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공동대표? 그럴 일 없다”

안철수와 힘겨루기 전초전 관측

국민의당 일부선 “이재명 지지”

권은희, 책임 요구 나서 ‘후폭풍’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선언 하루 만인 4일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에 불협화음이 나타나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공동대표 체제설’을 반박하고, 안 후보를 향해 불쾌감도 드러냈다. 국민의힘 일부 당협위원장들은 합당 과정에서 국민의당 측 지분 요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단일화 반대론자였던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 합당 후 이 대표와 안 대표의 ‘공동대표 체제’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이준석 대표 단일체제에) 변화는 없을 걸로 보인다”며 “들은 바도 없고 협의 대상도 아니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이 대표는 ‘최고위원 두 자리를 국민의당에 준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들은 바도 없고, 그 제안도 당 차원에서 한 적이 없다”면서 “그거야말로 당에서 판단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 후보는 전날 단일화, 합당, 정부 참여 등 ‘원샷 통합’을 선언했지만,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향후 양당의 합당 과정에서 이 대표와 안 대표 사이 힘싸움은 필연적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표는 안 대표에 대해 “인간적인 대응이 참 항상 뭐랄까. 흥미롭다”고 말했다. 안 대표가 전날 단일화 선언 후 기자들이 이 대표에 대해 묻자 “관심 없는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했는지 잘 모른다”고 답한 데 대해 부정적 감정을 표출한 것이다.

 

국민의힘의 수도권 지역 당협위원장은 통화에서 “안 대표가 내각에 가든, 광역단체장에 도전하든 상관이 없다”면서도 “국민의당 사람들이 국민의힘 당협을 가져가려고 한다면 용납할 수 없다. 싸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에서도 단일화 후폭풍이 불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안 후보 결정을 존중한다. 불모의 땅에서 최선을 다했으나, 싹을 틔울 수 없는 현실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돌을 던질 수 없다”며 “그러나 동료와 지지자들에 대한 책임을, 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일부 인사들은 야권 단일화에 반발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국민의당 선대위 조직특보 겸 대외협력지원단장이었던 김만의씨는 민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 대표는) 오직 본인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당원과 지지자 의견은 무시하고 이용만 하는, 두 얼굴을 가진 인물”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SNS에 “저의 완주를 바라셨을 소중한 분들, 저를 지지하고 사랑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며 자필 사과 편지를 올렸다. 안 대표는 “정권교체가 되지 못하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결코 저의 길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적었다.

 

안 대표는 5일 오전 선대위 해단식을 한 뒤, 윤 후보와 경기 이천시에서 첫 공동 유세를 한다. 당초 국민의힘은 서울 노원구에서 안 대표, 이 대표, 윤 후보가 모두 참석하는 ‘함께, 우리, 새로운 내일’ 이름의 ‘원팀 유세’를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안 대표는 이천 유세만 참석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대표가 ‘이준석 피하기’를 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날도 윤·안 후보 단일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우상호 총괄선대본부장은 “명분 없는 ‘자리 나눠먹기형’ 야합에 역풍이 불어닥치고 있다”며 “국민의당 당원들의 탈당이 이어지고, 중도층에서 이 후보 지지로 돌아서는 것이 관측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 후보의 정치생명을 놓고 거래가 있었던 거 아닌가, 의문이 든다. 기획된 협박정치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했다. 박순봉·유설희·김상범 기자

 

이준석 “안철수와 합당? 서울시장 때도 무산…이번에도 지켜봐야”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제안

의견수렴 · 실무논의 과정서 백지화

“바른정당과 합당, 설득 부족” 사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 기자회견을 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3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후보 단일화와 함께 ‘대선 뒤 즉시 합당’에 합의했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 벌써부터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단일화 과정에서도 합당이 논의됐지만 철회된 전력 등이 있어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4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안철수 대표가) 예전에 서울시장 선거가 끝난 뒤에도 바로 합당하기로 했었다. 그때도 당명 변경 요구나 이런 것들이 나와서 무산됐는데 이번에도 지켜봐야 한다. 국민의당 측에서도 당내 구성원들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합당이 합의됐지만, 실제 합당까지 추가 요구가 있을 수 있다는 경계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미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합당이 선언됐다가 세부논의 과정에서 무산된 경험이 있다. 지난해 3월 안 대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나서며 단일화 상대였던 국민의힘에 합당을 제안했다. 여론조사 경선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승리하고 서울시장 당선 뒤 본격적으로 합당 절차가 시작됐다. 안 대표가 당원들을 만나 의견을 수렴하는 작업도 거쳤다. 당시에 호남 당원들을 중심으로 국민의힘과의 합당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거셌다. 그해 6월에는 실무협상단을 구성해 합당 방식을 논의했지만 지난한 줄다리기 끝에 결국 8월에 합당 제안은 없던 일이 됐다.

