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착각 자유여행기

● 칼럼 2016. 4. 22. 20:38 Posted by SisaHan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다. 제 잘난 멋으로 산다는 비아냥이다. 하지만 누구를 막론하고, 정도의 차는 있을지 몰라도 착각 속에 살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자기 눈에 보이는대로 분별하고,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며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는 게 사람이다. 그 게 인간의 특성이고 다양성이다.


그러나 그 개성의 다양성 속에서도 ‘보편’ 이라는 평균선은 존재한다. 그 보편을 무시하고 너무 자신만의 시각과 방식에 매몰될 때 그 사람은 어리석게도 ‘착각의 자유 여행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가령 추운 겨울에도 햇살 좋고 히터가 작동하는 자동차 내부는 훈훈하다. 차안의 더운 공기에 몸이 녹아있다 보면 바깥쪽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방심하고 밖에 나오면 매서운 찬공기에 재채기와 감기가 달려든다. 바로 잠깐의 착각이요 착시다. 잠깐이면 괜찮은데, 아예 몸에 밴 경우가 문제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회사라 해도 사장은 의례적인 존대를 받는다. 콧대가 높아진 사장님은 직원이 우습게 보여 멋대로 부리려 한다. 그러니 거대 회사야 오죽할까. 오너들이 운전기사와 직원을 종 부리듯 욕설에 주먹질까지 하는 것은 그런 착각의 자만이 습성화한 때문이다.


온 나라가 ‘엔(N)포 시대’니 ‘헬(Hell) 조선’이니 아우성을 치고 경제가 위험하다고 빨간불이 깜박여도, 주변을 에워싼 충성파들이 “잘 돼 갑니다. 뜻대로 하시옵소서”하고 아부의 장막을 둘러친 권력자는 어찌될까. 당연히 눈과 귀가 무지개 빛 환상과 환청에만 매몰돼 자아도취가 심화될 뿐이다. 지난 20대 총선은 그런 착각과 착시의 실상을 웅변해 주었다. 비단 최고 권력자만 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각을 부르는 수많은 요소들의 우물에 갇혀 ‘착시여행’에 몰입했다가 실상이 드러나자 충격에 휩싸였다. 야당이 갈라지고, 여론조사가 큰 차를 보이고, 대형 신문들과 방송, 종편들이 불어대고, 북풍이 거세게 몰아부치고, 그래서 결과는 뻔하니 멋대로 해보자는 오만의 객기로 칼질을 해대고, 대통령은 법을 무시하며 선거구를 누비고…, 그런데 위대한 국민들은, 그리고 하늘의 오묘한 섭리는 그 착각의 꺼풀을 사정없이 벗겨내고 마치 천지개벽처럼 적나라한 실체를 보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실체가 드러나다 보니 착각의 중병에 걸려 거만스러웠던 객체들도 수없이 밝혀졌다. 홍수가 휩쓸고 간 논바닥에 자갈이 쌓이고, 미꾸라지들이 흙탕물에서 팔딱이는 것 같이. 하루 아침에 여당이 자갈밭처럼 지리멸렬해졌다. 권력 호위무사로 설치던 거물들은 풀이 죽거나 미꾸라지 신세가 됐다. 정권 나팔수 같던 언론들이 갑자기 주인을 향해 짖는 미친 개처럼 표변했다. 권력의 충견노릇을 하던 기관과 인물들은 선거 망치고 나라망친 주적들로 지탄대상이 돼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권력자의 착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비단 권력과 집권 쪽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승리가 나 때문이니, 내 전략이 먹혔느니 서로 공신반열을 주장한다. 패권이니 거부감이니 정체성이니 ‘프레임 언어’가 난무해 헷갈리게 한다. 셀프공천에서 이제는 셀프 추대론까지 나온다. 작은 지역당 신세에 말끝마다 정권교체를 장담하더니 자신들이 사실상 1당이라고 어거지를 쓴다. 정말 ‘착각은 자유’다. 이제 그들의 착각병이 심해지고 바야흐로 착시여행에 몰입해 가는 것만 같다.
하나님을 믿는 목회자가 주일에 예배당을 닫고 성도들에게는 기독정당 선거운동에 나서라고 독려했다. 어느 유명 목사는 예배시간에 그 정당 선거홍보 영상을 상영하며 꼭 찍어야 한다고 설교를 했다. 그런데 전국 득표율 3%도 안돼 헛발질만 한 꼴이 됐다. 명철한 영안(靈眼)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바라보기는 커녕 성도들의 할렐루야 환호에만 도취해 정치야망에 빠진 종교권력자들의 착각이다.


마침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폭력시위 운운하며 강압하던 엄청난 경찰병력이 선거 참패 때문인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폭력이 난무했는가. 평화집회가 축제와도 같이 열려 경찰의 착각을 입증했다. 돈을 받고 동원된다는 어버이부대도 감쪽 같이 모습을 감췄다. 모국에서는 그렇게 사라졌는데, 어인일인지 토론토에는 그런 족속이 나타나 얼쩡거렸다. 그리곤 뭐가 부끄러운지 사진찍지 말라고 욕설을 퍼부어댄다. 세월호는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반박하려 공공장소에 공적집회로 나온 애국적 영웅심리는 어디로 갔나. 기자에게 사진찍지 말라고 악쓰는 그들의 수준에도 아마 창피를 아는 일말의 감각은 있음이다. 혼란스런 착각이다. 착각은 정말 도처에 난무한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