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동 · 남 · 북 삼면 포위

서방은 폴란드·루마니아 등 우크라이나 접경국에 병력 증강

 

    러시아와 벨라루스군의 합동 군사훈련 [러시아 국방부 제공]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대치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는 가운데 양측 모두 우크라이나 접경에 군사력을 집결하고 있다.

 

서방 정보기관에 따르면 러시아는 크게 세 방향으로 우크라이나의 삼면을 포위하듯 약 13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배치한 상태다.

 

먼저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주(州)를 일컫는 돈바스 지역에는 러시아의 주력이 밀집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바스는 2014년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충돌한 '돈바스 전쟁'의 무대로, 현재도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이 일어나는 지역이다.

 

돈바스는 러시아계 주민이 많아 러시아 침공 시 주민의 저항이 상대적으로 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인 하르키우와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다.

 

    '우크라 사태' 속 흑해서 해상훈련 하는 러시아 전함들 [러시아 국방부 제공]

 

지난 2014년 러시아가 무력으로 병합한 크림반도와 인근 해역에는 해군 전력이 집결하고 있다.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은 러시아 흑해함대의 모항으로 러시아 해군은 지난 10일 북해함대와 발트함대에 속한 상륙한 6척을 세바스토폴에 입항시켰다.

 

러시아의 킬로급 디젤 잠수함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해 흑해로 향하는 것이 포착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북쪽 벨라루스에도 대규모 러시아군이 모여있다.

 

옛 소련에 함께 속했던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1990년대 말부터 '연합국가'(Union State) 창설을 추진하며 동맹 이상의 밀접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약 3만 명의 러시아군은 지난 10일부터 우크라이나와 접한 벨라루스 남서부 브레스트와 도마노보, 폴란드·리투아니아 국경에 가까운 고슈스키 훈련장 연합 훈련을 하고 있다.

 

특히, 벨라루스-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까지는 최단 거리가 90㎞에 불과해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통해 침공할 경우 키예프 점령은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키예프와 벨라루스 사이 우크라이나 북부 지역은 습지대가 많고 겨울에 언 땅이 녹아 진흙탕이 되는 '라스푸티차' 현상이 발생해 기갑부대가 전진하기 어려운 지형이다.

 

실제로 러시아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도 이 지역을 돌파하느라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패전의 한 원인이 됐다.

 

우크라이나의 병력은 26만 명 정도로 서방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러시아가 여러 방면에서 공격해올 경우 역부족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정예군은 돈바스 접경 지역에 밀집해 있는데 러시아가 북부와 남부에서 협공해올 경우 포위 섬멸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5일 미 당국자 2명을 인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필요한 전투력의 약 70%를 우크라이나 접경에 배치했다고 전했다.

 

이에 서방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최정예부대인 82공수사단의 병력 4천700명을 우크라이나와 접한 폴란드에 배치했다.

 

82공수사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됐으며, 지난해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지원을 위해 아프간에 긴급 배치된 부대이기도 하다.

 

    폴란드에 도착한 미 82공수사단 병사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은 또 독일에 주둔 중이던 2기병연대 소속 1천여 명의 병력을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마주한 루마니아로 전환 배치했다.

 

이들과는 별개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미군 8천500명에게 유럽 파병 비상대기 명령을 내렸다.

 

아울러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2억 달러(약 2천400억 원) 규모의 군사 원조를 승인했다.

 

이미 미국제 대전차 미사일인 재블린을 비롯해 탄약과 의료물품, 개량형 포탄, 무선통신 교란 장치 등이 우크라이나에 반입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할 경우 미국이 동유럽에 순환 배치 병력을 추가 파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동맹인 서방 국가들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영국은 지난 7일 폴란드에 해병 350명을 파병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전투기를, 흑해에 전함을 보내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우크라이나에 대전차·대공 미사일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체코도 우크라이나에 152㎜ 포탄을 제공하기로 했다.

 

덴마크와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도 이미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등에 선박과 전투기를 보내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주요 나토 회원국 가운데 독일은 '살상무기 수출금지'라는 원칙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지원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지 않고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방향을 전환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서방 국가들이 잇따라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병력 지원은 우크라이나 영토가 아닌 주변국에 집중되고 있다.

 

아직 나토에 가입하지 않은 우크라이나에 나토군을 배치할 경우 자칫 러시아를 자극해 사태를 더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은 지난 12일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판단하에 우크라이나에 머물던 미군 자문단 160명을 철수했다.

 

임박한 16일…우크라이나 위기 해소 5가지 해법은?

 민스크 협정 부활을 시작으로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대치를 통한 현상 굳히기도 가장 현실적 해법

 대치 장기화 속에서 긴장 완화하며 외교적 해법 추구

 