 

이번에 안 대표는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대선 직후 일주일 안에 합당하겠다는 구체적인 시점도 제시했다. 그러나 과거 바른정당과의 합당 과정에서 설득이 부족했음을 인정했던 안 대표가 ‘약 2주일 뒤 합당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안 대표는 지난달 27일 광주 유세에서 2018년 ‘바른정당’과의 합당에 대해 ”사죄드린다. 제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한 뒤 “광주분들께 진정한 진심을 설득하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반성했다. 합당에 의견수렴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과했던 안 전 후보가 이번에는 단일화 직후 합당을 진행하겠다고 한 것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날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안 전 후보의 합당과 관련해 “합당을 하면 통합정부가 아니다. 합당하면서 다당제를 얘기하는 (안 전 후보의) 말 자체가 모순된 얘기”라고 지적했다. 곽진산 기자

 

국힘, 만화가 윤서인 선대본 언론특보단장 임명했다 해촉

조두순 피해자 조롱, 독립운동 폄훼 등 논란... '국민화합위' 소속

 

지난 3일 윤서인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사진. 윤씨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중앙선거대책본부 국민화합위원회 언론특보단장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윤씨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봤다고 밝힌 한 이용자는 "30여 분 뒤에 임명장 사진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이 만화가 윤서인씨를 중앙선거대책본부 국민화합위원회 언론특보단장으로 임명한 사실이 확인됐다. 윤서인씨는 '조두순 피해자 우롱' '독립운동가 및 3.1운동 폄하 발언'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던 인사다. 4일 <오마이뉴스> 보도 이후 국민의힘은 윤서인씨를 해촉했다.

 

지난 3일 윤서인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2022년 2월 23일자 언론특보단장 임명장 사진을 올렸다. 윤씨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봤다고 밝힌 한 이용자는 "30여 분 뒤에 임명장 사진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윤씨가 올렸던 임명장은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전달되는 그림파일 형태가 아니라 실물이 존재하고 이를 직접 촬영한 것이다.

 

'만화가 윤서인씨에게 언론특보단장 임명장이 발부된 게 사실인가'라는 <오마이뉴스>의 질의에 4일 국민의힘 선대본 관계자는 "맞다. (윤서인씨는) 같은 진영에서 목소리를 내왔던 사람"이라고 답했다. 언론특보단장 임명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윤서인씨 본인이 요청해서 임명장이 나간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언론특보단장이긴 하나 윤서인씨가 선대본에서 특별한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오마이뉴스> 보도가 나간 후, 4일 오후 7시께 국민의힘 선대본 공보단은 별도의 공지를 통해 "만화가 윤서인씨가 국민화합위원회 언론특보단장으로 임명된 사실과 관련해, 확인 결과 국민화합위원회에서 독자적으로 절차를 진행한 것으로파악됐다"면서 "국민의힘 선대본부는 윤 작가 임명사실을 확인한 후 즉각 해촉조치 했다"라고 알렸다.

 

조두순 피해자 조롱, 독립운동 폄훼 등 사회적 논란 야기

 

지난 2018년 윤 씨가 그린 웹툰. 윤 씨는 이 웹툰으로 법원으로부터 조두순 사건 피해자와 가족에게 2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정당이 특정인에게 보직을 맡기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전국민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대선후보 캠프의 공적인 성격을 감안했을 때, 해당 인사의 사회적 평판을 고려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윤서인씨에겐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왔던 인사'라는 평가가 따른다. 2018년 윤서인씨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남한 방문을 비판하는 웹툰에서 김 부위원장의 방남 행위를 성폭행범 조두순이 피해자를 만나는 것에 빗댔다. 이후 비판 여론이 들끓었고, 22만 명이 넘는 시민이 윤씨의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에 동의했다. 2019년 법원은 윤씨에게 조두순 사건 피해자와 가족에게 2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21년 윤 씨는 한국해비타트의 독립운동가 후손 주거개선 캠페인 홍보 이미지를 게시하며 독립운동가를 비하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2021년엔 한국해비타트의 독립운동가 후손 주거 개선 캠페인 홍보 이미지를 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뭘 한 걸까. 사실 알고 보면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라는 글을 게시했다. 비판이 쏟아졌다. 윤씨가 올린 허름한 독립운동가 후손의 주택은 조병진 애국지사의 딸이 거주하는 주택이었다. 이에 광복회는 윤 씨를 고소해 지난 9월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최근 사례도 있다. 윤씨는 지난해 3월 1일, 3.1운동에 대해 "열심히 참여 안 하면 주최 측이 집에 불을 지르고 다 죽였다"며 3.1 운동을 폄하했었다. 그는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로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의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격문과 선언서 자료를 함께 게시했다.

 

하지만 실제로 참여하지 않은 이들을 향한 방화가 이뤄졌다는 증거는 없었다. 또한 해당 자료는 일반 민중이 아닌 자성회, 자제회 등의 친일 어용단체를 향해 친일행위를 하지 말라는 차원에서 이뤄진 격문과 선언서였다. 그럼에도 윤씨는 마치 일반 민중을 상대로 그러한 발언을 한 것처럼 왜곡했다. 윤씨는 해당 게시글 게재 이후 30일간 페이스북 계정이 정지당했다.

유튜브 방송으로 지지자 달래기 나서

‘다당제, 결선투표’ 등 정치개혁 약속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튜브 채널 갈무리

 

“손가락 자르시겠네요.”

 

4일 유튜브 방송 카메라 앞에 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채팅창에 올라온 댓글들을 읽으며 “제 가슴을 찌른다”고 말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제가 모자란 탓에 보답을 못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한 뒤 “제 모든 걸 바쳐서 어떻게든 국민을 통합시키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이날 오후 6시 ‘안철수 소통 라이브’ 방송을 통해 지지자들과 만났다. 그는 지난달 23~28일에 자신에게 투표한 재외국민 지지자들에게 사과부터 했다. 안 대표는 “해외에서 그 먼길을 찾아서 저에게 투표해주셨던 분들, 그리고 또 제 딸도 해외에서 제게 투표를 했다”며 성난 지지자들을 달랬다. 안 대표는 “돌아가신 손평오 위원장님 등 정말 많은 응원을 해주셨다. 제가 모자란 탓에 보답을 못해드린 것 같다”고도 했다. 고 손평오 위원장은 지난달 15일 충남 지역에서 유세차량 사고로 숨졌다. 안 대표는 지난달 18일 그의 영결식에서 “어떤 풍파에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동지의 뜻을 받들겠다. 결코 굴하지 않겠다”며 완주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안 대표는 그러나 윤석열 후보 지지를 위해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유지를 받든다는 말도 거짓이었냐’는 비판에 직면한 상태다.

