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문제가 국제사회의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 내전이 격화된 시리아 국민들을 비롯해 중동, 북아프리카 출신의 수많은 난민들이 안전을 찾고자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세살배기 시리아 아이 아일란 쿠르디가 터키의 한 휴양지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돼 난민들의 참상을 생생히 알리기도 했다. 난민 사태는 사람이 사람의 비극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차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인류의 기본적인 인도주의 문제다.


국제사회는 난민 구호를 위해 나름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일은 난민이 처음 도착한 나라가 어디였는지에 관계없이 모두 수용하겠다고 앞장서서 선언했다.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도 난민 수용 규모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는 난민 의무할당제를 논의중이다. 미국도 애초 시리아 난민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비난 여론이 일어나자 수용 규모를 늘리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남미에서도 베네수엘라가 시리아 난민 2만명을 받아들이겠다고 나섰으며 브라질, 칠레도 긍정적 태도를 밝혔다. 애초 유럽의 문제로 치부되던 난민 사태가 이제 세계 모든 나라의 공동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다소 늦었지만 바람직한 움직임이다. 하지만 시리아 난민만 4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에 국제사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관여할 필요성은 여전하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법무부 자료를 보면 시리아 내전이 터진 뒤로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 시리아인은 2012년 146명, 2013년 295명, 2014년 204명으로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3명만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나머지는 난민보다 보호와 권리 보장 수준이 떨어지는 ‘인도적 체류’ 허가에 그쳤다. 그 배경은 난민 신청자가 본국 내전에 따른 신변 위협을 사유로 제시해도 법무부가 인정해주지 않아서라고 한다. 대신에 정치적 이유로 박해받고 있음을 입증할 것을 엄격하게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숨진 시리아 아이 아일란 쿠르디도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외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폐쇄적 기준을 고집하는 것으로, 실상이 알려질까 봐 부끄러울 정도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2013년 7월 아시아에서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실제로 난민 신청자를 대하는 정부와 시민의 인식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최소한의 양심과 인류애를 발휘하는 데 이렇게 인색해서야 제대로 된 인권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