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세월호 참사마저 묻힌다면

● 칼럼 2015. 4. 18. 19:26 Posted by SisaHan

세계인이 지켜보는 눈 앞에서 거대한 여객선이 기울며 바다 속으로 빠르게 잠겨갔다. 그 안에 3백명이 넘는 귀중한 생명이 아직 남아 생사의 갈림길을 벗어나려 절규하고 있는데, 더구나 불가능을 모르는 팔팔한 도전의 꿈과 생동하는 젊음을 지닌 고등학생들이 대부분인 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세월호의 절망적인 최후, 그렇게 안타까운 4.16 참사가 1년을 맞았다. 그 대참사의 상처가 아물기에 1년이란 너무 짧은 시간인 것일까. 그래도 망각의 동물인 사람들에게 1년 365일이면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고 고통의 강도가 약해지는 상당한 시일이다. 그런데 여전히 세월호 상처는 피를 멈추지 않은 채 쓰리고 아린 통증이 가실 줄을 모른다. 어쩌면 유족들과, 그들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만 아직도 깊은 고통으로 남아있을 뿐, 남의 일이고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벌써 아련한 옛 일로 잊혀가는, 어서 잊어버리고 싶은 귀찮은 ‘교통사고’로만 남아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리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뇌리에 뿐만 아니라 그들의 현생과 미래 그 자손들에게까지도, 우리 시대 함께 사는 모두에게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주홍글씨’로 각인되어 전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까닭은 사고의 규모나 경위, 배경, 이후의 진상덮기와 방해 등 총체적인 상황 모두와 의혹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럿 가운데서도, 진실을 차단하고 훼방하는 무능 무책임한 권력의 끝없는 만행이 역설적으로 세월호의 역사성을 강화시켜 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계가 주시하는 데도 수많은 생명이 생매장 되어가는 충격적 현장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죽음 방조’의 국민적 공동 책임의식과 ‘대한민국 침몰’을 본 수치심과 분노가 그 다음일 것이다. 자식들을 졸지에 수장시킨 부모들의 찢긴 심정을 아는 수많은 부모들이 가슴 아파하며 잊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근대사를 되짚어 보노라면 세월호의 연원은 어제 오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역사가 자유를 위한 압제와의 투쟁, 진실을 향한 불의한 권력과의 대결로 점철돼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처럼 자유와 진실이 꽃을 피우지 못한 채 꺾이고 잘리고 덮여버린 역사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적어도 동방의 선비나라인 조선시대까지는 나라에 재앙이나 환난이 닥치면 임금 스스로 부덕을 탄식하며 백성을 위로했고, 재상 관작들은 직을 물러나 책임을 자청하곤 했다. 그러나 조선말 외세의 침탈 이후 책임을 방기하며 강압으로 진실을 덮어버리고 봉합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채 속으로 곪고 퍼져 오랜 병소가 되고, 또 생겨난 상처는 그 위에 가림막으로 포장만 하는, 만성 골병을 앓게 된 습관적 병자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지난 질병의 원인균들이 깨끗이 박멸되지 못하고 그대로 잠복해 있다가 다시 재발되곤 하는 만성질환의 하나로 세월호 참사가 터진 것이다.


세계적 민중혁명인 동학의 실상은 일제에 의해 철저히 묻혀버렸다. 3.1 독립투쟁 역시 민족자존과 민족 자결주의 물결에 기름을 부은 혁명이었지만, 일제와 친일세력들에 의해 박해되고 ‘운동’으로 격하되고 말았다. 해방 이후 민족정기를 바로잡으려 제헌국회가 만든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무참히 와해되어 친일파 색출은 물거품이 됐고 이후 친일후예들이 권력주류인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후 그런 사례는 관성이 붙은 듯 끝이 없게 되었다. 최근의 대표적인 자원외교 비리, 천안함 논란, 대선 댓글공작과 남북대화록 유출, 정윤회 의혹 등등까지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이 꼬리자르기와 물타기로 묻혀가는 사이, 그 연장선에서 잠재된 병소가 부풀어 세월호 참사가 나고, 역시 습성대로 진실덮기와 눈가리기의 되풀이인 것이다. 그러니 ‘성완종 리스트’ 규명은 어떤 결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벌써 ‘물타기·물귀신’ 작전이 등장하는데….


세월호 유족들의 절규는 그런 골병과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하소연이며 애국충정에 다름 아니다. 그들을 힐난하는 이들과 세월호 규명을 한사코 막는 세력이야 말로 나라의 골병을 그냥 안고가자는, 국가 품격의 도약을 가로막는 망발임을 아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마저 진실을 그럭저럭 덮고 간다면 또 다른 참사와 비리가 잇따를 것이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