 

안 대표는 방송 중 채팅창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들을 읽으며 “힘내라고 말씀드린 분 감사드리고, 그리고 또 비판의 말씀들 제가 제대로 마음에 새기겠다”고 했다. 또 ‘악성 소문을 퍼뜨리겠다’는 국민의힘 쪽 협박으로 단일화에 응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전부 가짜뉴스다. 제가 협박당할 일이 어딨겠나. 지난 10년간 양당에서 공격했는데 새로 나올 게 뭐가 있겠나”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이날 유튜브 스튜디오에는 안 후보의 오랜 지지자 2명이 출연해 쓴소리와 격려를 함께 전달했다. 이지혁씨는 “5년 후에 2027년 대선이 있다. 꼭 21대 대통령에 당선이 되셨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향순씨는 “(유세 팻말에) ‘안철수는 깨끗하다’는 사진과 함께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두당을 흙탕물 사진으로 표현했다. 그 흙탕물을 어떻게 정화시키면서 나가실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지지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안 대표는 “지난 다섯번 티브이(TV) 토론을 통해서 (대선 후보들로부터) 두가지 합의를 이끌어냈다. 연금개혁을 하자는 것과 정치보복 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저는 앞으로 또 5년 이렇게 국민이 분열된 상태로 우리나라가 가면 우리나라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제 모든 걸 바쳐서 어떻게든 국민을 통합시키는 일에 앞장서려고 한다”고 했다.

 

또 정치개혁을 위한 “중재 역할”을 자임하며 “다당제,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 대통령 권한 축소 이 세가지를 반드시 이루겠다”고 했다.

 

성난 지지자들 달래기를 이날까지 이어간 안 대표는 5일부터 윤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선다. 안 대표는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캠프 해단식을 진행하고 사전투표를 할 예정이다. 이어 오후 2시 30분께 경기도 이천에서 진행되는 윤 후보 유세에 합류할 예정이다. 오연서 기자

 

안철수 자필편지로 지지층 달래기? “정권교체 안 되는 상황 막아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 후보 페이스북 갈무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4일 “단일화가 안 된 상태에서 자칫하면 그동안 제가 주장했던 정권교체가 되지 못하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내용의 자필편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전날 후보 사퇴에 따른 지지자들의 거센 반발을 다독이려 나선 것이다.

 

안 전 후보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자필편지는 A4 2장 분량이다. “저의 완주를 바라셨을 소중한 분들”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종이 2장을 빼곡히 채웠다. 안 대표는 “제가 저의 길을 가기를 바라는 많은 지지자분이 계신다. 특히 저의 독자 완주를 바라셨던 분들의 실망하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며 “저를 지지하고 사랑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부족한 저에게 무한한 사랑과 끝없는 지지를 보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적었다. 자신의 중도 사퇴에 허탈감을 느낄 지지자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 것이다.

 

그는 이어 “세상을 바꾸고 싶어 시작한 정치였지만, 여전히 국민의 고통의 크기는 줄어들지 않음에 번민했고 고통스러웠다. 단일화 결단의 고민은 거기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정권교체를 위해 자신의 결단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안 대표는 “이렇게 제가 완주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결코 저의 길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저를 지지해주시고 사랑해주신 성원을 잊지 않고,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치고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안 대표는 “저는 분명하게 약속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과 손잡고 함께 걸어온 길을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함께 걸어갈 것이다. 지지해주시고 사랑해주신 분들이 꿈꾸는 나라,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며 “우리 국민들의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삶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덧붙였다. 곽진산 기자

  

이재명 지지단체 "윤-안 단일화로 국민 배반, 투표장 가자"

들불 시민 의병단, 이재명 지지 선언하며 투표 독려

 

공식 선거 운동 첫날인 지난 15일 발족한 '들불 시민 의병단원' 등이 사전투표 첫날이 4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투표를 독려했다.

 

박승흡 들불 의병단장 등에 따르면, 이날 지지 선언에 이름을 올린 이는 보건의료인연대와 교육혁신연대, 에코문화연대, 문화예술연대 등 시민·사회·문화단체 회원 20만여 명이다.

 

선언식에는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최향순 무형문화재(승무), 이범헌 한국예총 회장, 정인대 중소상공인단체 중앙회 회장, 강무홍 어린이청소년책문화연대 대표, 임미령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영유아 사교육포럼 대표 등 5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비열한 정치 야합으로 국민을 배반하고 민심을 왜곡하며 우리 사회를 위기에 빠트리는 참혹한 상황에 우리는 놓여 있다"라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후보 단일화를 힐난했다.

 

이어 "무도한 부패 카르텔과 국민을 배신한 정치 야합에 맞서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이들을 무너뜨리고, 이재명 후보와 국민과의 단일화로 필승의 길을 열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회주의 정치세력을 넘어 진정한 시민 시대로의 대전환을 이룰 것이고, 손에 손잡고 부패 기득권 세력과 기회주의 정치세력을 심판할 것"이라며 "국민이 모두 손에 손을 잡고 투표장으로 달려가자"고 외쳤다.

