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극,비정상, 근본적 성찰·변화 이뤄야
생명·진실·정의 되살려 거듭날 기회로

어떤 분들은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침묵하며 기도하며 회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왜 우리가 침묵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지, 무엇을 누가 회개해야 하는지’ 도리어 묻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기독교 핵심 교리를 철저하게 믿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믿지 않고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처참한 사고 앞에서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이렇게 쉽게 말해 버리면,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책임소재를 흐릿하게 만들고, 책임져야 할 악의 대상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고, 더 나아가 진실한 회개와 개혁이 이루어 지지 않게 됩니다.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은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될 수 도 있습니다. 모두가 회개해야 한다는 말은 아무도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침묵해야 할 때가 아니라 외쳐야 할 때입니다. 이사야처럼 예레미야처럼 민족을 보며 아픈 가슴으로 찢어지는 가슴으로 외쳐야 합니다. 그래서 이 민족이 절대 비극 앞에서 근본적 성찰과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환골탈태의 길로 가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온 국민이 슬픔과 우울증에 빠져 있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며, 심지어 자발적으로 일어난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조차 비기독교적이라고, 사탄적이라고 비난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300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을 당했는데, 고작 며칠 아파해서 되겠습니까? 그냥 300명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한 생명, 한 생명인데, 누구의 아들로 누구의 딸로, 누구의 동생으로, 누구의 언니로 살았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생명들인데 그들을 위해서 30일, 아니 300일은 못 아파하겠습니까? 그래서 국가의 능률이 좀 떨어지면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가 만난 이 비극은 지난 세월 우리가 진실과 정의보다 능률과 속도를 지나치게 숭상한 결과가 아닙니까? 온 나라가 비정상인데 그것을 아파하고 분노하는 것이 왜 비정상입니까? 살짝 아파하고 반창고 하나 붙이고 괜찮다고 넘어가는 것이 비정상이지.’

저는 지난 토요 새벽기도회 때에 ‘믿음의 우정으로 극복한 질투’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이야기하면서, 설교의 마지막에 이 시대에 진정한 우정을 보여준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설교를 마쳤습니다. 그 때에 제가 교우들에게 소개한 사람은 양온유라는 자매입니다. 온유는 17살짜리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온유의 꿈은 다윗처럼 음악치료사가 되는 것입니다. 음악으로 세상과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온유의 꿈입니다. 온유는 꿈만 가진 것이 아니라 꿈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음악적 재능이 많아서 독학으로 배운 피아노로 중학교 때부터는 새벽기도 반주도 하고, 공부도 잘하고, 반장에 학년 대표까지 하는 리더십이 강한 학생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넉넉지 않는 집안 형편 때문에 친구들이 학원에 가는 방과 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온유는 그냥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아니고,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입니다. 그리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서 친구들과 배를 탔는데, 그 배의 이름이 세월호였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할 때에 다행스럽게도 온유는 갑판위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온유는 끝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온유 양의 아버지 양봉진 씨는 온유가 다른 아이들처럼 선실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해서 죽을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양 씨는 지난 20일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찾아온 구조된 딸의 친구들을 통해서 뜻밖의 소식을 듣습니다. “온유는 갑판까지 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어요. 방에 남아 있는 친구들 구한다고.” 온유는 사고 직후 갑판까지 올라왔다고 합니다. 계속 갑판에 남아 있었다면 다른 구조된 학생들처럼 분명 헬기로 구조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래쪽 선실에서 터져 나오는 친구들 울음소리를 듣고 온유는 다시 선실로 내려갔고, 결국 차디찬 시신으로 부모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23일 신문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아버지 양봉진 집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애는 그럴 줄 알았어. 친구들이 배 안에 있는데 그냥 나올 애가 아니어서…” 결국 평소의 모습이 위기 때에도 나타난 것입니다.
 
저는 설교 시간에 친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린 온유의 숭고한 우정을 전하면서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나와서 더 이상 설교를 이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펑펑 울면서 글을 씁니다. 희생자의 가족도 아닌 저도 사고 발생 이주일이 지났는데 수시로 눈물이 나오는데, 하물며 온유 양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온유 양과같이 사랑스럽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자식을 가진 300명의 부모님들의 심정을 어떻겠습니까? 이들의 눈물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 사건을 쉽게 잊어서도 안 되고, 쉽게 덮으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세월호 사건, 며칠 떠들다가 끝낼 사건이 절대 아닙니다. 단순히 안전사고가 아닙니다. 단순히 정치적인 사건만도 아닙니다. 총체적인 사건입니다. 사회 구조적인 사건입니다. 정신사적 사건입니다. 철저하게 책임을 규명하고 철저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랫동안 깊이 성찰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건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돈, 돈, 돈’ 하면서, ‘경제, 경제, 경제’ 하면서, ‘빨리, 빨리, 빨리,’ 하면서 희생시킨 ‘생명, 진실, 정의’를 다시 되살리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국민소득만이 아니라 국민정신으로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들어가게 하는 계기가 되게 해야 합니다. 먼 훗날 이 사건이 진정 대한민국을 거듭나게 한 사건으로 기록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한국의 역사를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눠지게 하는 역사의 분수령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더 아파해야 합니다.

< 고영민 목사 - 이글스필드한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