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진상 규명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청와대 지시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히 보고받았다”고 공언한 뒤 검찰 수사도 별 진척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지금까지 공개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배후의 몸통에 대한 추적은 아직 본궤도에 오르지도 못한 상태라는 점에서 크게 우려치 않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진상규명 태스크포스의 지적대로 “증거인멸과 말맞추기 시간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번 사건은 국가정보원이 보수우익 단체들을 조정하는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고, 청와대가 권력의 힘으로 이를 뒷받침하면서 전경련 등 자금줄을 동원해온 은밀한 커넥션이 존재한다는 강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드러난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박아무개씨 사례는 국정원과 보수우익 단체의 관계가 어제오늘에 형성된 게 아님을 잘 보여준다. 박씨가 2011년부터 2년 동안 1인시위 및 신문광고 게재까지 지시하며 보수우익 단체 7곳을 지원·지도해온 사실이 재판기록 등을 통해 밝혀졌다. 한 단체는 개혁성향 판사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어버이연합과 국정원의 밀접한 관계는 이미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서 공작에 동참한 탈북자에게 어버이연합이 경비 500만원을 전달한 사실이나 이른바 ‘박원순 문건’을 통해서도 제기된 바 있다.
세월호 참사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12·28 위안부 합의 등 중요 사회 현안이 있을 때마다 시민단체의 탈을 쓰고 색깔론과 폭력으로 권력의 돌격대 역할을 하도록 보수우익 단체를 사주해온 것이 청와대와 국정원이었다면 민주주의의 기초를 허무는 심각한 일이다.


검찰은 국정원 댓글사건과 ‘좌익효수’ 사건에서도 국정원의 명백한 불법 사실을 축소·은폐하는 바람에 여론의 지탄을 받아왔다. 이번 어버이연합 사건에서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경실련 등 여러 곳에서 고발했음에도 잠적한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에 대한 추적이나 압수수색 등 적극적인 수사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절대로 덮어서는 안 되는 사건일 뿐 아니라, 과반 의석이 된 야당들도 공조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덮을 수도 없다. 증거인멸 시간을 주겠다는 뜻이 아니라면 검찰은 즉각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