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쿠바가 지난 17일 53년 동안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 합의를 발표했다. 두 나라 수교는 냉전 잔재의 청산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앞으로 북-미 관계 개선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환영한다.


양쪽 정상의 발언은 모든 나라가 새겨들을 만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어떤 나라를 실패한 국가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는 교훈을 어렵게 얻었다”고 밝혔다. 쿠바의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 오랜 봉쇄정책이 실패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한 것이다. 대북 정책에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우리는 세련된 태도로 서로 다름과 공존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북한 지도부에 도움이 될 말이다.


두 나라의 결단에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작용했다. 우선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20년이 넘도록 쿠바 봉쇄를 고집해 국제사회에서 오히려 고립되는 처지가 됐다. 수백만명에 이르는 쿠바계 미국인의 분위기가 관계 개선 쪽으로 바뀐 것도 부담이었다. 혁명 1세대로서 2006년 권력을 승계한 라울 의장은 개혁·개방 정책과 함께 꾸준히 대미 관계 개선을 꾀했다. 더 중요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결단이다. 그가 점진적 관계 개선을 넘어서 국교 정상화까지 선언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남미계로 처음 바티칸 수장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이 양쪽 협상을 적극 중재한 것도 돋보인다.


이제 국제사회의 관심은 북-미 관계의 앞날에 쏠리고 있다. 오바마 정권 출범 이후 미국은 봉쇄 대상국 가운데 쿠바·미얀마·이란 등과 관계를 정상화하거나 협상을 벌이고 있어 이제 사실상 북한만 남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 쿠바와 달리 핵·미사일 등 안보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많다. 하지만 이번처럼 양쪽의 발상 전환과 적절한 중재자가 전제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 정부 안에서 대북 대화론이 제기되는 것은 긍정적이다. 북한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집중하면서 유연한 대외관계를 추구해온 쿠바의 실용주의적 태도를 배워야 한다.


미국과 쿠바의 수교는 최근 협력보다 갈등이 부각되는 지구촌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북한 핵 문제 해결과 북-미 수교 등이 동시에 이뤄지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 그 출발점은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재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