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갈수록 커지는 양상을 보인다. 자칫하면 한-미, 한-중 관계가 다 손상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며 줄타기를 하려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부의 명확한 태도 표명이 필요한 때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중국은 두 사안을 두고 차관보급 고위 공직자가 서울에서 공개적으로 상대를 견제하는 발언을 하는 데까지 왔다. 발언 내용도 이전보다 직설적이다. 사드 문제와 관련해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가 16일 “중국 쪽 관심과 우려를 중요시해 달라”고 하자,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7일 ‘아직 배치되지 않은 안보체계에 대해 제3국(중국)이 강하게 언급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맞받았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문제에서도 류 부장조리는 우리나라의 참여를 촉구했으나 러셀 차관보는 이 은행의 지배구조와 투명성 등을 문제삼았다.


이 가운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 문제에서는 미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영국에 이어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도 가입 움직임을 보이고 미국 안에서도 가입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가입을 미룰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더이상 미국의 눈치를 본다면 은행 내 발언권 저하를 비롯해 국익 침해가 예상된다. 중국이 과도하게 주도하는 지배구조 등의 문제점은 참여해서 바꿔 나가는 게 현실적이다.


사드 문제는 균형외교와 동북아 평화라는 원칙에 따라 빨리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중국은 사드의 한국 배치가 ‘한국 안보 필요성을 너무 과도하게 벗어나’ 자국에 위협이 될 것으로 본다. 사드가 배치될 경우 한-중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정부도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구축하는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엠디) 체계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혀왔으며, 북한 위협에 대해서는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엠디의 일부분인 사드 배치는 이 원칙에 어긋난다.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전혀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사드 배치를 전제로 할 경우 기존 국방계획이 크게 바뀌어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는 사드 배치 반대 뜻을 분명히 해 무익한 갈등을 종식시키기 바란다. 전략적 모호성은 미국이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면 못 이기는 체 따라가겠다는 기회주의적 태도의 표현일 뿐이다. 국방부는 17일 ‘우리의 국방안보 정책에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더 급한 일은 갈등을 키울 소지를 없애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