 

선언식을 마친 뒤 박승흡·김문호 시민의병단장은 지지자 20만여 명의 서명 명부를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측에 전달했다.

 

김병욱 선대위 직능본부장은 "깨어 있는 조직된 시민들만이 대한민국의 위기를 타개하고 진정한 평화, 민생이 살아 있는 경제를 만들 수 있다"면서 "시민의 위대한 힘으로 오는 9일 이재명 후보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과 단일화 반대' 권은희 "안철수 결정 존중…누군가 책임져야"

"어떻게 책임질지 고민"…일각 탈당·의원직 사퇴 등 관측도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의 안철수 대표와 권은희 의원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대표는 4일 안철수 대표가 대선후보 직을 사퇴하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한 것과 관련, "황무지에서 함께해준 동료와 지지자들에 대한 책임을, 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해온 권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언제, 어떤 방법으로 책임질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하고 말씀드리겠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다만 "안철수 후보의 결정을 존중한다. 불모의 땅에서 최선을 다했으나, 싹을 틔울 수 없는 현실임을 제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돌을 던질 수 없다"며 "안 후보에게도 후보가 오롯이 정치적 책임을 지기 때문에, 후보의 결정에 대해서는 존중한다는 입장을 말해왔다"고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 안 대표가 대선 후보 출마 선언을 한 뒤 언론 인터뷰와 유세 등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는 국민에 대한 배신으로 절대 없다"고 줄곧 단언해 왔다.

 

그는 최근에도 윤석열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안 후보를 사퇴시키겠다는 그런 진정성을 가진 사람과 안 후보가 무슨 만남을 가질 수 있고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라며 반대 입장을 고수한 바 있다.

 

그러나 안 후보가 윤 후보와 결국 단일화를 하면서 결과적으로 자신이 언급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차원에서 권 원내대표가 '책임'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비례대표인 권 의원의 탈당 내지 의원직 사퇴 등의 가능성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윤-안 단일화에 뒤흔들린 광주 민심 “안철수의 새정치는 죽었다”

 

4일 오전 광주시 북구 전남대 안 용봉동 사전투표소에 투표를 기다리는 유권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야권 두 당의 단일화가 물건너간 줄 알았는데 놀랐지요. 선거 판세가 박빙이었는데 조금 서운하지요.”

 

4일 오전 11시께 광주 전남대 안 용봉동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한 박규호(63·매곡)씨는 “캐스팅보트를 쥔 안철수(대표)가 (판이) 기우는 쪽으로 움직여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역풍이 불 수도 있다. 선거는 뚜껑을 까봐야 안다”고 말했다. 이날 용봉동 사전투표소엔 출입구부터 줄이 50m 정도로 길게 늘어설 정도로 유권자들이 몰렸다. 사전투표 뒤 선거를 독려하는 펼침막 앞에 서서 인증샷을 찍는 20대 청년들도 눈에 띄었다. 친구 2명과 함께 사전투표를 마친 김아무개(23·전남대 4)씨는 “안철수 후보가 완주하겠다고 말한 것을 지키지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단일화가 후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광주 97곳 사전투표장에선 순조롭게 투표가 진행됐다. 이날 4시 기준 광주의 사전투표율은 19.23%, 전남은 23.3%, 전북은 20.84%로 전국 평균 14.11%보다 5%포인트 이상 높았다.

 

광주의 경우 지난 대선 사전투표 첫날 투표율 12.61%보다 꽤 높아졌다.

 

윤석열-안철수 단일화가 이뤄진 뒤 광주 많은 유권자들은 ‘안철수의 철수 정치’를 화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눴다. 시민들은 안 후보가 지난달 27일 광주에서 과거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을 합쳐 바른미래당을 창당한 것과 관련해 “급하게 할 일이 아니었다. 광주시민과 호남에 계신 분들에 진정한 진심과 의도를 설득하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평생의 한”이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2016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호남 28석 가운데 23석을 석권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국민의당은 비례대표 13석을 포함해 38석을 확보해 3당 체제 시대를 연 바 있다.

 

두 당 후보의 단일화 이후 호남 표심의 행방을 두고선 의견이 다양했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김재경씨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아슬아슬했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 민주당이 야당 단일화라는 허를 찔린 셈이다. 그런데 단일화 이후 오히려 민주당으로 결집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상희(46·도서관장)씨는 “이재명 후보에 대해선 좋아하는 쪽과 싫어하는 쪽이 많이 나뉘었다. 그런데 어제 단일화한 것을 보면서 허탈해하며 마음을 바꾼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시민은 “야권 단일화를 통해 윤석열 후보가 포용적인 모습을 보여줘 호남에서도 지지층이 느는 시너지효과가 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정치학)는 “윤석열-안철수 후보단일화로 이제 ‘안철수의 새 정치’는 죽었다. 안철수 후보는 다당제 등 정치개혁의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중요한 시점에서 오히려 역행했다”며 “어쨌든 후보단일화는 윤석열 후보에게 더 유리한 판을 제공한 것 같지만, 이번 대선이 워낙 네거티브전으로 가면서 내놓고 지지한다고 밝히지 못한 ‘샤이 표심’의 향배가 막판까지 어디로 갈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열흘 만에 ... 유엔, 최대 400만명 난민 예상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온 난민들이 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인 폴란드의 메디카에 마련된 텐트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메디카/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난민이 150만명을 넘는다고 유엔(UN)이 6일 밝혔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지난 열흘 동안 150만명 넘는 난민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인접 국가들로 국경을 넘었다”고 밝혔다. 유엔은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빠른 난민 증가 위기”라고 설명했다.