 13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시민이 우파 활동가들이 마련한 공개 군사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키예프/EPA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이르면 16일에 침공할 수 있다는 미국 정보당국의 평가까지 나오는 가운데 12일 열린 미-러 정상 간의 전화회담에서도 양쪽은 뚜렷한 접점을 찾진 못했다. 최고조로 치닫는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외교적 해법’ 도출이 가능할지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이 위기를 해소할 5가지 시나리오로 △병력 철수 등 긴장완화 조처를 통한 러시아의 양보 △나토-러시아의 새로운 안보협약 △우크라이나-러시아 사이의 ‘민스크 협정’ 재발효 △우크라이나 중립지대화 △대치를 통한 현상 굳히기 등 5가지를 지적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는 쉽지 않으며, 이런 외교적 해법들이 중층적으로 결합돼야만 위기 해소를 향해 한발짝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시나리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양보다. 이번 위기 국면을 통해 러시아의 ‘안보 우려 사안’에 대해 미국 등이 충분히 인지했다고 판단하고 과감히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그동안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금지 등을 확약할 순 없지만, 동유럽과 옛 소련 지역 내에서 진행되는 군사훈련이나 미사일·핵 배치 문제에 대해선 논의할 수 있다고 제안해 왔다. 푸틴 대통령이 군사적 긴장완화 조처를 통해 자신을 평화의 주창자로 자리매김하고는 미국과 이 문제를 논의하는 협상에 돌입할 수 있다. 미국은 러시아가 병력 철수 등 긴장완화 조처를 먼저 취해야만,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러시아 입장에서 볼 때 이 같은 양보는 푸틴 대통령이 결국 서구와 대결에서 ‘굴복했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줄 수 있다. 이를 피하려면, 형해화된 ‘민스크 협정’을 재발효하는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2014년 초 우크라이나 내전이 시작된 뒤 러시아, 우크라이나, 프랑스, 독일 등 4개국이 체결한 민스크 협정은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있는 돈바스 등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고도의 자치를 보장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친러 분리주의 세력과의 직접 협상을 거부해 협정은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이 협정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위기 국면에서 적극적인 중재 외교에 나서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민스크 협정이 “평화 구축으로 가는 유일한 경로”라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에 강경한 영국의 벤 월러스 국방장관도 민스크 협정 복원이 “긴장완화로 가는 강력한 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민스크 협정 복원에는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도, 이것이 러시아가 제기하는 핵심적 요구는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나토와 러시아 사이의 새 안보협약 체결은 위기 해소를 위한 또다른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다. 러시아와 미국 등은 나토 가입 문제를 놓고 타협점을 찾지 못하지만, 다른 안보 사안들에 대해서는 접점이 있다. 이미 미국이 논의를 제안한 미사일 배치와 관련해 합의가 이뤄지면,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상당 부분 덜어낼 수 있다. 나토 가입 문제는 서로의 원칙을 현상적으로 고수하는 선에서 타협하고, 다른 실질 사안들을 협의하는 협약을 체결하면, 러시아가 노리는 동유럽과 옛 소련 지역에 대한 ‘세력권’을 현실적으로 받는 결과가 된다.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의 중립화 방안도 거론된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 당국자들은 푸틴-마크롱 회담에서 우크라이나가 2차 대전 뒤 중립화를 택한 핀란드를 모델로 채택할 수 있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가 중립화를 선언하면, 나토의 문호 개방 정책도 손상되지 않고,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등 서방화에 대한 우려를 달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런 방안들은 어느 한쪽의 과감한 선제적 양보가 있어야 가능하다. 현재의 대치 국면을 살펴볼 때 쉽지 않은 결론이다. 결국, 10만명 넘는 러시아 병력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전면 배치된 현재 상황이 그대로 굳어져 기정사실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먼저 벨라루스에서 진행 중인 연합 군사훈련을 끝낸 러시아군은 그동안 언급해 온 대로 이 지역에선 철수한다. 그와 함께 군사 긴장은 점차 완화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의 병력은 순환 배치를 통해 늘 임전태세로 유지된다. 또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러시아가 해 온 반군 지원 역시 지속한다. 이에 맞서 나토 역시 동유럽 내 나토 국가들에서 군사태세를 강화한다. 그 와중에 협상과 중재 역시 간헐적으로 지속된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 일상화되며, 국제적인 관심이 줄어들고 우크라이나 전선은 동결된 분쟁으로 남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침공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옛 소련에 대한 자신들이 몫을 주장할 수 있고, 나토도 문호개방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불안한 공존’을 추구할 수 있다. 결국, 현재의 대치는 장기화되면서, 그 속에서 민스크 협정의 부활 등 을 타협책을 도출하려는 외교적 노력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기자

 

우크라이나 외교관 ‘나토 가입 포기’ 시사 발언 파문

 

주영국 대사 나토 가입 정책 “유연할 수 있다”

헌법 개정하며 못 박은 우크라 대외 정책

파문 일자 “오해가 있었다” 한발 물러나

 

1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방문한 올라프 숄츠(왼쪽) 독일 총리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서 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외교관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추진 정책을 재고할 수 있다고 내비쳐 파문이 일었다.

 

바딤 프리스타이코 주영국 대사는 14일 영국 <비비시>(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 추진 정책에 대해 “유연할 수 있다”며 “특히 지금처럼 위협당하고 협박당하고 있을 때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지금 나토 회원국이 아니고 전쟁을 피하기 위해 많은 양보를 할 수 있고 그게 지금 러시아와 대화하면서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2019년 개헌을 통해 헌법에 나토와 유럽연합(EU) 가입을 국가적 목표로 설정했을 정도이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상당한 파장을 불렀다. 그는 나중에 나토 문제에 대해 오해가 있었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우크라이나가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양보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를 확약하라고 요구했던 러시아는 그의 발언을 환영하면서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적인 확인이 있어야 한다고 반응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우크라이나가 공식화된 형태로 나토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확약하면 러시아의 우려에 대한 의미 있는 반응이 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페스코프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프리스타이코 대사에게 인터뷰 발언에 대해 해명하라고 지시한 점을 지적하며 “우크라이나가 외교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경 부근에 병력 10만여명을 배치하고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벨라루스에도 연합 훈련 명목으로 3만여명의 병력을 파견해,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오른 상태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미국 정보관리들이 러시아군이 16일에 침공을 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지난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잇달아 방문했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14일 우크라이나 방문에 이어 15일에는 러시아로 향한다. 조기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