 나라의 국정진로도, 지도자 한 사람으로 인해 바뀌고 성패가 좌우되는 것은 오십보백보다. 지도자의 역량과 소양, 철학에 의해 조직이 나아갈 방향이 바뀌고 살아남거나 패망하기도 한다.
기업오너의 판단착오가 장수하던 기업을 하루아침에 몰락시킨 사례는 많다. 역사적으로 볼 때 히틀러가 나치독일을,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이태리를, 일제 히로히토가 아시아 수천만 민중을 핍박과 참살의 고통을 겪게하고 패망한 것은 인애(仁愛)를 모르는 비정과, 무개념·철학부재 지도자의 만용과 탐욕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기본적으로 시스템이 작동하는 근대 행정기관이나 국가조직은 단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 크게 방향을 튼다고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한 사람의 독선에 의해 파멸로 치달은 경우는 독재국가나 왕정시대 독재자·군주의 전횡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정권을 늘 불안하게 여기는 것도 단 한사람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정상적인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면 지도자 한사람에 의해 나라가 좌로 혹은 우로 엄청나게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지도자가 중요하고 막강한 것은, 지도자가 끌고가는 국정의 방향과 철학에 따라 국운의 부침이 있고, 국민 삶이 지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모국에서 대통령의 신년회견이 끝나자 마자 온통 들끓고 있다. 민심과는 전혀 동떨어진 마이웨이 연설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하나만 예를 들면, 그의 당선을 도왔던 한 교수는 “책임질 줄 모르는 졸렬함, 국민이 아닌 자신만 보고 가겠다는 태도로 민주국가에선 보기 어려운, 세계에는 없는 현상”이라고 힐난했다. 마치 왕정국가처럼 제왕적인 권력을 누리면서 책임은 모두 부하들이나 제도 탓으로 돌리는 전근대적 행태와 유체이탈 철학에, 지지율이 자꾸 떨어지는 것을 보면 국민들도 피곤하고 염증이 인다는 얘기다.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인 노자는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임금 보다 못한 것은 업신여기고 멸시하는 임금”이라며 백성의 신의를 중시했다, 국정은 난맥의 연속이고 뚜렷한 비전도 없으니, 신뢰를 접고 업수히 여길 정도가 되면 나라와 국민에게 더 이상 불행한 일이 없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모름지기 군림이 아닌 섬김의 자세,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철학의 소유자다. 그런 모습이 전혀 안보이고 오직 자기중심에 빠져 옳다고만 우기니 답답할 수 밖에.
두 달여 지나면 이곳 작은 한인사회도 회장을 뽑는다며 벌써부터 서두는 출마자들이 있다. 겨우 1천명 안팎의 지지로 당선되어 한인회 일을 하게 된다지만, 그들도 지도자라면 어엿한 지도자가 된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동포들을 위한 섬김의 철학이 있는 것일까.


한인회장 자리를 대단한 권력과 감투라고 여겨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닌가. 자신을 희생하며 비전을 열어가겠다는 소신과 철학 따위 아랑 곳 없이, 얼굴 세우고 관변 대우받는 우쭐함에, 10만명이 넘는 동포사회 대표랍시고 거드름을 피워 볼 저급한 생각이라면 한인사회 먹칠이요 동포들 한탄만 늘어날 터이니 아예 조용히 주저앉는 게 낫지 않을까.
자만과 아집에 빠진 이들에게 아무리 외쳐본 들 ‘쇠귀에 경 읽기’요, 제 나르시즘 철학이 최고라고 여길 테니, 입만 아프고 속터지는 일이기는 마찬가지지만….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