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글마당] 기도밖에 없다

● 교회소식 2015. 10. 23. 15:28 Posted by SisaHan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상 만물 중에 제일 사악한 피조물이 인간이다. 또한 모든 피조물 중에서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시는 것도 사악한 인간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며 불순종하는 배은망덕한 피조물도 또한 인간이다. 어찌하여 이러한 일이 발생 할 수가 있겠는가? 아이러니(irony)가 아닐 수 없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을 감히 거역하며 심지어는 도전까지 하면서 죄까지 지어 죄인이 된 사악한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상대하시며 사랑까지 하고 계시니 이것 또한 역설적(paradox)이 아닐 수 없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셨을까? 성경에 보면 최초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호흡인 성령을 부어 넣어 주셨기에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몸소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은 성품이 착하고 죄도 없이 의로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같기 때문에 사랑하셨다. 따라서 인류 학자들은 인간의 천성설을 주장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짓고 죄인이 되었기에 그후 하나님은 더 이상 죄성을 갖고 태어나는 인간을 몸소 만들 수가 없으므로 인간의 몸에서 태어나게끔 인간의 탄생의 권한을 인간에게 위임한 것이 아닌가? 생각 할 수밖에 없다.


인간들에 의해 태어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살펴보면 정신적 심적인 마음의 사랑과 그리고 육신적인 대단한 사랑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사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으나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조차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인 것이다. 나는 얼마 전 운동을 하다가 숲속 조그마한 나무에 접근하게 되었다. 어느새 조그마한 새 한마리가 겁도 없이 모자 쓴 내 머리를 부리로 부딪치며 계속 도전하기에 살펴 보니 숲 속에 둥지가 있어 조그마한 새 일 망정 새끼를 보호하는 육적인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달았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 하심이리라. 그러나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의 육적인 사랑은 새끼가 자립 할 수 있을 때까지이지만 인간들의 자식 사랑은 세상 생명이 끝날 때까지이다. 오직 기간의 차이뿐이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식에 대한 인간의 사랑도 역시 기간의 차이가 있다. 인간의 자식 사랑은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현세뿐 아니라 내세까지 즉 사후 영혼이 영생 할 수 있도록 무제한의 기간이다. 사랑하는 방법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상고하게 된다. 살펴보면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들이 자기의 허물과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시되 절대로 강압적이 아닌 자유를 부여하여 자신들의 자유 의사에 따라 자신들 스스로가 깨닫게 인도하신다. 예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 사건에서 아담 하와가 사탄으로부터의 유혹을 강압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권능이 있으시면서도 이미 사전에 말씀으로 명령하셨기에 그들의 자유 의사에 말기셨다. 자유의사로 깨닫지 못하는 인간들에게는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통해 깨닫게 하실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속적인 시험을 통해서도 깨닫지 못하는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기를 희생하시면서 까지도 인도하신다. 이것이 십자가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의 몸으로 사악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오셔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고 그 피로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시며 사망권세에서 승리하시고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에 따른 확실한 구원의 길을 보여 주셨다.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길까지도 자유의사에 맡기셨지만 이것까지 부인할 경우 하나님의 날 마지막 심판으로 영벌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인간의 경우 자기 자식이 계속 범죄하며 죄를 짓고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자식이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처럼 십자가 상에서 혹독한 육신의 고통을 감당하면서 까지 자식을 위해 죽을 부모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장기간 자식과의 인연을 두절하거나 심지어는 부모 자식간에 폭행과 폭언 등 불상사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며 아무리 죄를 지어도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 하시며 영혼을 사랑하시며 함께 하늘나라에서 영생하기를 원하고 계시다. 지금 이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기도 하고 계신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대화 하시기를 고대하고 계시다. 이것이 바로 기도인 것이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으로 영이신 하나님과의 상통하는 길이다. 호흡이 끊어지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이 기도를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단절되어 영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만이 용서를 받고 믿음이 성장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고리가 되며 하늘로 연결되는 다리가 되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통해 듣기도 하지만 영적 생명과 힘을 얻기 위해서는 하늘 아버지와 실제적인 교제가 있어야 한다. 티끌만큼도 못한 보잘 것 없는 인간들이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 교통하는 일보다 더 위대하고 큰 일이 어디 있겠는가? 기도밖에는 없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7)

< 이승고 - 토론토 영락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