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아비의 심정으로

● 칼럼 2014. 9. 11. 18:53 Posted by SisaHan
요즘 언론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군대 내 폭력 사건과 총기 사고들을 보면서 아비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난봄에 발생한 일을 새삼스럽게 들춰내는 저의가 무얼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만, 그 엽기적이고 잔혹한 당시의 상황을 접하면서 나는 네가 몸이 온전치 못해서 군대에 가지 못한 것이 요즘처럼 다행스럽게 느껴진 적이 없단다.
네가 갓난아기로 서너 가닥 수액 줄에 매달린 채 병실에 갇혀 있던 봄날 담장 밖 창경궁에는 벚꽃이 흐드러졌었지. 그 화사한 모습을 너와 함께 보지 못하던 그때의 야속했던 마음도 이제 봄눈 녹듯 사라졌다. 그때의 안타깝고 불안했던 순간들이 이렇게 보상을 받는구나. 너의 허약한 몸이 우리에겐 오히려 위안이고 너에게는 행운이구나. 우린 그런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지금 많은 사람들이 가해 병사들을 악마라고 비난하려 드는구나. 그러나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르고 가해자를 단죄하는 것은 또 얼마나 허망한 일이냐. 
모든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경쟁과 성취를 향한 억압 속에서 자라나는데 약자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마음을 언제 키울 수 있었겠느냐. 반복되는 패배로 상처가 켜켜이 쌓인 가슴들 속에서 사랑 같은 것이 어떻게 자랄 수 있었겠느냐. 당사자들 뿐 아니라 그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 모두가 피해자 아니겠느냐.
광복절 즈음에 방한한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롯해서 눈물과 고통으로 버티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위로했지. 어린아이들의 머리를 일일이 쓰다듬어 축복하고 질병으로 누워 있는 이들을 격려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었지.
 
난 그 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손님에게 모두가 기대려는 모습은 우리가 제 몸뚱이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중증 환자라는 것을 드러내주는 것이 아니냐.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기에 치유할 길도 막막한 모습으로 말이다.
우리의 대통령께서는 문명과 교양으로 짙은 화장을 했지만 숙제를 하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굳은 표정으로 교황 옆에 앉아 있더구나. 그 밑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사건만 터지면 책임을 떠넘기고,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교묘한 핑계로 자신을 합리화하기에 바쁘구나. 
껄끄러운 사람들을 조작과 위조, 뒷조사와 미행으로 입을 틀어막는 이 땅에서 정의가 숨쉬기를 바라는 것은 사치가 되었구나. 두려운 세상이 너무나 빨리, 소리도 없이 다가와 있구나.

아들아, 너도 이제 학교를 졸업할 때가 가까웠지. 의사나 판검사 따위는 우리와 같은 서민들에게는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있으니 행여 미련 두지 마라. 커다란 배가 원인도 모르게 뒤집히고 지하철 사고가 잇따르고 밤길을 걷는 부녀자들이 이유도 없이 공격당하는 불안한 세상에서는 신명을 보존하는 것보다 더 큰일이 어디 있겠느냐. 너에게 대운이 트여서 혹시라도 정보기관 같은 데에 일자리가 생기면 앞뒤 보지 말고 악착같이 붙들어라. 경찰도 나쁘진 않겠지. 물정 모르는 아비 눈에도 요즘에는 그런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그런데 말이다. 혹시나 이 땅에서 핵발전소가 하나라도 터지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품의 시험성적표를 조작하고 불량 부품을 쓰며 30년 넘게 가동되는 낡은 핵발전소가 언제까지 버텨줄까. 먼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친척 하나 없는 너희는 어떻게 될까. 
옛날에는 너희만한 나이들더러 앞길이 구만리라 했는데, 이 불안한 세상에서 너희 앞길이 구천리뿐이라 해도 부디 운 좋은 사람이 되어라. 기를 쓰고 운 좋은 사람이 되어라. 닥치고 운 좋은 사람이 되어라.
< 김계수 - 농부·지역신문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