 

유엔 관리들은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키예프) 등을 비롯해 우크라이나에 공세를 키울수록 난민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이후 92만2400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접경국인 폴란드로 도피했다고 폴란드 국경보호대는 6일 밝혔다. 난민들은 헝가리, 몰도바,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지에도 도착하고 있다.

 

유엔은 이번 사태로 난민이 400만명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지난달 25일 추산했다. 황준범 기자

 

러, 마리우폴 등 임시 휴전 선언…시 당국 “포격 계속 피란 연기”

민간인 대피 위한 통로 개설했으나

마리우폴 “러시아가 공격 계속”

 

러시아군이 포위 공격을 하고 있는 흑해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주거 지역이 러시아군 공격 뒤 불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포위 공격 중인 남부 마리우폴 등에서 민간인 대피를 위해 임시 휴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리우폴시 당국은 러시아군이 포격을 계속해 민간인 대피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5일 “모스크바 시간으로 오전 10시부터 휴전을 선언한다. 마리우폴과 볼노바하에서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 통로를 개설한다”고 발표했다고 러시아 <타스> 통신이 전했다. 러시아 국영 <리아 노보스티> 통신은 러시아 당국자 말을 인용해 마리우폴에서 인도주의 통로는 모스크바 시간 기준으로 이날 정오부터 모스크바 시간 기준으로 오후 5시까지 5시간 열린다고 전했다. 이에 마리오우폴 시 당국은 당초 시민들이 북쪽에 있는 자포리자시 쪽으로 피란할 수 있으며 특별히 배정된 버스 또는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이후 피란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마리우폴시 부시장은 영국 <비비시>(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마리우폴에 러시아 쪽 포격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 길(인도주의 통로)로 가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러시아 쪽이 휴전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휴전과 인도주의 통로 개설을 위한 러시아와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민간인 피란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은 남부 항구도시 헤르손을 점령한 뒤 마리우폴에 대한 포위 공격을 계속해, 봉쇄된 마리우폴에는 식수와 전력 공급까지 끊긴 상태였다. 인도주의 통로가 개설되는 또다른 도시 볼노바하는 동부 도네츠크주에 있는 도시로 러시아군 포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커지면서 인도주의 통로가 필요하다고 우크라이나가 요구해왔다.

 

이번 인도주의 통로 개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지난 3일 벨라루스 브레스트 벨라베슈 숲에서 열린 2차 평화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으로 양국 간 협상이 일궈낸 의미 있는 첫번째 성과로 평가됐으나, 시작 단계부터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조기원 기자

 

러, 페이스북 차단…‘가짜뉴스 처벌법’ 통과에 BBC 등 보도 일시중단

 러시아 미디어 감독청 “자국 매체 차별”

 트위터도 접속 제한, 틱톡엔 항의 서한도

 푸틴, 보도 이유로 최고 15년형 가능 법에 서명

 

러시아 국기 위에 놓인 페이스북 로고 합성 사진.러시아 정부는 4일 페이스북 접속 차단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니아를 침공한 러시아가 자국 매체를 차별하고 있다며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 접속을 4일(현지시각) 차단했다. 러시아가 자국 군사 활동에 대한 허위 정보를 유포하면 최고 15년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자, 영국 <비비시>(BBC) 방송 등 서구 언론사들이 러시아에서 보도 활동을 일시 중단했다.

 

러시아 통신·정보기술·미디어 감독청(로스콤나드조르)는 “4일 페이스북 접속 차단 결정이 내려졌다”고 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로스콤나드조르는 성명에서 “지난 2020년 10월 이후 페이스북이 러시아 매체에 대해 26차례 차별 사례가 기록됐다”며 “페이스북이 (러시아 언론사들인) <즈베즈다> 텔레비전 채널, <리아 노보스티> 통신, <스푸트니크> 통신 등에 대한 접근을 제한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또다른 소셜미디어 트위터도 러시아 당국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에서 접속이 제한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자신들의 주장이 배척당하고 있다며 주요 소셜미디어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왔다. 로스콤나드조르는 4일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틱톡에도 “러시아 (국영 뉴스 통신사인) <리아 노보스티> 뉴스를 삭제한 이유를 설명하라는 서한을 보냈다”고도 밝혔다.

 

페이스북, 트위터,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는 세계인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뉴스를 접하는 주요 통로가 되고 있어, 러시아 정부는 소셜미디어의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4일 러시아군에 대해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경우 최고 15년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에 서명했다고 <모스크바 타임스>가 전했다. 앞서 러시아 의회는 러시아군 운용에 관한 명백한 허위 정보를 퍼뜨리면 최대 3년형에 처하고 이런 허위 정보가 국가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판단되면 최대 15년형을 부과토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러시아 정부나 국민 등에 대한 제재를 외국 정부 혹은 국제기구에 촉구할 경우 최대 징역 3년형에 처한다는 법안도 함께 처리됐으며, 이 법안도 푸틴 대통령이 서명해 발효된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러시안군 후퇴나 민간인 살해는 거짓 뉴스라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방송 등은 이런 정부 주장을 주로 인용한 보도를 하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과 미국 <블룸버그> 뉴스와 <시엔엔>(CNN) 방송 등 서구 언론들은 러시아에서의 취재 및 보도 활동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팀 데이브 <비비시> 사장은 “(러시아가 개정한) 법률은 독립적 언론 활동 과정을 범죄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언론인들이 단지 일을 했다는 이유로 형사 소추 당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러, ‘유럽 최대’ 자포리자 원전 장악…“폭발시 체르노빌 10배”

