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나이도 많고 용기도 부족하고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부족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종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세는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이런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또한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양자가 되어서 궁궐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고통받는 히브리 백성들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서양사회에서 백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자동적으로 갖게 되는 기득권을 ‘white privilege’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백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인이 아닌 우리들은 백인들에게 우선권/기득권이 있다는 것을 쉽게 경험합니다. 그런데 만일 백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white privilege를 깨닫고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서 일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일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난 사람이 여성들의 성차별에 분노하고 성차별 철폐를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 남자는 참으로 훌륭한 남자일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 자비와 연민과 연대의 마음을 가지고 살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긍휼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지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가장 위대한 점은 그가 실패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이라는데 있습니다. 모세는 젊은 시절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가 광야로 피신한 적도 있었고 십계명을 땅 바닥에 깨트린 적도 있습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오면서 꿈에 부풀었을 것입니다. 이 계명을 가지고 내려와서 백성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 정의로운 나라,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이러한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은 아직 자유인으로 살 준비가 되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화가 났던지 금송아지에 제사드린 사람들에게 금송아지 동상을 가루로 만들어서 물에 타서 마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장면은 그 다음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다시 시내산으로 부르셔서 십계명 돌판 2개를 다시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번 돌판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셨는데 두 번 째 돌판은 네가 직접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 째 돌판을 깎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모세는 두 번 째 돌판을 깎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목표를 다시 세웠을 것입니다. 영어 표현 중에 “tyranny of dream, 꿈의 횡포”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꿈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책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꿈이 횡포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 실패를 디딤돌로 삼아서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두 번 째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첫 번 째 돌판이 깨졌을 때 두번째 돌판을 만드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모세처럼 실패의 순간에도 지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 정해빈 목사 - 알파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