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교황이 떠난 자리

● 칼럼 2014. 8. 25. 20:48 Posted by SisaHan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중 단연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광화문 시복식에서의 한 장면이었다. ‘비바 파파’를 외치는 신도들 속에서도 교황은 가장 연약한 한 사람 앞에서 차를 멈추게 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위해 34일째 단식중인 김영오씨였다. 그의 간절한 호소에 교황은 애틋한 눈빛과 따뜻한 손길로 답했다. 시간은 1분 남짓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방한 동안 교황은 세월호에 집중했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선 순간부터 유족의 눈물을 가슴에 담았고, 십자가를 지고 온 유족들을 위로했고, 명동성당 미사에서도 다른 간절한 사연을 지닌 피해자들과 더불어 만났다. 팽목항에 붙들린 실종자와 가족들을 위해서는 절절한 기도편지를 전했다.
 
교황의 공식 방한 목적은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성사였지만, 교황은 옛날을 기리는 일에 멈추지 않았다. 지금 이 땅의 고난과 눈물을 대하며 진심으로 아파하고, 위로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확실히 한 것이다. 종교 행사는 저세상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이 세상의 아픔을 껴안는 것임을 명료한 말씀과 섬세한 몸짓으로 일깨웠다.
교황이 준 감동이 아무리 컸더라도, 이 땅의 착잡한 현안은 여전하다. 세월호의 진실 규명은 첫 단추조차 끼우지 못하고 있다. 우리 손으로 문제를 풀어내지 못한 집단적 무기력과 무능력에 대해 자괴감을 금할 수 없다.
교황은 바쁜 일정 중에 매일같이 세월호 유족들을 보살폈다. 그러나 4개월 동안 한국의 대통령은 유족들과 딱 한번, 그것도 마지못해 만났을 뿐이다. 8·15 경축사에도 한마디 언급이 없다.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힌 한 국회의원은 “대통령이 바빠서”라고 둘러댄다. 광화문은 청와대에서 저녁 산책 할 거리에 불과하다. 마음이 있으면 천리지간도 지척지간인 반면, 마음이 없으면 지척지간도 몇만리다. 마음이 있으면, 단 1분의 소통으로도 넉넉함을 교황은 보여주었다. 대통령과 집권층의 이 소통부재, 외면전략에는 진저리가 날 지경이다. 제도와 입법 논쟁 이전에 진정 어린 마음과 다가가는 자세가 선행되었다면, 이렇듯 무대책 속의 악화일로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국민의 마음 한편은 광화문에 사로잡혀 있다. 사십일에 다가서는 유민 아빠의 단식에 대해, 정말 단식을 그만두십사 하는 애원 행렬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물어볼 일이다. 왜 자식 잃은 부모가 단식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아도 견디기 힘든 유족들을 단식으로 몰아댄 자는 누군가. 단식으로 참회할 자들은 참사의 원인 제공자들, 구조할 의지도 능력도 없던 공직자들, 그리고 위기관리의 총책임자인 대통령 자신이 아니던가.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정국 표류의 기본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음은 물론이다. 야당의 무능력은 그것대로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국면에서 누가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낼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관심과 압력이겠지만, 이를 매개할 지도적 역량이 나서야 한다.
교황의 관심과 복음을 받아들일 일차 집단은 무엇보다 가톨릭교회다. 교황은 한차례 쇼를 하고 떠나간 게 아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란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특별한 강조점이다. 아울러 교황은 정치의 문제를 외면하지 말라고 한다. 더욱이 세월호 참사는 정치 이전의, 인간 존엄성에 직결된 것이다.
 
교황은 세월호 십자가를 로마로 갖고 갔다. 거기서도 세월호의 슬픔과 연대하고, 십자가의 기도로써 마음을 잇겠다는 뜻이리라.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가톨릭 성직자들, 특히 그동안 사회정의의 문제에 등한시한 것으로 보인 두 추기경부터 이제 앞으로 나서시라.
명동성당 미사에 함께했던 종교지도자들이 온전한 진실 규명을 위한 과업에 결연하게 합세하면 어떨까. 우리가 평화를 바란다면, 그것은 그저 주어지는 시혜물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는 교황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아니면 단식하는 어버이가 떠맡은 고난의 짐을 나누어 지는 마음으로 말이다.
< 한인섭 -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