우크라 남동부 ‘유럽 최대 원전’ 러 추가 공세 결국 장악

핵심시설 300m 거리 화재, 원자로 등 무사했지만 아찔

 

우크라이나 국가비상사태청(한국의 재난안전관리본부)은 4일(현지시각)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던 중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주 에네르호다르시 원전 부지 내 ‘훈련용 시설’에서 불이 났다”고 밝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교전이 벌어지는 곳 근처에 있는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에서 4일(현지시각) 새벽에 불이 나,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1986년 체르노빌 참사보다 피해가 “10배는 더 클 것”이라며 자제를 요구했지만, 결국 러시아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발전소를 내줬다.

 

우크라이나 국가비상사태청(한국의 재난안전관리본부)은 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던 중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주 에네르호다르시 원전 부지 내 ‘훈련용 시설’에서 불이 났다”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자료를 내어 “화재가 원전의 ‘필수 장비’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우크라이나 당국이 통보해 왔다”고 전했다. 양쪽 간 교전으로 우크라이나 소방관들이 한때 현장 접근을 못하다, 새벽 6시40분께 불을 껐다. 러시아군은 3일 남부 거점 도시 헤르손을 장악한 뒤 북진 중이다.

 

이번에 불이 난 건물은 원자로를 포함한 원전 핵심 시설들과 불과 300여미터 떨어져 있다. 미국·유럽 수준의 안전설비가 갖춰져 있지만, 무차별적인 포격이 이어지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탱크들은 적외선 장비를 갖추고 원자력 지역을 공격했다. 자신들이 무엇을 쏘는지 알고 있었다”고 비난했다.

 

화재 주변 지역을 분석한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한겨레>에 “위성사진을 보면, 우크라이나군 쪽이 위치한 사무실 건물 뒤편에는 스위치 야드로 불리는 변전시설이 있고, 러시아군 탱크 쪽 뒤편 오른쪽 끝에는 사용 후 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어느 쪽 방향의 공격이든 원전 안전에 위험한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변전시설이 손상되면, 원전에 전력 공급이 차단돼 핵연료 냉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 또 사용 후 핵연료 저장시설이 파괴되면 방사성물질이 대량으로 방출되는 재앙으로 이어진다. 미야노 히로시 전 호세이대 객원교수(원자로 시스템학)는 <요미우리신문>에 “이 원전은 노심이 콘크리트 구조물로 둘러싸여 있어,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시설 손상 정도에 따라 방사성물질 유출은 있을 수 있다. 관측 데이터를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 시절 인류 최악의 원전 사고라 일컬어지는 체르노빌 참사를 함께 겪었다.

 

이날 화재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자포리자 원전은 우크라이나에서 가동 중인 원자로 15기 중 6기를 보유한 유럽에서 가장 큰 원전이다. 우크라이나가 사용하는 전력의 4분의 1을 공급하며, 세계 10대 원자력발전소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국제원자력기구는 6기 모두 옛 소련이 개발한 가압경수로(PWR)로 1980~1990년대 건설돼 가동됐다고 밝혔다.

 

불이 난 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남긴 메시지에서 “폭발이 일어난다면 피해가 체르노빌보다 10배는 클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러시아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세를 이어가 발전소를 점령했다. 원전을 운영하는 국영 원자력공사 에네르고아톰은 성명을 내어 ”발전소 내 행정동과 검문소가 점령군의 통제 아래 있다. 원전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발전소 직원들은 업무를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불행히도 발전소 내에 죽거나 부상당한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정의길 김정수 김소연 기자

 

푸틴 침공뒤 첫 공개연설 “계획대로 진행”…젤렌스키 “1대1 만나자”

 

푸틴, 국가안보위 개막연설 방송서 전쟁 정당화

“신나치 제거 중” 주장하며 전쟁 지속 뜻

젤렌스키 ‘항전’ 연설…‘단독회담·서방지원’ 촉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일 국가안보위원회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 화면 갈무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개전 이후 처음 공개 연설을 통해 자신이 일으킨 전쟁을 정당화하며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단독회담을 제안하며 굴복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푸틴 대통령은 3일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국가안보위원회 회의 개막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서 군사 작전은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다. 모든 임무가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신나치’들을 뿌리뽑고 있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신념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쟁에서 결코 물러나거나 쉽게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날 연설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의 거점 도시 헤르손을 점령한 뒤 이뤄졌다. 개전 8일 만에 의미 있는 군사적 성과를 거둔 뒤 전세계적인 비난에도 자신이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고 나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이뤄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통화에서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무장집단의 전투요원들에 대한 비타협적인 전투를 지속할 것”이라며 타협을 거부했다. 프랑스 엘리제궁은 이날 회담 결과를 공개하며 90분간 이뤄진 전화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에게 키이우(키예프)가 러시아가 내건 조건을 수용하기를 거부해 자신이 전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마크롱 대통령과 통화에서 러시아가 철군을 하려면 △러시아의 안보 우려가 무조건 존중되고 △(2014년 3월 합병한) 크림반도가 러시아의 영토로 인정받으며 △우크라이나 정부가 비나치화·비무장화되고 중립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이 조건을 수용하지 않아 전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들이댄 것이다. 엘리제궁은 “최악의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푸틴은) 모든 쪽으로 갈 준비가 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외교적 혹은 군사적 수단으로 완전히 통제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우려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밝혔다. 그는 이날 공개 연설에서 자신과 푸틴 대통령의 회담만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단독회담을 제안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앉자”며 “(마크롱 대통령과 했던 지난 대면 회담 때처럼) 30m나 멀리 앉지는 말자”고 비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어, “우리는 러시아를 공격하지 않고, 공격할 계획도 없다”며 “당신은 우리한테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우리의 땅을 내버려둬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의 이번 침공을 막지 못하면, 다음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의 차례가 될 것이라며 유럽과 세계가 단합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7분 남짓의 연설에서도 국민들을 독려하며 항전 의사를 밝혔다. “그들(러시아인들)은 우리를 여러 번 파괴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실패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겁먹고, 부숴지고, 굴복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을 향해선 “집으로 가서 러시아어를 하는 사람들을 지키라. 전세계를 지키지 말고 너희 나라를 지키라”고 말했다. 정의길 기자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 지난주 최소 세차례 암살 위기

