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학교 다닐 때, 일본문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면서, 일본 영화라는 과목을 택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처음 본 영화가 구로사와(Akira Kurosawa) 감독의 ‘라쇼몬(Rashomon)’이었다. 스토리도 간단해 보이면서, 돈도 들이지 않았고, 출연 배우도 많지 않고, 촬영 장소도 몇 곳 되지 않았는데 큰 감동을 주었다. 그 이후로 기회가 있으면 그의 영화를 찾아보았다. 그 때 본 영화가 ‘이키루’, ‘7인의 사무라이’, ‘요짐보’, 등의 옛날 흑백영화였고, 당시 이곳 극장에서 상영한 ‘가게무샤’, ‘난’, ‘꿈’등을 보았다. 그는 참 운이 좋은 영화감독, 예술가였다. 세계적인 감독으로 명성을 떨쳤을 뿐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대로 마음껏 만들 수 있는 여건을 가졌기 때문이다. 내가 김기덕 감독을 이야기하면서 구로사와 감독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하는 영화감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베니스 영화제> 때문이다. 그리고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그 당시의 일본영화계와 오늘 날의 한국영화계를 부분적으로나마 비교하고 싶기 때문이다.


구로사와의 ‘라쇼몬’은 1951년에 베니스 영화제에서 일본영화 최초로 상을 받았다. 그 수상소식이 전해지자 일본영화계는 난리였다. 그들은 일찌감치 자신들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영화가 가장 좋은 매체라고 알고 있었고, 권위있는 국제 영화제에 입상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일화는 다른 작품을 보내기로 거의 결정했는데, 때마침 베니스 영화제와 관계가 있는 이태리 여성이 일본에 있어, 그들은 그녀에게 후보작을 보여주었다. 뜻밖에 그녀는 구로사와의 영화를 선택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고 이상한 작품이기에..


내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이곳 토론토 영화제에 출품한 ‘섬’이었다. 그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 초대받아 상영된 작품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너무 멋진 영화였고, 무엇보다도 여태껏 내가 보아온 한국영화와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출발한 토론토 영화제가 세계적인 영화제로 급속히 자라는 동안 그의 영화는 계속 초대를 받아 볼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섬’으로 시작해서 ‘수취인 불명’, ‘나쁜 남자’, ‘사마리아’, ‘빈집’, ‘시간’ 등이 꾸준히 초청받았다. 그처럼 자주 초청 받은 감독도 없으리라. 마치 영화만 만들면 초대받은 것 같다. 영화제는 아니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이곳 극장에 상영되어 비평가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사마리아’로 2004년에 베를린 영화제, ‘빈집’으로 2004년에 베니스 영화제, 아리랑으로 2011년 칸 영화제, 2012년 ‘피에타’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사실 주요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도 드물지만 짧은 시간에 받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한 재능있는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들려 해도 투자자가 없고, 어렵게 만들어도 국내에서 상영할 극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그가 최근 들어 너무 잠잠해, 한국영화계, 나아가서는 사회라는 거대한 벽에 부닥쳐 영화 만들기를 결국 포기하지 않았나 생각 들기도 했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토론토에서 하는 Toronto Korean Film Festival 프로그램을 받았다. 무심히 펼쳐보는데,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있었다. ‘Stop’. 그가 가장 최근 2015년에 만든 영화였다. 그리고 그 이전에 ’One on One’이라는 영화도 만들었다. 그가 아직도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여간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영화가 한일합작으로 나와 있고, 일본어에 영어자막으로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배경으로 한 것이지만, 그리고 아직 한국에서 상영할 계획이 없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사실 요즘 한국영화 대단하다. 재미있고 잘 만든다. 툭하면 1000만 관객 돌파한다고 한다. 영화는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하나의 상품이다. 그리하여 대박나기를 바란다. 누가 어떤 영화를 보고 하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그 틈새에 세계적인 영화제가 인정하는 영화가 숨을 쉴 틈 하나 만들 여유가 우리는 없는가?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