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소망] 은혜 총량 법칙

● 교회소식 2016. 4. 1. 19:42 Posted by SisaHan

제가 만난 사람 중에서 상처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을 한 분 꼽으라면, 저는 지체하지 않고, 저의 어머니를 꼽을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가 받은 상처는 저의 상처보다 최소한 10배가 넘을 것입니다. 동년배들의 어르신들에 비해서도 훨씬 더 많은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시대적으로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어머님이 받으신 상처의 총량,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여러 번 하시던 말씀, “내가 마음 고생한 것, 책으로 쓰면, 수백 권은 될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상처를 받으셨지만, 저의 어머니는 상처로 얼룩진 삶을 살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에 많은 상처를 가지셨지만,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어렵지 않으셨습니다. 어렵지 않으신 정도가 아니라, 누구와도 원만하시고, 누구에게나 베풀기를 좋아하십니다. 저를 포함해서 모든 주변 사람들에게 거칠게 대하시거나, 다른 사람에게 나쁘게 말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어머니는 그렇게 많은 상처와 아픔을 겪으셨는데, 정서적으로 건강한 삶을 사실 수 있으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제가 내린 결론은 어머님이 받은 상처의 총량 보다 어머님이 받는 은혜의 총량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님이 받은 은혜는 언제나 어머님의 상처를 충분히 덮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상처가 아무리 많아도 은혜가 있으면 얼마든지 상처가 극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처와 은혜는 반비례합니다. 은혜가 많으면 상처를 덜 받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마르면 상처를 더 받습니다.
목사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은혜가 마르고 성령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사소한 말에도 상처를 받습니다. 교인들의 표정에도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상처에 집착하지 말고, 은혜에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어차피 사람이 살아가면서 상처를 안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조심해도, 아무리 내가 잘 해 주어도 우리는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면, 은혜를 더 많이 받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처의 총량보다 은혜의 총량을 늘려서 은혜로 상처를 이기자는 것입니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상처를 받아야 할 빚으로 생각하고, 은혜는 갚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계산법 때문에, 그래서 은혜는 물에 새기고 상처는 돌에 새기는 우리의 태도 때문에 결국 온통 세상에는 상처받았다는 사람들로만 넘쳐나는 지도 모릅니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은혜의 총량을 늘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가 넘치면 상처가 줄어듭니다. 도처에 상처가 있지만 사방에 은혜도 있습니다. 마음을 열면 얼마든지 우리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툭하면 상처 받는 체질에서 툭하면 은혜 받는 체질로 바뀌어 지는 것, 이것이 상처에 대한 근원적인 처방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고영민 목사 - 이글스필드 한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