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충청도의 어느 마을에 살던 외국인이 머리 깎으러 이발소에 들렸습니다. 주인 아저씨가 충청도 말로 인사말을 합니다. “왔시유?” 이 외국인 손님은 이 아저씨가 서투른 영어로 What see you? 라고 하는 줄 알고 친절하게 답변을 합니다. 지금 거울을 보고 있기 때문에 “미러(mirror).” 한참 후에 그 외국인은 완전히 빡빡 밀어버린 자신의 시원한 머리를 감싸 안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이발소 아저씨도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는 외국인 손님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문제인지 몰라서 당황해 합니다.
 
 인간의 삶은 의사소통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소통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도 생명력도 없습니다. 모든 삶의 현장에서 막힘이 없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성장,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의 사회학자인 마셜 맥루언은 ‘인간은 소통의 동물이고, 점점 진보하는 기술과 함께 소통에 일대 혁신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인터넷과 대중매체 등 우리가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주 빠른 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첨단 기술이 그러한 소통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갈수록 사회 곳곳에서 서로 바른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도 어떤 면에서 보면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발생한 사건일 수 있습니다. 통신수단은 엄청 발달했지만 사람들 간의 진정한 의사소통은 꽉 막혀 있습니다. 불통입니다. 정치인과 국민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나이든 사람들과 젊은 세대 등 사회 곳곳에서 서로 의사가 통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탐욕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기적인 욕심이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의사소통의 기초는 경청입니다.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잘 듣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에 서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사회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전에 내 생각, 내 주장, 내 의견을 먼저 쏟아냅니다. 상대를 설득시키려고 합니다. 힘으로, 아니면 거짓말로, 자신의 신분이나 직위를 가지고 내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사회의 모든 통신수단을 이용하여 상대를 기만합니다. 자신의 의견만을 쏟아내어 나의 욕심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내 머리만 밀어버리는 웃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생떽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의사소통이 잘 될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서로 사랑하면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금 누구를 만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며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가장 마음과 마음, 영혼까지 통할 수 있는 관계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면 모든 관심이 사랑하는 상대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 얼굴 모습만 봐도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이 필요 없어도 생각과 마음이 전달 될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모든 곳에 소통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 강성철 목사 - 우리장로교회 담임목사 >