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나의 소울 푸드 (soul food)

● 칼럼 2015. 8. 16. 17:34 Posted by SisaHan

허기진 마음을 채워 줄 음식이 어디 없을까. 단비 끝에 묻어 온 소슬바람 탓인지 아침 내내 온 정성으로 만든 건강주스를 앞에 놓고도 머릿속은 다른 먹을거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삼복중엔 그래도 보양식인데, 아니면 평소 좋아하는 면류, 혹은 나물류, 갖가지 음식들을 쭉 나열해 보아도 특별히 당기는 게 없어 씁쓰름할 즈음,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김치 국밥 한 그릇이 오롯이 떠오른다.


어린 날 우리 형제들이 아플 때면 어머니가 속성으로 끓여 주신 처방식이다. 그 시절 이후론 내 기억 속에서 까맣게 사라졌던 음식이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심한 몸살감기로 고생하고 있을 때 불현듯이 떠올라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오늘 또 다시 허한 속을 데우라 한다.
나는 단숨에 필요한 재료들을 냉장고에서 꺼내고 스토브를 켜며 준비를 서두른다. 갑자기 바빠진 마음에 부합이라도 하는 듯 부엌의 집기들도 덩달아 달캉거린다.
국밥 한 그릇 준비하면서 이렇게 신바람을 날리다니, 아마도 내 몸이 원했던 것은 단순한 음식물이 아니었던 게다. 음식을 통해 그 맛을 풍미했던 언저리를 돌며 마음의 평온 내지는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이리라.
나는 스테인리스 냄비를 꺼내다말고 주춤한다. 무엇이든 원하는 시간 안에 끓여내는 편리한 전기스토브 대신 바쁠 땐 더 애간장 녹이는 연탄불 위에 알루미늄 냄비 올려놓고 조바심 태웠을 어머니 모습이 아른거린 탓이다.


조그마한 옻칠 소반에 조선간장 종지와 국밥이 전부였던 조촐한 어머니의 상은 온몸의 열꽃을 순식간에 잠재웠던 명약이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녹아있던 그 국밥을 재현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멸치 다시마 육수에 포기김치를 숭숭 썰어 넣고 한소끔 끓인 다음 콩나물, 달걀 등 약간의 부재료들을 넣어가며 끓이다 보면 솔솔 풍겨나는 익숙한 냄새가 회를 동하게 한다.
꼭 같은 음식을 먹어도 옛날 그 맛이 아니라며 투정부리기 일쑤지만 이 냄새만큼은 절대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집집마다 손 맛 장 맛 모두 틀려도 하나로 통일시키고야 마는 김치의 우월성 덕에 어머니의 김치 국밥은 어렵지 않게 재현할 수 있다.
뚝배기에 밥을 담고 그 위에 국을 몇 국자 끼얹으면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나만의 소울 푸드가 완성 된다. 평소엔 소식을 운운하면서도 이 국밥만큼은 뚝배기 위로 큰 산 하나가 더 솟아있기를 원한다. 건강한 육체를 위해 옥죄고 산 세월에 반항하듯 원 없이 풀어놓고 마음껏 흘려 넣어도 큰 무리가 없다.


휘파람 불 듯 휘휘 불어가며 한 그릇 뚝딱 비울 즈음이면 헛헛한 마음에 훈기가 돌고 기운이 솟는다. 그 시절 주위를 맴돌던 미풍이 비로소 내 안에서 꼬물거리기 시작한다.
허기지고 힘들 때, 불안하고 답답할 때 간간이 찾게 될 나의 비밀 병기, 어디 이것뿐이랴. 무쇠 밥솥에서 쪄낸 할머니의 명란 알 찜, 온 식구가 두레상에 둘러앉아 호호거리며 퍼 먹던 띄운 비지찌개, 식사 후 돌아오는 특별한 후식 쌀뜨물 숭늉 등 하나씩 꺼낼 때마다 삶이 풍요로워질 테다.
열거한 소찬들을 굳이 영혼의 음식이라고 이름 붙이긴 뭣하지만, 옛 맛을 추억한다 함은 생애 가장 평온했던 시기로 회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거하다고 볼 수 없다.
세상의 흐름이 힘에 부칠 때를 대비해서 소울 푸드 몇 개 쯤 품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