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리더와 추종자들

● 칼럼 2015. 2. 15. 14:48 Posted by SisaHan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 있나?“
세상에 흠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자조섞인, 그리고 합리화하고 동정적인 말의 하나다. 간음한 여인을 쳐죽이자고 기세등등한 군중에게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의 말씀에 어느 누구하나 감히 돌을 던지지 못했다. 남의 눈의 티끌만을 보다가 자기 눈에 씌인 대들보를 보지못했던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고 죄인 아닌 자가 없음을 자인한 것이다.
모두가 죄인이라는 기독교적 인간관이 아니어도,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실수나 허물을 만들지 않는다면 이상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크고 작음의 질적 수준에 있다는 사실이다. 차를 몰고 가다 접촉사고를 낼 수는 있지만, 파란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인을 치었다면 법적제재의 기준이 달라진다. 그렇게 사람을 친 후 더구나 뺑소니를 쳤다면 또 처벌은 무거워진다. 거기에 달아난 사람이 교수나 목사나, 시장 군수 혹은 장관이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게 변한다.
인사청문회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리가 ‘양파껍질’ 혹은 ‘고구마 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벗기고 들출 때마다 끝이 없이 드러나는 것을 보는 사람들 심경이 복잡하다. “도대체 일국의 지도자라는 작자들 수준이 하나같이 그 정도인가” “병역과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세금탈루는 필수 4대 세트” 등 힐난하는 소리가 비등하다. 그런가하면 “신상털기가 지나치다,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 있나”고 동정적이며 감싸려는 여당측 엄호사격에 동조하는 이들도 많다.


한국에 인사청문 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0년 6월, 16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법’을 제정하면서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당시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가 처음으로 청문을 거쳤다. 그 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3년 1월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장도 국회의 청문회를 거치도록 법이 바뀌었고, 2005년 7월에 다시 법이 개정되어 모든 국무위원 내정자가 인사청문 대상이 됐다. 당시의 청문회 대상 확대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부동산투기 논란으로 낙마하자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근혜 현 대통령이 모든 국무위원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이뤄졌다.
그런데 그 당시의 낙마자들은 지금에 비하면 ‘좀도둑 수준’이라고나 해야 했다. MB(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소위 ‘비리세트’가 등장하여 장관 후보자들이 ‘세트’를 갖추지 못한 사례는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드물게 되고 말았다. 최근 도마에 오른 이완구 총리후보자에 이르기까지. 오죽하면 현 정부 초대총리 내정자가 맥없이 사퇴해 버리자 ‘청문대상 확대’를 외쳤던 박 대통령이 “그런 식 신상털기 청문회 하면 누가 나서겠나”며 청문회 축소를 주장하고 나왔겠는가. 총리를 물색해도 ‘공개망신 당할 일 있느냐’며 서로 안하겠다고 사양한다는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다.


‘털기’식 청문회나 대상자들의 비리수준도 문제지만, 근래들어 깨끗하고 존경받을 만한 장관감이 거의 없다보니 아예 당사자나 국민들의 비리불감증이 보편화 된 게 진짜 심각한 문제가 되어 버렸다. 어지간한 먼지는 먼지로 보이지도 않아서, 나라 안이 온통 미세먼지로 가득차도 무덤덤해져 ‘뭐 나라고 어때?’하는 온 국민의 도덕수준 저하증세가 갈수록 심해지는 중인 것 같다.
누가 뭐래도 그 가장 큰 공로자는 MB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분방’한 건설족 출신이어선지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고위공직자들 도덕수준이 형편없이 추락했다. 수많은 낙마자를 내는 바람에 어지간한 비리는 문제 삼기조차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 저급한 전통이 지금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으니 참, 나라 꼴이 우스워졌다. ‘ㄱ에서 ㅎ까지’ 비리열전이 펼쳐진 이완구 후보자가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며 ‘서구나라 같으면 국회의원도 사퇴해야 할 수준’이라는 여당 비대위원을 지낸 이상돈 교수의 지적에 쓴웃음이 나오는 까닭이다.


성인군자를 찾는 것은 아니지만, 무릇 국민 앞에 서겠다는 지도자라면 최소한의 도의적·윤리적 몸가짐은 필요한 법이다. 그런 지도자들 주변에는 또 그런 추종자들이 따르게 마련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에 ‘새들도 같은 깃털끼리’라는 말마따나 비리에 무딘 사람이 대통령이다 보니 참모나 인재풀 등 주변인물도 그런 부류가 모여든 것이다. 순진한 국민들 양심과 도덕수준까지 오염시킬 정도로 나라를 멍들게 한 죄과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요사이 토론토에서는 차기 한인회장 선거를 앞두고 공식 선거일정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과열양상이 나타나 동포들을 상심시키고 있다. 어느 후보 진영의 운동원격인 사람은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언론사의 편향을 요구하는 상식이하의 행동으로 지탄을 받아 캠프내에서도 골머리를 앓고있다 한다. 본격 선거전에 앞서 진용을 재정비한다니 두고 볼 일이다. 주변 사람들은 후보자, 곧 리더의 성향과 수준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고, 뜻있는 동포들은 한인회와 한인사회의 명예에 걸맞는 최소한의 자질을 지켜 볼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MB의 교훈’을 되새겨 볼 일이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