러시아 지원 와그너 용병·체첸 특수부대…러 스파이 정보로 무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주 최소 세차례 암살 위기를 넘겼다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더 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가 지원하는 와그너그룹과 체첸 특수부대가 젤렌스키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지만 막상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 내부에서 새나온 정보로 인해 작전에 실패했다고 전했다.

 

체첸 특수부대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에서 암살 시도를 했다. 우크라이나 보안당국 관계자는 이들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닿기 전에 제거됐다고 말했다.

 

와그너그룹도 암살 시도 중에 일부 피해를 입었다.

 

올렉시 다닐로프 국방안보위원회 서기(사무총장 격)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연방보안국 요원들이 암살 계획들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와그너그룹은 젤렌스키 대통령 보안팀이 정보를 확보해서 자신들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한 데 놀랐다고 전했다.

 

그러나 키이우에만 여전히 용병 약 400명이 있으며 러시아 정부의 강한 압박을 받아 조만간 또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와그너그룹은 6주 전에 키이우에 들어와서 암살 명단에 올라있는 고위급 인사 24명을 추적하고 있었다.

 

와그너그룹은 작년 12월 말 아프리카 작전 인력을 모스크바 외부 기지로 불러 조직을 재편성한 뒤 우크라이나로 파견했다.

 

이들은 러시아 특수부대가 들어와서 탈출 통로를 확보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러시아 탱크 진입이 예상보다 늦어졌다는 것이다.

 

와그너그룹은 러시아 특수부대 보다 장비 등에선 열위이지만 러시아와의 관계를 추적하기 어려워서 선호된다.

 

“러시아 국가 부도 우려”…S&P, 신용등급 8단계 수직 강등

 

원금 · 이자 상환 의심 ‘CCC-’로 낮춰

국가 부도인 D등급보다 세 단계 위

 

3일(현지시각) 러시아의 신용등급 강등에 따라 루블화 가치가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EPA 연합뉴스

 

서방 국가의 고강도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러시아의 국가 부도 위험을 우려하면서 신용등급을 대폭 강등했다.

 

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3일(현지시각)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BB+에서 CCC-로 하향 조정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다음 날인 지난달 25일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로 한 단계 내린 지 약 일주일 만에 무려 8단계를 또 낮췄다.

 

신용등급 CCC-는 투자 시 원금과 이자 상환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단계다. 국가 부도를 의미하는 등급 ‘D’보다 세 단계 위로,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또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러시아의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앞으로 신용등급이 더 내려갈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국제신용평가사들도 러시아 경제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이고 있다. 무디스도 이날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을 Baa에서 투자부적격인 B3로 6단계 낮췄다. 피치 역시 지난 2일(현지시각)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투자부적격 등급인 B로 조정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서방의 고강도 제재로 러시아의 부채 상환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이번 러시아 국가신용등급 강등은 디폴트 위험을 실질적으로 높일 가능성이 있는 조처가 시행된 데 따른 것”이라며 “서방의 경제 제재와 러시아 당국이 루블화 가치 보호 목적으로 내놓는 자본 통제 등의 조처가 국가의 부채 상환 능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투자은행 제이피(JP)모건은 이날 보고서에서 올해 2분기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5%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의 올해 연간 경제 성장률은 -7%로 예상했는데, 이는 2009년(-7.8%)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맞먹는 수준이다. 제이피모건은 서방의 경제 제재로 국제무역이 중단되고, 이에 따른 산업 생산 감소와 공급망 붕괴 등이 러시아에 역성장을 가져올 것으로 예측했다. 전슬기 기자

 

“몸만 빠져나와, 오늘은 또 어디서 묵나”…우크라 난민의 하루

 

우크라이나 난민이 4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도착해 쉬고 있다. 부쿠레슈티/AFP 연합뉴스

 

전쟁을 피해 며칠씩 잠도 못 자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탈출에 나선 우크라이나인들은 국경을 넘은 뒤 비로소 이웃 나라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와 지원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제 앞으로 어떻게 이 험한 시간을 살아내야 할지 막막함에 걱정이 앞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벌써 국경을 탈출한 우크라이나인이 100만명이 넘었다. 이들이 어떤 고초를 겪고 어떻게 난민의 삶을 준비하는지, <워싱턴타임스>가 3일(현지시각) 막 국경을 넘어 몰도바로 피신한 한 가족의 하루 일상을 통해 소개했다.

