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빚진 자의 몫

● 칼럼 2014. 12. 26. 18:42 Posted by SisaHan

오늘도 그 편지를 받았다. 12월에 들어서며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여러 자선단체들이 앞다투어 보내는 기부금 요청서, 그것은 평상시 잊고 지내온 이 사회를 위해 내가 한 일보다 받은 혜택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우송된 여러 단체 중 너더댓을 선정하여 작은 마음을 담아 보내는 일이 내 연례행사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나마 한 해의 마무리로 내가 소속한 사회에 빚진 몫을 감당하고 나면 묵직했던 가슴이 한결 가벼워왔다. 이미 상품화되어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 주인공 없는 크리스마스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 전, 어머니께서 암수술을 받으셨다. 담당의사는 초기 증세인데다 이미 80세 고령이시니 수술 후에 키모 대신 방사선 치료를 권했다. 토론토 다운타운에 있는 암 전문병원에서 1주에 세 번씩 한 달간 방사선치료를 받아야 했다. 당시 우리 삼형제는 모두 시외에 살고 있어 토론토에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다운타운에 있는 그 병원을 왕복하자면 꼬박 하루를 소모해야 할 형편이었다. 더구나 모두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으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접한 담당의사는 암환자를 위한 자선기관(Cancer Society)을 소개해줬다. 그곳에서는 치료 스케줄을 검토한 후 쾌히 무료 픽업서비스를 약속해줬다. 환자의 치료를 돕기 위한 무료 픽업서비스라니, 말로만 들어온 그들의 봉사활동이 냉가슴을 녹였던 것이다.


방사선 치료기간 동안 그 단체에 속한 자원봉사자들이 어머니 아파트로 와서 병원에 모시고 갔다가 치료가 끝나면 다시 집으로 모셔다 드렸다. 영어를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매번 나타났기에 안심하고 모든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들의 픽업환자는 어머니 혼자만이 아니라 이곳 저곳 들려 다른 환자들도 여럿이었기에 어머니께서는 동병상련의 위로도 받으실 수 있었다. 이 일로 캐나다정부가 자식보다 낫다는 말이 헛말이 아님을 실제로 경험했다. 사실 캐나다에 살면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사는 것도 감사한데 이렇게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이 사회 전반에 걸쳐 일사불란 하게 펼쳐지는 줄은 전혀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운전봉사자들이 칠십이 훨씬 넘은 백발의 은퇴 노인들이었으니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건강한 사회, 아름다운 사회 뒷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세심한 배려와 숨은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그 일은 나로 하여금 소극적이나마 기부문화에 동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몇 년 전 모국을 방문했었다. 십여 년 만에 만난 친구 J는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린 사람 같았다. 자신이 아끼는 이웃을 위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그랬다. 지인들은 그녀로부터 깜짝 선물을 받는 일이 잦았다. 어느 날 우연히 그녀의 손 지갑에서 작은 사각으로 접힌 지폐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 아직 손주도 없고 장성한 두 아들뿐인데 이것을 무엇에 쓸 거냐고 물었다. 대답은 의외였다. 어느 장소에서나 쉽게 꺼낼 수 있게 미리 준비해 놓은 거란다. 출퇴근 길에서, 전동차 안에서 만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건네주려고 가장 편리한 손 지갑 속에 챙겨놓고 다닌다는 나의 친구 J.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외면하고 지나가는데 유독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는 그녀에게서 훈훈한 사람냄새가 풍겨 나왔던 것이다. 근래에 와서 보편화된 해외여행도 한번 가보지 못한 그녀지만, 충만한 기쁨으로 옹달샘 같은 소박한 삶을 이어가는 모습은 결코 평범하다고 볼 수 없었다.


이웃들과 마음을 나누는 사랑과 평화의 절기, 크리스마스를 맞으며 새삼 그녀 앞에 부끄러움으로 선다. 나날이 나와 내 가족만을 챙기는 근시안적 사랑에 파묻혀 타인에게는 따듯한 눈길조차도 건네지 못하는 메마른 내 얼굴이 확대돼오니 말이다. 이 시간만이라도 촉촉하고 넉넉한 사랑을 향해, 타오르는 열망을 가득 품는다. 더한층 아름다운 새해를 꿈꾸며.

< 원옥재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