 

이라 이바니츠카야(46)는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미용사로 일했다. 러시아의 침공 전날에도 늘 그렇듯 오후 6시까지 손님들의 머리를 다듬었는데, 미용실에선 어느 누구도 불과 몇 시간 뒤 러시아군이 공격할 거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이라는 집에서 아들 로만(7)과 함께 멀리 포성을 들으며 집에 포탄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직장 동료 아냐 야보르크사야(40)가 아들 데미안(9)과 함께 새파랗게 질린 채 피신을 왔다. 그의 집은 군사시설 옆이어서 더 위험했다. 옷을 모두 입은 채 누워 잠을 청했으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하는 두려움에 잘 수 없었다.

 

결국 이라는 동료 아냐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부모님은 우크라이나에 남겨 놓은 채였다. 국경을 넘을 때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어떻게든 전쟁을 피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허름한 여행가방 하나 들고선 국경을 넘어 몰도바에 들어서고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몰도바 국경에선 오데사에서 알고 지내던 타티아나의 주선으로 겨우 임시로 쉴 민가를 찾을 수 있었다. 타티아나는 전쟁이 터지자마자 먼저 국경을 넘어 피신한 친구였다.

 

국경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의 농가엔 두툼한 담요와 따뜻한 샤워가 기다리고 있었고, 부엌에선 집주인 루드밀라 이아로르시(55)가 음식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이라 일행을 보자 “집을 떠난 것은 아이들을 위해 잘한 결정”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저녁을 먹고 나선 주변 다른 집에 묵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과 모여 앉았다. 와인을 마시며 전쟁 관련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했다. 이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가리키며 “마치 히틀러처럼 새벽 4시에 우리를 공격했다”며 “나는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타티아나는 “그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맞받았다.

 

이라는 그래도 이렇게 앉아 이야기하니까 스스로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진다. 지난주 내내 그는 목이 졸린 듯 숨조차 쉬지 못할 것 같은 팽팽한 긴장을 느껴왔다. 몰도바 국경에 다가와서도 보드카라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날 밤 루드밀라 집에서 이라는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편안한 잠을 잤다. 한적한 몰도바의 마을 하늘엔 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라는 몰도바에서 며칠 보내며 몸과 마음을 다스린 뒤 버스를 타고 루마니아, 헝가리를 거쳐 독일로 갈 계획이다. 독일엔 함께 온 동료 아냐의 형제가 살고 있다. 오데사를 탈출할 때 머리빗과 가위도 갖고 왔다. 독일에서도 미용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모처럼 편한 잠자리에서 잠자고 일어난 이라는 다시 냉혹한 현실로 돌아왔다. 당장 오늘 밤을 보낼 숙소부터 찾아야 했다. 이곳에는 오늘 국경을 막 넘은 우크라이나인 12명이 올 예정이다. 이라 일행은 그들에게 두툼한 담요와 따뜻한 샤워를 넘겨줘야 했다. 이라 일행은 소셜미디어에 두 여자와 두 아이가 머물 곳을 구한다는 메시지를 올린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

 

루드밀라가 들어와 이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둘은 함께 울었다. 루드밀라는 자신도 한때 전쟁의 피해자라고 느낀 적이 있다며 이라를 위로했다. 1990년대 초 몰도바 내전 때 그의 집에서 10㎞ 떨어진 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에 나갔던 남편은 살아 돌아왔지만, 이웃집에선 전사자가 나왔다.

 

점심때가 되었고 루드밀라는 다음 손님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이라와 아냐는 아직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 난민 생활 이틀째가 그렇게 시작됐다. 박병수 기자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맹폭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사전투표가 시작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윤호중, 최강욱 공동선대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사전투표를 독려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4일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에 대해 “단일화가 아니라 전국민의 손가락 자르게 만드는 단지화(斷指化)”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후보를 겨냥해 “1년 만 지나면 ‘그 사람 뽑은 손가락 자르고 싶다’고 그럴 것”이라고 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후보 사퇴 전 발언을 빗댄 것이다. 민주당은 이날 시작된 사전투표에 ‘후보 단일화’가 미칠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안 후보도 완주 의사를 수차례 밝혔고 일주일 전에는 자격 없는 이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1년 안에 손가락 자르고 싶을 거라고 윤 후보를 비판하다가 사전투표를 하루 앞두고 ‘철수 쇼’를 했다”고 말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어 그동안 안철수 대표가 강조해온 ‘다당제 정치개혁’도 허구라고 지적했다. 그는 “안 후보가 주장한 다당제, 제3지대론도 합당 의사를 밝히며 허구였음이 드러났다”며 “공동정부란 말을 쓰지 말던가, 합당하면 그게 공동정부인가, 1당 정부지. 소신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당원과 지지자 의사를 내팽개치고 후보직과 당을 통으로 팔아먹는 '떴다방 정치'는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상호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도 회의에서 “안철수씨가 행정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 것에서 미뤄볼 때 국무총리 제안받은 걸로 보인다. 이게 자리 나눠먹기 아니고 뭔가”라며 “당 대 당 통합을 추진한다는데 결국 그건 지방선거 대비용 계획이기에 공천 지분에 대한 약속이 있었을 것이다. 밀실 야합하면서 정치개혁을 얘기할 수 있나.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날 <티비에스> 라디오 인터뷰에선 “마지막에 7, 8% 남아있던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은 대체로 반윤석열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여러 번 확인할 수 있다. 반반 혹은 어떤 경우는 우리가 조금 더 유리한 경우도 있었다”며 “안철수 후보에게 윤석열 후보가 제안했던 내용들은 사실은 장사로 보면 굉장히 손해 보는 장사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